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주디 (Judy)

루퍼트 굴드 감독│2020년 개봉

[2020년 4월 2일 CGV주안역 관람] 매일 밤 어린 남매를 데리고 극장을 돌아다니며 노래하는 주디(르네 젤위거)는 한때 잘 나가는 스타였지만 지금은 공연료 150달러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노동자. 숙박비가 밀려 묵고 있던 호텔에서도 쫓겨나는 신세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이혼한 전 남편 집에 아이들을 맡겨두고 런던으로 떠나는 주디.

미국에서는 한물 간 스타지만 아직 영국에서 인기는 여전하다. 수면제와 우울증 치료제, 밥 대신이라 해도 좋을 술을 입에 달고 다니며 런던에서 빡빡한 공연 스케줄을 위태롭게 소화한다. 런던 투어를 챙겨주는 로잘린(제시 버클리)의 헌신적인 도움에도 약물과 알코올에 찌든 왕년의 톱스타는 관객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무대를 망쳐버린다.

주디 갈란드. 이름은 들어본 적 없더라도 흑백화면에서 회오리를 타고 컬러화면의 오즈로 날아가던 양갈래 머리 소녀는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1939년 작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대성공했고, 주디 갈란드는 열일곱의 나이에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사실 주디는 연예계에 종사하던 부모 덕에 두 살 때부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어린이 영화, 하이틴 드라마에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뮤지컬 배우였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혹독한 할리우드 시스템에 갇혀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며 성장기를 오로지 영화 촬영 스케줄에 맞춰야했던, 불행한 청소년이기도 했다. 술과 담배, 약물에 찌들어 자살 기도도 여러 차례. 어린 나이에 전성기를 맞은 왕년의 스타는 너무나 일찍 쇠락해버린다. 루퍼트 굴드 감독의 ‘주디’는 1960년대 후반 주디 갈란드의 짧은 생애의 후반부, 런던 투어 시절을 담는다.

한물 간 왕년의 스타지만 아직 이름값은 살아 있어 이름을 건 쇼가 가능했던 시절. 여전히 주디를 좋아하는 팬들이 극장을 찾지만 미국에서 지지리 궁상 일용노동자로 살았던 주디는 자신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오로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삶의 이유가 될 수 밖에 없는 성장기를 보낸 주디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 더욱 약물과 술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루퍼트 굴드 감독은 공연 전 불안에 떠는 주디의 모습과 감옥보다 더 혹독했던 할리우드의 어린 시절 주디를 교차로 보여주며 지금의 주디가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비틀비틀 무대 위로 올라가는 주디는 보기에도 조마조마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러나 마이크를 잡는 순간 돌변한다. 노래하는 순간만큼 그녀는 누구보다 빛난다. 그녀의 목소리에 위로받는 이가 어찌 게이 커플뿐이랴. 그녀의 삶은 누구보다 절망적이었지만 그녀의 노래는 그녀의 최고의 히트곡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가사 그대로 무지개 너머에 있을 희망을 꿈꾸게 한다.

1969년 47세의 나이로 요절한 주디 갈란드의 불행했던 삶은 이 영화로, 르네 젤위거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 르네 젤위거의 주디는 비단 불쌍한 희생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잔인한 할리우드 시스템과 자식을 제 소유물로 대했던 어머니의 학대에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린 불행한 피해자이긴 했으나, 불행 속에서도 무대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던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했던 아름다운 예술가였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벗어던지고 구부정한 어깨에 주름 가득한 얼굴, 비쩍 마른 다리로 휘청거리는 주디를 완벽하게 재현한 르네 젤위거는 1년 동안의 트레이닝으로 모든 공연무대를 라이브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약자에게 잔인했던 시스템에 스러져간 한 여성 예술가의 삶을 새롭게 재현한 영화 덕에 우리는 주디 갈란드를 새롭게 기억할 수 있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비운의 여배우가 아니라 끝까지 열정을 놓지 않았던 아름다운 예술가로. 오즈의 소녀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정 영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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