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근 연수구 주민

[인천투데이] 수십 년간 감독관 없이 시험을 치른 학교에서 한 학생이 커닝을 하다 적발됐다. 그런데 적발된 학생의 말이 가관이다. “학급 성적을 올리기 위해 그랬다. 애초 커닝을 할 수 있게 감독관을 배치하지 않은 학교가 잘못 아니냐.” 그러자 다른 반 학생이 거든다. “옆 반 학생이 커닝해서 반 성적을 올리려고 하니 우리도 커닝하자. 자기 실력대로 점수를 받는 건 바보다.” 학교와 학생 중 누구를 탓해야하나?

시골 사는 어머니에게 제일 급한 건 언제나 먹고사는 문제였다. 쌀 한 톨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했던 과거의 기억이 아직도 그의 삶에 배어 있다. 평생 격동의 세월을 보낸 어머니의 정치적 선택지는 늘 그랬듯 보수정당이었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나는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한다. 정치적 자유가 가진 민주주의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정치적 선택이 존중받아야한다는 말이 퇴색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요즘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이들에게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본다. 익명 속에 숨어 댓글과 거짓 소문으로 서로 헐뜯는 광경은 이제 익숙할 지경이다.

한때는 이를 이념갈등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선악 대결로 포장한다. 심지어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동원하는 변칙과 편법도 문제 삼지 않는다. 내가 하면 정의요, 상대가 하면 불의다. 정치적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머니도 적이요, 아들도 적이다.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 있는 이 정치판 위에서 3등의 의미를 곱씹는 건 사치처럼 여긴다. 3등과 4등의 존재는 그저 승리를 위한 수단일 뿐, 무조건적 희생만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이 약육강식의 판에서 승자들이 말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공정한 경쟁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고 노력하는 삶이 값지다고 설파한다. 자신의 야비함과 비겁함은 대의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상대방을 더 격렬하게 물어뜯는 이 비정한 선거판을 지켜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고통을 겪는 요즘 정치권은 여전히 승리를 위한 주판알을 튕긴다. 이게 다 국민을 위한 거라고 포장하면서 말이다.

‘정권을 심판하자’, ‘야당을 심판하자’ 두 거대정당이 위치만 바꿔가며 선거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자기 진영이 선거에서 지기라도 하면 마치 대한민국에 큰일이 닥칠 것처럼 유권자를 다그친다.

6ㆍ25 참전용사도, 4ㆍ19 혁명을 주도한 사람도, 5ㆍ16 군사정변을 경험한 사람도, 6월 항쟁을 목 놓아 울부짖은 사람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대통령을 내려 앉힌 사람도 예외는 없었다.

초등생 딸아이가 묻는다. 커닝한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현실을 보고 있자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고민이다. 학급 평균 성적을 높이려면 커닝은 해도 된다고 해야 할까. 궤변, 그리고 오만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이 학생들을 혼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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