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인천투데이] 귀천, 빈부, 성별, 국적, 인종, 연령. 인간이 만들어놓은 모든 인위적 차별이 무용지물인 세상, 어쩌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실일 수도 있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 배우 톰 행크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코로나19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이러한 전염병의 특성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염병으로서 갖는 보편적 위험이 코로나19가 만들어내는 사회ㆍ경제적 위험 또한 보편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산시설 가중 중단으로 시작한 공급의 충격이 유통과 소비 영역으로 확산하면서 한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지만, 그 영향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따라 매우 상이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물론 위기는 연대와 같은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놓은 역사의 대부분은, 위기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혹독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줬다.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한 흑사병은 광기 어린 ‘유대인 학살’과 마녀사냥으로 여성을 혐오하고 살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1923년 일본 관동지방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 사회는 사회 혼란 주범으로 조선인을 지목하고 조선인 수만 명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흑사병과 지진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위험이었지만, 그 피해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위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현 사회 양상도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의 충격은 우리 사회의 특정한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돌봄 시설과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대부분 다시 여성의 몫이 됐고, 강제적으로 사람 간 교류가 끊기자 영세자영업자와 불안전 고용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생존을 걱정해야할 처지가 됐다.

상황이 이렇게 분명한데,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극복 지원금을 모든 시민에게 똑같이 제공해야한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우리가 보편주의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 원칙은 그냥 누구나가 아니라 ‘사회적 위험에 직면한 누구나’이어야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어떤 기업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면,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과 해고를 당한 사람 중 누구를 지원해야하는가.

행정적 불편함과 복잡함을 이유로 위험이 끼친 실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라는 손쉬운 선택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자산과 소득 조사 없이 위험에 처한 시민, 누구나의 생활을 지켜준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일부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지만, 기본소득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도 디지털기술 변화를 필두로 사회ㆍ경제적 변화가 과거와 같이 안정적 고용에 기초한 복지제도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직면할 위기의 성격과 무관하게 누구나에게 급여를 제공하는, 그런 보편성은 원칙적으로 기본소득에도 적용할 수 없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한국 사회를 완전히 침몰시키지 않는 한, 배에 물이 차오르는 것은 해가 보이지 않는 맨 밑바닥 선실이다. 한국이라는 큰 배의 위층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발코니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사고는 걱정거리일 수는 있지만, 생존을 위협하지 못한다. 지금 코로나19는 한국 사회라는 배의 아래쪽 선실부터 바닷물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우리가 다른 선실에서 살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정말 우리가 한 배에 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면, 지금 우리는 물이 찬 바닥 선실에서 살고 있는 이웃을 해가 비치는 갑판으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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