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범죄 유지시키는 문화 직시해야
[시론] 성범죄 유지시키는 문화 직시해야
  • 인천투데이
  • 승인 2020.03.3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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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N번방ㆍ박사방 사건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악마 같은 몇몇 범죄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자리하고 있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문화’가 원인이다.

‘여자는 ~해야 한다. 남자는 ~해야 한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모든 사람이 여성이나 남성 둘 중 하나여야한다는 성별이분법적 사고 안에서 여성은 여성성, 남성은 남성성을 가져야한다는 성역할 수행을 기대하는 사고방식으로 많은 사람이 ‘여성의 박스’와 ‘남성의 박스’로 나뉜 ‘젠더박스’에 갇혀 살고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젠더박스는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이어진다.

유독 남성에게만 관대한 성문화는 성폭력으로 쉽게 이어진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인 대상, 거래될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된다. 남성들은 이런 문화에 잘 적응해 공조하거나 방관해야 남성카르텔 안에서 ‘잘’ 지낼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남성은 성관계를 해도 될 뿐 아니라 많이 해본 남성이 ‘진짜 남자, 멋진 남자, 잘나가는 남자’로 인정받는다. 반면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되기 어렵고 성관계가 금기시된다.

이렇게 왜곡된 성인식은 여성에게 훨씬 더 강력한 성엄숙주의로 다가오며 성범죄를 당하더라도 오히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숨겨야하게 만든다. 성범죄는, 가해자는 가해 사실을 자랑하고 피해자는 수치스러워하는 범죄가 됐다. 이는 성범죄를 지속하게 만든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는 확신도 한몫 한다. 또한 수많은 사람이 불법촬영물을 소비하는 자신의 행위가 성범죄라는 생각조차하지 못하고 있다. ‘강간문화(Rape Culture)’라는 용어는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돈이면 뭐든지 해도 되는 천박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성 착취로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며 신이라도 된 듯 권력을 느끼며 천문학적 단위의 돈까지 벌 수 있는 사회가 한국이다. 양진호와 손정우에 이어 조주빈까지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최근까지 성범죄자들이 처벌을 피하는 모습을 숱하게 봤다. 교육과 법과 제도가 미비할 뿐 아니라 법 집행에서도 폭력이 폭력으로 정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남성들이 성폭력과 성범죄에 익숙해지고 문제의식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폭력이 폭력인지 모르고 폭력이 장난이 되고 놀이가 되는 한, 성범죄의 폭력성은 커지고 가담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조주빈이 잡혔다고 이 사건이 끝난 게 아니다.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IT기술을 이용해 성범죄 역시 점점 더 치밀하고 교묘해질 것이다. 그래서 N번방ㆍ박사방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주동자뿐만 아니라 구매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아가 처벌뿐만 아니라 예방을 위해 어떤 교육, 캠페인, 정책을 펼칠 것인가. 이제는 공고한 남성카르텔과 강간문화를 무너뜨리고 성폭력과 성범죄가 더 이상 쌓일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촉구한다. 첫 번째, 입법부는 범죄에 합당하는 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법을 신속히 마련하라. 한국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를 고려해 범죄에 따른 응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법을 개정해야한다. 두 번째, 사법부는 판례에 기준을 두지 말고 성인지 관점을 가지고 법을 해석하고 국제 인권 기준에 맞는 판결을 하라. 세 번째, 교육부는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가 다르다고 가르쳐 젠더박스를 유지ㆍ강화하고 성범죄 발생 시 피해자를 탓하게 만드는 현행 성교육 표준안을 폐기하고 국제 기준에 맞는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