[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요 며칠 찬 바람이 불고 하늘이 파란 것이 꼭 늦가을 같았다. 봄날 하늘은 으레 뿌연 줄 알았는데, 봄을 너무 몰랐다. 미세먼지가 없으니 외출할 때 마음의 부담이 적다.

그런데 이렇게 맑고 깨끗한 날씨가 우리나라에만 찾아온 건 아닌 모양이다. 중국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안개가 걷힌 듯 시야가 환해졌다는 뉴스를 읽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도시가 봉쇄되면서 발전소와 공장이 멈추고 자동차 운행이 줄어 오염물질 배출이 적어진 덕분이라는 해석이 더해졌다. 우리나라는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도 한몫했다. 올해 몽골 건조지역의 흙먼지와 중국 오염물질을 실은 북서풍 대신 깨끗한 동풍이 부는 날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중국 미세먼지 배출량이 줄어든 것과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미세먼지 저감 정책도 효과를 봤을 거란다.

이 상큼한 봄날은 여러 요인의 합작품이지만, 동풍을 제외하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활동이 ‘일시 멈춤’ 상태에 들어선 결과라는 점이다. 인적이 뜸한 호주 도심에 야생 캥거루가 뛰어다니고 런던 교외 주택가 잔디밭에 사슴이, 영국 노퍽엔 염소 떼가, 칠레 산티아고 거리엔 퓨마가 나타났다.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 모든 변화를 신기해하면서도, 인간이 지구에 끼쳐온 악영향을 성찰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자연과 생명을 함부로 파괴하며 살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종 역시 다른 무수한 종처럼 태양계의 여러 가지 우연한 사건이 중첩된 끝에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지구가 태양에 조금만 더 가깝거나 멀었다면 물이 모두 증발해버리거나 있더라도 얼음 상태로 존재했을 것이다.

확실히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이 원시 지구에 발생해 수증기가 응결돼 바다가 만들어졌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바다에 흡수되면서 지구 온도가 낮아졌다. 바다에 광합성을 하는 세균 하나가 우연히 출현해 대기 중에 산소가 생겼고, 이 산소가 다시 수소와 결합해 물을 만들었다. 자외선을 흡수하는 오존 덕분에 바다생물은 드디어 육지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순응하며 진화해온 것이 지금의 생명체들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지구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시계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인간이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가장 위험한 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해 지구의 온도를 다시 높이는 것이다.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일정한 주기로 반복하는 동안 평균 4~5도 정도의 기온 차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간빙기인 현재에서 다시 빙하기로 돌아가기 위해선 이산화탄소 농도가 일정 수준 이하여야만 하는데, 지금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그 두 배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원인은 알고 있다.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사용이다. 화석연료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만들어 지구 대기를 오염시키는 것도 모자라 플라스틱과 같은 합성고분자물질을 생산해 해양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그동안 이런 문제를 떠올릴 때마다 인간이 지구를 다 망쳐버렸고 지구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병들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다 같이 멸망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절망했다. 그런데 다시 ‘우연한’ 기회에 우리는 답을 찾은 듯하다. 바로, 멈추는 것. 단지 멈추기만 해도 잃어버린 것들이 저절로 되돌아온다는 걸 확인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6% 감소할 거라 내다봤다.

고작 6%가 우리의 하늘을, 봄날을 이렇게 바꿔놓았다. 자가용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비닐을 최대한 덜 사용하고, 육식을 줄이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뭇 생명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멸망에 비하면 훨씬 희망적인 대안 아닐까?

※ 심혜진 시민기자는 3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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