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지 인천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선민지 인천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인천투데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기업들이 재택근무 등으로 전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청년노동자와 청년창업가가 불안을 넘어 현실에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단어도 등장하고 있고, 건물주가 임대료를 인하하고 고통을 함께 분담한다는 미담도 들려온다.

인천청년유니온 전화상담이 늘기 시작했다. 회사가 휴업했는데 유급휴가가 가능한 건지, 월급은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건지, 쓸 수 있는 휴가가 없어지는 건 아닌지가 질문의 대부분이다. 한 달 벌어 한 달을 사는 청년들과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는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 것, 격리를 해야 하는 것이 몸이 아픈 것과 비슷한 공포가 된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계속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지켜보는 게 힘겹다.

마치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상황에서도 노동자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가혹했다. 2월 27일 아침, 종로구청은 고(故) 문중원 기수 문제 해결을 위한 농성장을 경찰병력을 동원해 철거했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으로 집회를 금지한다는 이유였다.

故 문중원 기수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15년간 일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숙사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무슨 말을 먼저 써야할지 모르겠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경마장에 인생을 걸어 보겠다고 들어왔는데 언젠가부터 기수라는 직업은 한계가 있었다”라고 한국마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한 유서가 함께 발견됐다.

한국마사회는 축산 발전에 이바지하고 국민의 여가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기업이다. 연 매출은 무려 8조 원이다. 그런데 경마공원의 연간 재해율은 13%로 국내 평균 재해율의 25배를 넘는다. 서울, 제주, 부산경남에 경마공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사회-마주-조교사-기수와 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신분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서 문중원 기수는 제 목소리를 내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마사회는 기수 면허 교부와 갱신 권한을 가지고 있고, 조교사는 말 탑승 권한을 쥐고 있다. 갑질 피라미드 안에서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성적에 따라 벌이가 달라지고, 다친다는 걸 알아도 목숨을 걸고 탈 수밖에 없었다. 마사회의 이름으로 일하지만, 고용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문제제기를 한 노동자에게 기업은 사과는커녕 유족들을 탄압하고 농성장마저 철거했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상상황에 함께하기 위해 희망버스 등 집회를 취소하며 정부의 방역 방침에 협조했지만, 그 결과는 분향소 강제철거로 돌아왔다. 결국 故 문중원 기수를 떠나보낸 부인 오은주 씨가 단식을 시작했다.

인터넷에 한국마사회를 검색하면 마사회 채용면접을 준비하는 많은 청년의 영상이 나온다. 고용이 불안정한 현 사회에서 높은 경쟁을 뚫고 청년들이 도전하는 공기업의 현주소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문제는 최근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도 포함된다.

코로나19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정부를 응원한다. 하지만 우리 삶의 기본이 되는 노동현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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