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준수 전교조 인천지부 해직교사

2003년 평양에서 구입한 교육 관련 책 문제 삼아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서 열람 가능한데 이적표현물
이명박 정권 말기 압수수색 “전교조 탄압 표적수사”

[인천투데이 조연주 기자] 교사들이 통일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70년대 정권이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대법원 판결은 올해 초에 나왔다.

올해는 어떤 해인가.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기이며, <tvN>의 주말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두고 수구정당이 북한을 미화하고 선동한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가 국민들로부터 비웃음을 산 해이기도 하다.

2년 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잠시 동안이지만 북측에 건너가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도 이뤄지면서 북핵 문제 해결이 진전되고, 종전과 평화체제 수립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법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 네 명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판결을 내렸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전교조 교사가 파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시민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시대를 거스르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유죄 판결을 받고 파면된 교사 4명은 모두 전교조 인천지부 조합원이다. 최근 만난 백준수 교사의 표정은 생각보다 덤덤해보였다. 그는 “지난 2012년과 2013년 압수수색과 검찰조사를 거치는 동안 이미 많이 힘들었기에 오히려 지금은 괜찮은 것 같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아래는 백준수 해직교사가 겪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백준수 해직교사.

통일부서 열람 가능한데 이적표현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1991년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교직생활과 동시에 전교조 통일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학생들에게 통일교육을 하기도 했다. 통일교육은 미래세대가 어떻게 통일세상을 맞이할지에 관한 것이다. 반(反)평화적 분단 현실을 받아들이는 민감함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을 기르고, 평화 정착과 통일 사회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의지와 역량을 길러내는 내용이다.

2003년 7월에 전교조와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공식적으로 조선직업총연맹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평양에 갔으며, 2004년에는 북한 교원이 남으로 내려오는 등, 왕래를 이어갔다. 2003년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동화책과 교육 관련 도서들을 구입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2012년 1월, 이명박 정권 말기에 경찰들이 집과 학교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소지죄 등이었다. 당시 국정원장은 원세훈이었다. 기획된 표적수사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재판부가 판결한 이적표현물이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합법적인 방북 과정에서 구입한 도서다. 또, 이적표현물은 연구 목적인 경우 무죄를 선고하는 게 관행이었다. 공식적인 남북 교육 교류 활동을 국가보안법으로 엮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명백한 전교조 탄압이다.

문제가 된 책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 책이 아니다. 탄압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언제든지, 어떤 이유로도 국가보안법으로 걸고 넘어뜨릴 수 있다는 의미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돌던 말이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이게 국가보안법의 핵심이라고 본다. 어느 누구든 국가보안법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런 폭력적인 법이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검찰조사와 직위해제, 복직 또다시 파면
제자들에게 최선 못 다한 게 가장 미안해

압수수색과 조사가 진행된 2012년과 2013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학교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때 제자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2012년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새 학교에서 첫 학기 첫 수업 날이라는 설렘을 품고 입학한 제자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야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때는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힘들어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있기에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1심 선고는 2015년 1월에 나왔다. 혐의 두 가지 중 이적단체 구성 혐의는 무죄, 이적표현물 소지는 유죄로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015년 4월 18일 직위가 해제됐다. 2018년 복직 결정이 나기까지 3년간 학교를 떠나있어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3년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학교 밖 활동과 검찰조사 등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때 복직되면 하루하루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복직은 인천시교육청의 결정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전교조 출신 도성훈 교육감이 당선되고, 이듬해 시교육청은 ‘교육부의 직위해제 명령이 교육감의 재량권을 침해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교육감 직권으로 복직을 결정했다.

복직 후 1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교단에 있음을 감사했다. 매순간이 소중했다. 아이들한테 열심히 하려했고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서울고등법원은 2016년 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즉시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사건은 수년간 대법원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 사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그때부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판결이 미뤄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1월 9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대법원이 국가보안법 7조 5항(이적표현물 소지죄)을 들이댄 검찰과 이를 인정한 1ㆍ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된 교사 네 명은 자동 면직됐다. 제자들에게 인사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또 다시 교정을 떠나게 됐다.

‘국가보안법 아직 죽지 않았다’는 신경전
국가보안법 폐지는 양심과 자유 위한 것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을 일종의 신경전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되고, 한반도 평화를 당당히 외칠 수 있는 때가 왔더라도 국가보안법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결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양심과 자유에 관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남북 평화를 가로막고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제한하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악법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치안유지법’에 뿌리를 둔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돼야 마땅하다.

3월부터 전교조 상근자로 출근하고 있다. 교단에 다시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7조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 유죄 판결 또한 무효가 돼 복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7조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다. 죄형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돼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재판소가 올바른 결정을 할 것이라 믿는다. 시대착오적 판결이 뒤집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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