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기 시민기자의 인천 섬 기행] 덕적도(하)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도우선착장에서 이개해변까지 MTB 코스

진리임도에서 MTB를 타는 남녀.

도우선착장에서 이개해변까지 3km 구간에 MTB(산악자전거) ‘진리임도’가 나있다. 길은 차량이 다닐 정도로 넓은데, 과연 자연을 파괴하면서 길을 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전거 여행객 대부분은 쾌속정으로 아침에 들어와 섬을 돌아보고 오후에 빠져나간다. 자연 파괴에 비해 관광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도우선착장에서 한국전력공사 입구로 올라가다 보면 ‘덕적 일주 자전거길’ 표지판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된다.

녹음이 짙고 온갖 꽃과 나무가 반긴다. 가로수로 산수유나무가 심어져있다. 한적한 길에 MTB를 탄 남녀가 옆을 지나친다. 또 한참 걷다보니 큰 배낭을 멘 부부가 임도를 내려온다. 이개해변에서 야영하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비포장도로라 파인 곳이 많아 주의해야하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 MTB를 즐기기에는 좋다.

계속 걷다보니 이정표가 나오는데 바닷가 쪽에 큰구너머샘터를 가리킨다. 그냥 갈 수는 없어 길을 따라 내려가 봤다. 길은 가시 풀과 산딸기 풀로 뒤덮여 반바지를 입은 종아리를 훑으며 생채기를 만든다. 따끔따끔하다.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곳 같다. 부러진 나무가 길을 막기도 하고 샘터에 가니 물이 나오는 파이프 끝에 이끼가 끼어있다. 이끼를 뽑아내고 먹어보니 물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멀리 배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여유롭게 지나간다.

임도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개해변.

다시 올라가 길을 걷는다. 햇살이 제법 따가워진다. 산수유나무 가로수가 무궁화나무로 바뀐다. 바닥에 벚나무 열매인 버찌가 떨어져 검은 얼룩이 곳곳에 보이고 갑자기 나비들의 군무가 시작된다. 길옆을 돌아보니 자귀나무의 분홍빛 꽃들이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원시림, 아니 밀림에 들어선 것 같다. 빽빽하게 우거진 숲, 그들이 뿜어내는 비릿하면서도 상큼한 향기가 나는 듯하다. 길가의 뱀딸기 알도 굵은 것을 보니 걷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시야를 답답하게 하는 깨어진 암반들만 아니라면 최상의 삼림욕 코스가 될 것 같다.

길이 거의 끝나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마치 술래잡기를 하다 갑자기 나타난 아이처럼 나무들 너머로 이개해변이 보인다. 산자락에 동그랗게 둘러싸여 있는 비경, 이런 포근한 정경은 보기가 쉽지 않다. 풍광을 눈에 담으며 내려간다. 펜션과 민박집이 3개 정도만 있어 한적하다. 수심이 들쭉날쭉하고 모래와 자갈로 해변이 이뤄져있어 해수욕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바지락이 많이 나와 가족들이 짐을 풀기에 적당한 곳이다.

과거 민어파시가 성행한 어업 전진기지 북리항

1960년대 덕적도 북리항.(사진출처 사단법인 나그네의섬 덕적도위원회 홈페이지)
1960년대 덕적도 북리항.(사진출처 사단법인 나그네의섬 덕적도위원회 홈페이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덕적도항은 예전에 북리항으로 불렸다. 현재 어업인구는 80여 명이며, 어선 40여 척이 조업하고 있다. 주로 잡히는 어종은 꽃게, 우럭, 넙치, 병어 등이다. 이곳은 덕적군도 어업 근거지이자 기상 악화 시 선박의 긴급 대피처로 이용되고 있다. 옛 덕적도 민어파시의 명성은 전국에 자자했다. 덕적도는 유ㆍ무인도 41개가 펼쳐져있는 군도(群島)로, 그중 굴업도가 어업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했고 전국에서 민어를 잡기 위해 수많은 어선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1923년 굴업도에 들이닥친 해일과 폭풍으로 파시촌 가옥 130채가 파괴되고, 항에 피난해있던 민어 잡이 어선 200여척이 모두 조난당하는 재해를 겪은 뒤 어업 전진기지는 굴업도에서 덕적도 북리항으로 변경됐다. 그 이후 대형 선단에 의해 민어 씨가 마르기 전인 1970년대 초까지 북리항은 민어파시로 명성을 떨쳤다.

마을에 들어서면 방파제를 따라 집들이 해안가에 죽 늘어서 있다. 전형적인 포구 마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마을 사람들은 쑥개항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전쟁 때 북한 피란민들이 들어와 번창했을 때는 이 주변에 1만5000명이나 상주했다고 한다.

북리항 호선을 따라 늘어선 집들.

‘작은쑥개방파제’ 앞 넓은 공터에는 어구들이 엄청나게 쌓여있어, 아직도 어업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이 빠지니 아주머니들이 커다란 통과 호미를 들고 펄로 내려가 바지락을 캔다. 무더운 여름이어서인지 섬 주민들이 일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이 포구만 많은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방파제를 계속 따라가니 그 끝에 북리등대가 있다. 1964년 12월 22일 점등해 이곳을 드나드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툭 터진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다 발길을 돌려 회라도 먹을까 횟집을 찾으니 희한하게 한 곳도 없다. 음식점이 몇 군데 있으나 닭고기와 순대를 파는 곳만 있다. 민박집이 여러 군데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은 찾아올 텐데, 대부분 낚시하는 사람이고 관광객은 없다고 한다. 횟집이 없는 항구는 처음이다.

소재해변으로

녹조류로 덮인 소재해변.

고개 너머 소재해변에 도착하니 바닥이 온통 초록빛이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잔디밭이 펼쳐진 것처럼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바다에 사는 녹조류인 구멍갈파래로 보이는데, 사람이 먹을 수는 없단다. 하지만 바다생물들의 좋은 먹이이며 알을 낳을 수 있는 장소로 적격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갯벌체험이 허용돼있다. 다만 미리 문의해야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기암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밀물에는 섬처럼 떠올라 갈 수 없는데, 바다색이 에메랄드처럼 아름답고 물이 맑다. 갯바위에서는 낚시를 즐길 수 있고 바지락도 캘 수 있어 가족 휴양지로 적격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능동 자갈마당으로

능동 자갈마당. 앞에는 선미도, 오른쪽에는 낙타바위가 있다.

능동 자갈마당 해변은 예전에는 물살이 급해 해수욕을 하지는 못했다. 지금도 해수욕보다는 풍광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해변 입구에 ‘자갈마당’이라고 자갈로 글씨를 만들어 노란색을 페인트질을 했다. 그리고 엉성하지만 자갈로 돌무더기를 쌓아 방사탑 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방사탑은 제주도 바닷가 마을에 주로 설치돼있는데, 마을의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보인다거나 어느 한 지형의 기가 허한 곳에 쌓아두는 돌탑이다. 부정과 악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마을을 평안하게 하고자하는 신앙의 대상물이다. 그런데 이곳에 누가 이런 탑을 쌓았는지 알 수 없다.

온통 자갈이 깔린 해변의 호선과 앞에 보이는 선미도(善尾島). 원래는 섬 지형이 험하다고 해서 악험(惡險)이라고 불렀는데, 섬에 유인등대가 설치된 후 ‘덕적도의 예쁜 꼬리’라는 선미도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서 보는 낙조가 장관이라는데, 시간이 없어 볼 수 없었다. 오른쪽으로 해변에 아련하게 서있는 선돌바위가 보인다. 마치 낙타처럼 보여 낙타바위라 하는데, 가까이 서 보면 파도와 바람에 시달려 구멍이 송송 뚫려있어 용암바위 같다. 낙타바위가 있는 곳부터 바닥에 기암괴석들이 깔려있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다 시간 가는 걸 잊을 뻔했다. 그 너머엔 굴밭이 펼쳐져있다.

이곳은 주차장이 넓고 화장실과 식수대도 갖추고 있다. 정자도 5개 동이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람이 거세서인지 입구 마을에 민박집이 두 채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야영객들이 정자 안에다 텐트를 친다. ‘텐트 설치 및 취사 금지’ 팻말이 붙어있는데도 이를 어기는 야영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덕적도에서 가장 절경인 곳을 추천하라면 나는 이곳을 꼽고 싶다.

덕적도는 면적이 큰 섬이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화ㆍ역사ㆍ생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이다. 인천시나 옹진군이 이를 지원한다면 인천뿐만 아니라 수도권 청소년들을 불러들일 수 있고, 더 확대하면 다양한 계층의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으리라.
 

큰구너머샘터 앞바다. 텐트를 치고 지내고 싶은 곳이다.
진리로 넘어가는 가파른 성황당길이 보인다.
바지락을 캐는 아주머니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천영기 선생은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월 1회 ‘인천 달빛기행’과 때때로 ‘인천 섬 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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