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백제 해상무역 거점에서 만난 풍광들, 덕적도(중)
비류백제 해상무역 거점에서 만난 풍광들, 덕적도(중)
  • 인천투데이
  • 승인 2020.03.3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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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기 선생의 인천 섬 기행] 덕적도(중)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조선시대 덕적진과 진리선착장을 찾아

덕적진터(현재 덕적면 관사 자리).
덕적진터(현재 덕적면 관사 자리).

덕진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덕적면 관사가 있다. 이 일대가 ‘진말’이라고 불리는 진리(鎭里)인데, 수군진(水軍鎭)이 설치돼 붙은 이름이다.

인천시립박물관의 ‘덕적군도 종합 학술조사’를 보면, 덕적진영은 원래 윗말 산 중턱에 있었는데 영조 때 첨사진(僉使鎭)을 다시 설치하면서 지금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서 백자 조각과 수키와 조각들이 수습됐다.

그리고 김광현의 ‘덕적도사(德積島史)’를 보면, 덕적진 관사로서 내외 삼문과 회랑이 있었고, 내아ㆍ장청(將廳)ㆍ사령청(使令廳)ㆍ통인실(通引室)ㆍ서적고 등 건물이 다수 있었다. 덕진진 뒤쪽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바로 밑에까지 조수가 드나들어 그 흔적이 지금도 수로로 남아있다. 이곳은 진리해변과 덕적도 앞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곳이어서 수군진으로 최적의 위치였을 것이다.

진리해변이 끝나는 곳, 이곳이 서포리로 넘어가는 언덕이 시작되는 곳인데 길 맞은편에 천일민박이 있다. 예전부터 이곳에 진리선착장(여객선)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선 선착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덕진진에 군병(軍兵)이 많을 때는 550명이 주둔했다하니, 그만큼 물이 풍부했으리라. 그래서 천일민박 주인에게 우물에 관해 물었더니 자세히 설명해준다.

현재 진리선착장.
현재 진리선착장.

“이곳에는 사시사철 물이 풍부해 우물도 많았다. 대부분 매립하고 지금은 세 개 남았다. 가뭄이 극심해도 우물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리고 예전에 이곳에 집을 지을 때 땅을 다지는데 270cm 정도를 파니 기와가 무더기로 나왔다.”

민박 주인은 그게 병기창 자리라고 하는데, 무기를 만들던 곳은 아닐 듯하다. 확인하기 위해선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선착장에 있던 건물터인 것은 분명하다. 민박 주인은 집 뒤 땅을 파면 지금도 기와가 많이 나올 거라고 한다.

덕적도를 돌아보며 ‘백제의 바닷길을 따라’라는 청소년 생태ㆍ역사ㆍ문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덕적도가 해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백제가 중국과 교류할 때 한나루(大津, 대진나루)에서 산동반도 등주(登州, 현재 蓬萊봉래)와 래주(萊州)를 오가는 항로와 덕적도는 관련이 깊다. 덕적도는 중국을 오가는 해상교통로에서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 수도였던 개성과 한양을 중심으로 황해도와 경기도 지역을 잇는 주요 수로였다.

해상제국 비류백제의 해상로를 복원하는 사업이 필요하다. 인천은 해상무역 거점 도시였다. 우리나라 제2의 무역항이 있는 해양도시 인천에 해양대학이나 수산대학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인천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해양 관련 꿈을 꾸게 해야 할 것 같다. 백제 때 해상교통로인 등주항로를 찾아 체험학습을 한다면 자부심 외에도 웅혼한 기상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밧지름해변으로

밧지름해변.
밧지름해변.
밧지름해변에서 바지락을 까는 아주머니.
밧지름해변에서 바지락을 까는 아주머니.

서포리로 넘어가는 한적한 길, 자동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다. 길가에 오디나무가 있고 끝물인 오디가 달려있다. 조금은 말라있지만 달달한 맛이 목을 축인다. 오르막길을 한 발 한 발 디디니 정상 못 미쳐 충혼탑이 있다. 6ㆍ25 참전용사를 기리는 비다. 고개를 넘어서니 보이는 밭들 바깥으로 밧지름해변이 나온다. 진리 바깥에 있는 마을이라 외진리(外鎭里)라고 했다가 발음이 변형되며 밧지름이라 부른단다.

밧지름해변으로 내려가니 수백 년 묵은 소나무들 속에 텐트가 몇 동 있다. 화장실과 개수대가 잘 갖추어져 있고 서포리보다 아늑하고 한적한 곳이기에 가족 여행지로 적격이다. 다만 해수욕장 경사가 급해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므로 조심해야한다. 이곳은 바지락이 많이 나오나 보다. 아주머니 한 명이 두 포대를 지고 와서 그늘에 앉아 바지락을 깐다.

덕적중ㆍ고교에서 교생 실습을 할 때 이곳으로 소풍을 왔다. 아이들과 한참 놀고 점심을 먹는데 막걸리 양조장을 하는 학부모가 대병에 막걸리 원액을 담아 보냈다. 선생님들은 막걸리가 매우 세다며 맛만 보고는 젊은 교생들이 먹으라 했다. 달짝지근하고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거의 3분의 2는 내가 먹었다. 그런데도 취기는커녕 말짱했다. 나는 희석소주나 양주보다는 우리 술에 적응력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술 빚는 사람들’ 모임에 나가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술을 빚어서 먹는다.

송은호 할아버지를 만나다

송은호 할아버지.
송은호 할아버지.

밧지름 마을 앞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송은호 할아버지를 만났다. 은진 송 씨로 덕적도에서 9대째 살고 있단다. 이작도 해적 이야기, 나당 연합군 이야기, 섬의 관혼상제 이야기 등을 하셨다. 특히 결혼은 한 마을 안에서도 하지만 근친을 피하기 위해 이작도와 문갑도 등 다른 섬사람과 한단다. 그러나 외가 쪽은 피할 수 없어 어차피 근친결혼 빈도가 높단다. 교생실습 때에도 선생님들이 ‘근친결혼 문제가 아이들 신체에 나타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또, 덕적군도에 수산업이 발전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나가사키배(일종의 중선으로 일본 나가사키에서 제작한 어선)가 들어와 안강망을 사용해 고기를 잡기 시작하면서라고 한다. 민어 잡이 파시는 굴업도에서 열렸는데 그 당시 위생개념이 없어 콜레라가 유행하기도 했고, 5월에서 7월까지가 민어 철인데 민어 우는 소리가 개구리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단다. 해방 이전에는 새우잡이가 전성기였는데, 울도 자갈밭에서 삶고 말려 팔아서 그 수익으로 일본 동경(도쿄) 등 외국에 유학생을 많이 보내 교수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슴 아픈 이야기. 굴업도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로 섬 주민들 간 갈등이 심해져 지금도 말없는 갈등이 속으로 흐르고 있단다. 그때 투쟁위원장을 했는 데, 1년에 20여 차례 인천으로 데모를 하러 나갔고, 3개월간 감옥에도 갔다. 걸리는 게 여러 가지 있었지만 섬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는 심정으로 싸웠다고 한다.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정책이 빚어놓은 갈등과 대립의 상처를 왜 주민들이 떠안아야 하는가. 주민들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 때까지 정부는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국민관광지 서포리해수욕장

서포리해수욕장.
서포리해수욕장.

서포리해수욕장은 국민관광지로 지정돼있다. 모래사장이 너비 300m에 길이 3km나 되며, 경사가 완만해 수백 미터를 나가도 물이 배꼽까지밖에 차지 않는다. 그리고 서해안 펄 물과 달리 이곳은 밑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맑다. 한 해에 1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외국인들이 어떻게 서포리해수욕장을 아는지 궁금했는데, 외국의 한국 관광지 소개란에 서포리도 나와 있어 찾아온단다. 다만, 세월호 참사 이후 관광객이 줄어들어 숙박업소와 식당이 파산 지경이라고 한다.

인천시가 섬 관광 활성화 대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마련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시급히 해결해야할 것이 있다. 예전에는 덕적도 배편이 도우선착장과 서포리선착장 두 곳을 들렀는데, 지금 서포리선착장은 들르지 않는다. 관광객 대부분이 서포리를 향하는데 이곳에 선착장이 없으니 서포리 주민들의 불만이 보통이 아니다. 서포리선착장을 없앤 이유가 궁금하다. 관광객 편의와 주민들 생계를 좀 더 고려했으면 좋겠다.

벗개 방조제와 저수지

벗개방조제 뒤 간척된 들판.
벗개방조제 뒤 간척된 들판.

서포리에서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넘어서니 왼쪽으로 들판이 펼쳐지고 그 끝에 벗개방조제가 나온다. 벗개방조제는 최분도 신부가 덕적도에 농경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과 90%를 축조한 후 국가로 이관해 완성됐다. 그래서 방조제 뒤 농지는 수로를 중심으로 구획이 잘 정리돼있다.

방조제 너머 물이 빠진 펄 멀리까지 동네 사람들이 나간 것 같다. 말뚝을 박아놓은 곳에도 보일 듯 말 듯 몇 명이 무엇인가 잡고 있는데, 한 사람이 발자국만 뒤로 남긴 채 삽을 들고 한참을 걷고 있다. 낙지를 잡으려는지 조개를 캐려는지 바다 쪽으로 한없이 걷는다.

방조제와 농로를 따라 걷는 재미가 있다. 사람들이 없어 사색하며 걷기 좋은 길이다. 방조제 뒤로는 들판이 넓게 펼쳐지고 방조제 끝에 가니 벗개저수지가 환상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저수지 건너편에 조망대도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 올라갈 수 없었다. 조망대 앞에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섬의 어딘들 시간이 멈춘 것 같지 않은 길이 있겠는가? 그래도 이 길은 산책로를 한가롭게 거닐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뜻하지 않은 풍광을 만나는 것, 이것만으로도 또 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기대하지 않은 의외의 여행지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한번 들려보기를.

※ 천영기 선생은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월 1회 ‘인천 달빛기행’과 때때로 ‘인천 섬 기행’을 하고 있다.
 

벗개저수지 풍광.
벗개저수지 풍광.
천일민박 아저씨가 안내해준 우물.
천일민박 아저씨가 안내해준 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