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진 쉐프, “비건식은 맛없다는 편견 깨고 싶어요”

[인천투데이 조연주 기자] 인천 중구 개항로에 위치한 ‘더 비기닝’은 고기는 물론이고, 생선과 계란도 팔지 않는 올 비건(ALL VEGAN) 식당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모두를 위한 채식, 건강한 한 끼 드시러 오세요’라는 슬로건에 주문이라도 걸린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 손님들이 들어섰다.

임세진 쉐프는 “이제 조금씩 한가한 날이 줄어드는 것 같다”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식사 예약전화는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더 비기닝’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했다.

임 쉐프는 왜 비건 식당을 인천에 열었을까. 임 쉐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건 식당 ‘더 비기닝’의 사장 임세진 쉐프.

다이어트하기 위해 비건식 시작

자연식물식(이하 비건식)을 알기 시작한 것은 아내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부터였다. 자연식물식이란, 채소를 먹는다는 의미의 ‘채식’을 확장한 말이다. 과일, 채소, 통곡물 등 자연에서 가져온 식물성 식품을 주식으로 하는 식사법이다. 처음에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비건 식사를 시작했는데, 몸이 가벼워지고 다음날 붓기도 없어지고 몸을 불편하게 했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비건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데이트 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서울 망원동, 연희동 등에 있는 비건 식당들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고기도 안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다니’ 하고 깜짝 놀랐다. 음식을 먹어보고는 ‘고기도 안 들어가는데 맛있네?’ 하고 더 놀랐다. 하루에도 두 번씩 고기를 구워먹던 우리 커플이 이제는 엄격한 비건은 아니지만 ‘비건 지향’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를 즐겨했고, 특히 양식 요리를 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남동구 구월동, 부천, 송도 인근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러고 나서는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했는데, 모든 소스나 레시피 등이 본사에서 나온 걸 가져다 쓰다 보니 회의감이 들었다. 요리를 할 줄 아는데도 만들어진 소스를 가져오니까 재미없었다.

“인천에 비건 식당이 없으니 서울로 가는 거 아니겠어”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비건식에 관심을 가질 즈음, 마침 운영하고 있던 프랜차이즈 식당 계약이 끝났고, 내 레시피대로 요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비건 디저트를 겸한 비건 카페를 고민했지만 이미 인천에 몇 군데 있었고, 내 전공인 양식을 살려 레스토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고민을 현실로 만들어준 건 아내의 결정적 한마디였다. “비건 식당 오빠가 만들어줘. 인천에 식당이 없으니까 자꾸 서울로 가는 거 아니겠어.”

‘왜 하필 동인천역 근처에 식당을 차렸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비건 식당이 있을만한 곳으로는 동인천밖에 안 떠올랐다. 느낌이 그랬다. 주안도, 구월동도 안 어울릴 것 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가본 비건 식당은 작은 골목 아기자기한 건물에 있었다. 다른 곳들은 크고 화려해서 안 어울렸다. 동인천역 부근에서 매물을 찾았다. 지난해 4월부터 매물을 찾기 시작해 백반집이었던 곳을 봤는데, ‘여기구나’ 싶어 그 길로 계약했다. 5월 말 인테리어 끝내고 7월 22일 개업했다.

이른바 ‘오픈빨’은 없었다. 처음부터 휑했다. 하루 매출이 3만 원이었던 적도 있다. 많이 불안했다. 뱃속에 아기도 있는데 이대로 괜찮을지, 고민이 많았다. 잘 안 되면 메뉴를 바꾸고 술집으로 살짝 돌려 운영할 생각도 했다. 요즘은 비건에 관심이 많아지고 수요도 많은 것은 맞지만, 아직까진 너무 일렀나 하는 생각도 했다.

비건 식당 ‘더 비기닝’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은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한다.

‘고기 없이 괜찮을까’ 두려움 이기는 게 가장 큰 도전

가장 큰 두려움은 ‘정말 동물성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올 비건 메뉴만으로 괜찮을까?’ 하는 것이었다. 정식 오픈하기 전까지 수없이 테스트했다. 특히 양식에는 동물성 재료가 안 들어간 게 없고, 파스타에는 유제품 안 들어간 게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집에서도 요리하고 먹어보고 평가받는 과정을 수없이 거쳤다. 그 결과로 나온 게 지금의 메뉴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임시 오픈했을 때는 조개를 사용하는 봉골레파스타를 메뉴에 넣기도 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정식 오픈할 때는 빼버렸다.

지난해 8월에 네이버 ‘우리동네’ 코너에 우리 식당이 게시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무더위에도 장사가 잘 되다가 9~10월은 주춤했고, 11월부터는 다시 손님이 꾸준히 늘고 있다. 여전히 한산할 때도 있지만, 한가하다고 느끼는 날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단골이 조금씩 생기고 있고, 입소문을 탔는지 새로운 손님도 많이 만나는 중이다. 주기적으로 경기도 일산에서 오시는 손님도 있다. 내가 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보다도 손님들이 소문을 내주신다. 인천에는 비건 디저트 카페나 메뉴에 비건식이 추가돼있는 곳은 있지만, 모든 메뉴가 비건인 곳은 ‘더 비기닝’이 유일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처음엔 혼자 하는 게 바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 예전 주방 막내 시절에 하루에 돈 조금 받고 14시간씩 일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조건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규모가 작고, 혼자 일하다보니 손님을 받지 못하는 때도 많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에는 아홉 팀을 그냥 보낸 적도 있다.

손님들을 돌려보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니까, 요새는 오픈 전에 예약전화를 하고 들르시는 손님도 생겼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싶어도, 주방 동선이 안 나와 힘들다. 일단은 오래 걸리더라도 혼자서 운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임세진 쉐프는 개항로의 느낌이 비건 식당과 가장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고기 안 들어가도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고기 안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 만들래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더 비기닝’을 찾는다. 가장 먼저는, 비건식을 실천하는 손님들이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기 위해, 또는 육식이 탄소 배출과 기후변화의 주범이라고 보고 비건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 비건 손님들은 외식할 때 비건 메뉴가 없는 곳이 다반사이고 있다고 해도 선택지가 얼마 없어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어떤 분들은 고기가 같은 상에 올라오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뭘 골라도 비건식이니 편하게 메뉴를 고른다. 편안한 표정을 보는 것이 내 작은 기쁨이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물권 등, 어떠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정말 채식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도 가게를 찾아주신다. 위의 절반을 절개해 채식을 해야만 하는 손님도, 유제품이나 고기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먹지 못하는 손님도 많이 찾아주신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오는 손님도 있다. 가게를 열어줘서 고맙다는 얘기도 몇 번 들었다. 새삼 우리의 식탁이 동물성 음식들로 가득하단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재방문률이 높은 것은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논 비건(NON VEAGAN,비건식을 하지 않는 사람) 손님도 많이 오신다. 고기 안 들어가서 맛없을 거라는 막연한 편견을 우리 식당에서 버리고 갔으면 좋겠다. 오지 않을 사람들은 아예 들어올 생각도 안 한다. 창문 너머로 “비건이네, 고기 안 들어가면 나랑 안 맞아” 하고 그냥 가시는 분도 많다. 나중에는 ‘고기 안 들어가도 맛있네?’라는 반전을 주는 식당에서 고기 안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식당으로 거듭나고 싶다.

명의 존엄성을 고민하자는 일종의 실천

'더 비기닝'의 브레이크 타임은 오후 세시부터 다섯시 반까지다. 

비건식은 단순히 고기를 넣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요리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고민하자는 일종의 실천이기도 하다. 한번은 어느 손님으로부터 트러플 버섯 오일을 사용한 것을 두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 손님은 ‘트러플 버섯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개가 착취당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지금은 손님들이 트러플 오일을 찾아서 계속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날 비건식이란 단순한 요리를 넘어선 사회적 움직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계속해서 찾아주시는 손님들을 만족시키는 게 내 가장 큰 목표다. 좀 더 자리를 잡으면 규모를 키워볼 생각도 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다른 사람한테 못 맡길 것 같다. 조금씩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우리 식당과 함께 인천에서도 비건식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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