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를 돌아보다
[세상읽기]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를 돌아보다
  • 인천투데이
  • 승인 2020.03.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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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인천투데이]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가해자 신상이 공개됐다. 이 사건 최초 보도 때부터 상상을 초월한 범행수법과 극악무도한 성범죄라는 사실에 온 국민이 경악했다. 가해자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60만 명 넘게 참여했고, 한 방송사는 단독보도로 가해자의 실명을 알렸다. 그 직후 경찰은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하고 가해자 조주빈의 나이와 얼굴도 공개했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악몽에 시달리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반면 가해자들은 악마 같은 얼굴을 뒤로 하고 버젓이 살아가고 있다. 조주빈의 신상 공개가 온 국민에게 환영받는 이유다.

우리나라엔 1990년대까지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학생들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인권침해 논란이 일자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러다 강력범죄가 수년간 연달아 발생하면서 신상 공개 여론이 높아지던 중,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이후 다시 시행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에 따라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성폭력처벌법에서도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성폭력범죄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와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에는 얼굴, 성명과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현행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몇 가지 비판적 검토를 피할 수 없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가 있어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을 ‘피의자’라 하고, 이후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을 ‘피고인’이라 한다. 법원의 판단 결과 유죄가 인정된다고 보아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비로소 ‘전과’가 생기고 ‘범죄자’가 된다.

형사 피고인은 헌법에 따라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고,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피의자 역시 무죄로 추정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현대 민주사법의 근간이며, 이로 인해 고문이 근절되고 불구속 수사가 확대되며 자백 강요와 유도심문 등이 금지된다. 또한 이로써 공정한 재판이 가능해지고, 사법부 판결이 그 위엄을 갖는다.

피의자 단계에서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이러한 무죄추정 원칙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 온다. 언론 보도로 공개된 피의자는 여론재판을 통해 범죄자가 되고, 강력한 여론이 사법부에 부당한 예단을 갖게 해 공정한 재판을 그르칠 수도 있다. 피의자가 죄를 인정했으니 범죄자라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유죄 선포를 법원의 권한으로 정했고, 그 절차를 지켜야만 가해자를 정당하게 벌할 수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또한 확정된 유죄 판결에 의한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도 기간을 정해 거주지 주민들에 한해 정보통신망으로 하는데, 피의자 신상 공개는 사법부의 통제가 전혀 없이 수사기관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 한번 공개된 신상은 기간 제한 없이 영원히 남는다. 신상정보 공개 결정에서 당사자의 의견개진 절차나 이의제기 절차도 없어 적법성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는 조주빈 스스로 표현하듯이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 한 언론은 그의 대학시절 기고글까지 찾아내어 악마의 본성을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해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으로 피해자들이 위로받을 수 있을까. 진정한 치유와 범죄예방을 위해 현행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적절하고 정당한 것일까. 악마의 얼굴을 본 우리 사회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