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천시 건축자산 기초조사 이후
건축자산으로 등록ㆍ보존 건축물 전무

[인천투데이 이보렴 기자] 인천시의 근ㆍ현대 건축자산 기초조사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 건가?

최근 도시정비사업 등으로 근ㆍ현대 건축물 멸실(滅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시는 우수 건축자산으로 등재한 근ㆍ현대 건축물은 한 개도 없다고 밝혔다. 우수 건축자산은 문화재에 준하게 보존할 수 있다.

게다가 우수 건축자산 등재를 위한 세부조사 추진 예산도 없다. 지난해 진행한 근ㆍ현대 건축자산 기초조사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셈이다.

시는 지난해 11월까지 2억7000만 원을 들여 인천에 소재하는 모든 근ㆍ현대 건축물을 조사했다. 이 조사는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근ㆍ현대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건축자산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당 법률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멸실 위기에 처한 건축물 보존을 위한 수선비를 지원할 수 있다. 시는 이 조사에서 건축자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건물을 보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근ㆍ현대 건축자산 조사는 중구 소재 애경사의 비누공장 건물과 답동성당 앞 카톨릭회관 건물 철거 사태를 겪고 난 뒤, 동일한 사태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구는 지은 지 100년 넘은 애경사 비누공장 건물을 2017년 5월에 허물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답동성당 앞 카톨릭회관 건물 철거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동구 만석동 신일철공소 철거 장면.(사진제공ㆍ만석동 주민협의체)

근ㆍ현대 건축자산 등록돼도 철거 계속돼
사유재산이라 철거 밀어붙이면 소용없어

시의 근ㆍ현대 건축자산 조사 과정과 그 이후에도 철거는 여전하다. 근ㆍ현대 건축자산 조사와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에 동구 만석동에 있는 신일철공소 건축물이 철거됐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신일철공소는 고(故) 박상규 장인이 1974년부터 2007년까지 목선 건조와 수리에 필요한 배 못과 보도 등을 제작한 대장간이다. 고인은 국내 유일무이한 배 못 원천기술 보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신일철공소는 산업화시기 삶의 이야기와 시대상, 조선업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라며 철거를 반대했다. 하지만 동구는 철거를 강행했다.

올해 철거 예정인 주명기 정미소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시가 설명한 것을 보면, 일제강점기 중구 일대에는 정미소가 많았다. 항구와 철로가 가깝고 일본으로 미곡을 운반하기 편리했기 때문이다. 주명기 정미소는 인천의 ‘주명기’라는 사람이 운영했던 정미소다. 주명기는 당시 대지주였다. 정미사업이 한창일 때는 미상조합장(米商組合長)을 지내기도 했다.

정미소 본관 건물은 이미 오래전에 철거됐고, 현재는 정미소 부속 건물만 남아있다. 이 부속 건물은 현재 경동교회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ㆍ현대 건축자산 기초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 부속 건물은 1930년대에 지었다. 연구위원들이 ‘정미소와 관련한 건물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근대 건축자산으로 등록했다.

그런데 민간사업자가 정미소 터를 포함한 주변 필지를 매입해 지하2층ㆍ지상12층 규모의 요양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시는 정미소 부속 건물을 철거하고 요양병원을 세우겠다는 민간사업자의 건축허가 신청에 따라 건축자산 보존ㆍ철거 자문을 2월 18일 서면으로 받았다.

이에 대해 시 건축계획과 관계자는 “건축허가가 신청되면 대부분 철거되는 게 수순이다”라며 철거가 이미 결정됐다는 듯이 말했다.

철거 위기인 인천 중구 신흥동 오쿠다 정미소 건물.(사진제공 인천지역 시민단체 46개)

중구 신흥동에 있는 오쿠다 정미소 건축물도 같은 상황에 놓였다. 시민사회단체 46개는 지난 6일 “중구 신흥동 1가 34-29와 34-34(인중로 108번길 8)에 20층짜리 오피스텔 2개 동을 짓는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곳에 남아있는 인천의 근대 산업ㆍ노동 유산인 붉은 벽돌의 오쿠다 정미소 건축물들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라며 “우선 신흥동 일대에 추진되고 있는 정미소 건축물 파괴를 반드시 막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오쿠다 정미소 건축물도 근대 건축자산으로 등록돼있다.

이밖에 시가 근ㆍ현대 건축자산을 조사하면서 파악한 ‘도시정비사업으로 멸실 위기인 건축물’은 52개다.

근ㆍ현대 건축자산 목록에서 빠진 건물도 있어
“조사 용역 제대로 수행한 것인지 확인해봐야”

지난 10일에는 중구 개항로 45번길에 위치한 ‘일제강점기 공동숙박소’로 추정되는 건축물이 철거됐다. 이 건축물은 ‘법원 관사’나 ‘부천군수 관사’ 등으로 소문이 나있던 근대 건축물이다. ‘인천감리서 터의 구성과 변천 과정 연구’를 쓴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실내건축과 교수는 “‘인천부사(1993)’에 기록된 인천부립 직업소개소와 공동숙박소 소재지가 중구 내동 84번지다”라며 “공동숙박소는 2층인데, 2층 면적과 철거된 건축물의 2층 면적이 동일하다”고 해당 건축물이 공동숙박소였음을 설명했다.

백영임 '팟알' 사장이 찍어 자신의 SNS에 게시한 일제강점기 공동숙박소 추정 건축물 철거 현장.(백영임 사장 SNS 갈무리 사진)

이 건축물은 근ㆍ현대 건축자산 목록에 없었다. 시의 근ㆍ현대 건축자산 조사 초기에 제기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시가 기초조사 용역을 시작할 때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은 “근ㆍ현대 건축물 조사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건축자산을 발굴하는 게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에 작성한 등기부를 찾아 해석해야한다”라며 “이 연구를 하지 않으면 이미 등록됐거나 알려진 건축물을 확인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조사기관의 전문성도 문제다. 인천연구원과 지역 대학이 용역 수행기관으로 선정됐지만 하청을 줬다. 과연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했다.

손 교수도 일제강점기 공동숙박소 추정 건축물 철거를 보고 이러한 점을 지적했다. “근ㆍ현대 건축자산 조사는 애경사 사태와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시가 인천연구원과 인하대에 맡겼다”라며 “일제강점기 공동숙박소가 근대 건축자산으로 등재돼있지 않다는 건 조사용역 자체가 부실한 것이며, 부실한 보고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시도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건축계획과 관계자는 “내년에 세부계획을 추진할 것이다”라며 “지난해 진행한 조사는 기초조사이며, 세부조사 실행계획을 수립해 추진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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