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가장 가까운 섬, 교동도(하-2)
북녘에 가장 가까운 섬, 교동도(하-2)
  • 천영기 시민기자
  • 승인 2020.03.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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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기 선생의 인천 섬 기행| 교동도(하-2)
교동팔경에 나오는 동진포(東津浦)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교동팔경에 나오는 동진포(東津浦)

교동팔경 중 하나인 동진포.
교동팔경 중 하나인 동진포.

교동읍성 남문을 나와 왼쪽으로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밭 위에 객실이 두 개인 농원형 엔젤펜션이 나온다. 그 언덕에 올라서면 석모도와 미법도, 서검도, 남산포가 눈앞에 펼쳐진다. 풍광이 좋은 곳이고 운치도 있어 이곳 식탁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부리고 싶다.

교동도에는 숙박시설이 거의 없다보니 여행객 대부분이 강화도에 묵거나 당일치기로 섬을 스쳐지나갈 뿐이다. 날이 추운 겨울, 하얗게 눈이 덮인 날 이곳에 묵고 싶다.

계속 길을 따라 바다 방파제 길을 조금만 걸으면 배 한 척 매어있지 않은 동진포가 나온다. 동진포는 읍성이 축조된 후 사용된, 교동에서 조선시대에 가장 규모가 큰 포구다. 황해도에서 오는 세곡선이 주로 머물렀으며, 서울ㆍ인천ㆍ해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그래서 강화도를 오가는 어선들은 이 포구를 이용했다. ‘교동군읍지’를 보면, 이곳은 교동팔경 중 하나로 동진송객(東津送客)이라 해서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광경이 볼만했다고 한다.

또, 중국으로 가는 하정사신(賀正使臣, 새해를 축하하러 가는 사신)이 교동에 와서 일기를 살펴본 후 서해로 나갔으며, 사신들이 임시로 묵는 동진원이라는 객사가 있었다는데 장소는 현재 알 수 없다. 조선시대 배를 정박하고 사람들이 오르내렸던 동진포의 석축은 조금씩 물살에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조선시대 부두 원형을 동진포에서 만날 수 있는데, 시급한 보수가 필요하다. 바로 앞에는 상여바위가 석모도를 병풍처럼 두르고 바다에 둥실 떠 강태공의 한가로운 정취만 돋우고 있다.

월선포와 송암 박두성 선생 생가 터

월선포로 가는 제방길.
월선포로 가는 제방길.
월선포.
월선포.
박두성 선생 생가터에서 바라본 구 교동교회.
박두성 선생 생가터에서 바라본 구 교동교회.

동진포에서 월선포로 가는 길은 제방을 따라 바다를 끼고 가는 2.3km 길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 월선포는 교동대교가 건설되기 전 강화도 창후리에서 여객선이 들어오는 교동도의 유일한 선착장이었다. 교동대교가 개통되자 여객 항로 역할은 끝났고 이와 함께 인적도 거의 끊겼다. 그러나 강화나들길 9코스 출발ㆍ도착지여서 간혹 사람들이 찾지만 지금은 낚시꾼들만 보일뿐이다.

월선포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옛 교동교회(교동면 교동남로 423번길 71) 건물이 있다. 교회 입구 길 건너편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1926년에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 생가 터(교동면 상용리 516번지)가 있다. 2009년에 ‘송암 박두성 선생 생가 복원 및 기념공원 사업회’가 창립된 후 우여곡절 끝에 인천시에서 터를 매입해 올해까지 생가를 복원하고 주변에 기념공원도 만들어 흉상을 설치할 계획이란다.

진망산(남산)에 있는 남산포와 사신당

남산포에 있는 계류석.
남산포에 있는 계류석.
남산포구에 정박 중인 어선들.
남산포구에 정박 중인 어선들.
남산포구 뒤 언덕 위에 있는 사신당.
남산포구 뒤 언덕 위에 있는 사신당.

동진포에서 서쪽으로 수로 앞으로 난 포장길을 따라 1km 정도만 가면 진망산(남산) 밑에 있는 남산포가 나온다. 포구로 들어가는 삼거리 못미처 왼쪽으로 시멘트로 벽을 바른 집 옆에 배가 정박할 때 밧줄을 묶는 계류석(繫留石) 한 개가 있다. 담벼락 옆에 있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예전에는 여기까지 바다였다. 간척하면서 수로를 만들고 이곳에 집이 들어섰다고 한다. 안유가 원나라에 가서 공자와 주자의 초상을 처음으로 가져오며 들어왔던 포구이기도 하다.

동진포가 섬사람들이 이용하던 부두라면, 남산포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던 포구다. 남산포는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어영의 함선이 정박했던 나루터였으며, 바로 앞 바다가 수군의 훈련장이었다.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를 보면, 남산포 주변에 군기고와 육물고, 선창 등의 창고와 어변정이라는 누각이 있었으나 현재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남산포구에는 차량 20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혼잡하다. 그래서인지 천막을 크게 쳐 새우튀김과 꽃게튀김을 판다. 매우 고소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 기억에 이끌려 일부러 찾아갔는데, 문을 닫았다. 아마도 평일에는 관광객이 별로 없어 장사를 하지 않는 것 같다. 혹시 이곳에 들르면 한번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남산포구 주차장 뒤로 보면 사신관지와 사신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돌길이 가팔라 밧줄이 매여 있어 줄을 잡고 오르는 것이 안전하다. 과거 송나라와 사신이 왕래할 때 사신관으로 가기위해 바닷가 바위를 징과 끌로 쪼아 계단을 만들어 사신 등선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배가 정박하기 어려워 남산포에 축대를 쌓으며 거의 묻혔다고 한다. 아무튼 줄을 잡고 오르면 사신관지는 보이지 않고 사신당 건물만 한 채 있다.

건물 내부에 임경업 장군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문이 닫혀 확인하지는 못했다. 한국전쟁 때 당집이 없어진 것을 1969년에 다시 세웠는데, 중국 사신이 교동도 앞을 지날 때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 곳이라 한다.

빛바랜 추억의 대룡시장

대룡시장 내 교동이발관.
대룡시장 내 교동이발관.
대룡시장 내 동산약방.
대룡시장 내 동산약방.
대룡시장 내 방앗간.
대룡시장 내 방앗간.
대룡시장 내 신발가게.
대룡시장 내 신발가게.
대룡시장 내 거북당.
대룡시장 내 거북당.
대룡시장 뒷길 벽화.
대룡시장 뒷길 벽화.
대룡시장 내 영화포스터 벽화와 궁전다방.
대룡시장 내 영화포스터 벽화와 궁전다방.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연백 등에서 온 피란민들 중 전쟁이 끝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대룡리로 들어와 산 사람이 많았다. 이곳에는 원래 우거진 소나무 숲이 있었는데 그들이 땔감으로 쓰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골목시장인 대룡시장이 만들어졌다. 원래는 읍내리가 교동의 중심지였는데, 이 시장이 번성하자 학교ㆍ면사무소ㆍ경찰지서가 대룡리로 다 옮겼다. 이렇게 대룡시장은 50여년 성세를 누리며 교동도 경제 발전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실향민 1세대가 거의 돌아가시고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대룡시장은 1960~70년대의 풍모를 간직하며 퇴락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가게를 실향민 2세대가 운영하고 있는데, 발전되지 않는 이유는 땅 주인과 집 주인이 다른 것, 섬에서 육지로 학교를 보낸 많은 2세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대룡시장은 빛바랜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과거 향수가 묘한 매력을 풍기던 곳이었다.

교동대교가 연결된 후 관광객들에게 소문이 나며 이곳도 서서히 현대화 바람이 불고 있다. 2017년부터 인천시와 강화군은 대룡시장 골목길 조성 사업과 재정비 사업을 펼쳐왔다. 그러나 원래 시장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가게 리모델링과 벽화로 인해 깔끔하게 보이지만 이곳을 일군 실향민들의 역사와 상관없이 부조화한 모습에 당황할 뿐이다. 과거의 풍물을 간직한 곳이기에 적절하게 보존하면 좋을 텐데, 갈 때마다 너무 많이 바뀐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 일까.

게다가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이곳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 연세(年稅) 30만 원 정도 하던 것이 월세 30만 원으로 10배 이상으로 올랐다. 소문보다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세는 오르고 관광명소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지인들이 서서히 상권을 잠식하고 있어 오히려 임대를 내놓거나 방치된 가게와 건물도 늘고 있다.

대룡시장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장소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게 될지, 아니면 너무도 변한 모습에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리게 될지는 오로지 주민들의 몫일 것이다.

난정저수지 - 한 바퀴 도는 데 대략 5km 정도이며, 어느 계절에 돌아도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해바라기 10만 그루를 심어 9월에 ‘난정마을 해바라기 축제’를 연다니, 이때 교동도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다.
난정저수지 - 한 바퀴 도는 데 대략 5km 정도이며, 어느 계절에 돌아도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해바라기 10만 그루를 심어 9월에 ‘난정마을 해바라기 축제’를 연다니, 이때 교동도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다.
천년수 무학리 은행나무 - 무학리 542번지에 소재한다. 높이 25m, 둘레 7.5m로 거목인데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가지가 뻗어 올라가 가까이서 보면 여러 그루 나무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나무 밑에서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 뒤틀린 가지들을 보자니, 껍질마저 세월의 흔적을 새겼는지 쩍쩍 갈라지고 울퉁불퉁한 것이 기괴한 느낌을 자아낸다.
천년수 무학리 은행나무 - 무학리 542번지에 소재한다. 높이 25m, 둘레 7.5m로 거목인데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가지가 뻗어 올라가 가까이서 보면 여러 그루 나무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나무 밑에서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 뒤틀린 가지들을 보자니, 껍질마저 세월의 흔적을 새겼는지 쩍쩍 갈라지고 울퉁불퉁한 것이 기괴한 느낌을 자아낸다.
망향대 - 율두산(밤머리산) 뒤쪽에 있다. 황해도 연백군 연압읍까지 거리는 직선거리로 3km, 크게 소리를 지르면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가까운 거리다. 이곳에서 북녘을 보면 연안읍의 진산인 비봉산과 남산, 남대지 등 드넓은 연백평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 들러 연백평야를 바라보며 평화를 꿈꾸는 것 자체가 남녘과 북녘이 긴장과 갈등을 푸는 상생의 길이고 통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망향대 - 율두산(밤머리산) 뒤쪽에 있다. 황해도 연백군 연압읍까지 거리는 직선거리로 3km, 크게 소리를 지르면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가까운 거리다. 이곳에서 북녘을 보면 연안읍의 진산인 비봉산과 남산, 남대지 등 드넓은 연백평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 들러 연백평야를 바라보며 평화를 꿈꾸는 것 자체가 남녘과 북녘이 긴장과 갈등을 푸는 상생의 길이고 통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평화나들길(자전거길) - 총 길이 30km. 대룡시장에 있는 교동제비집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곳곳을 돌아보면 또 다른 모습의 교동을 만날 수 있다.
평화나들길(자전거길) - 총 길이 30km. 대룡시장에 있는 교동제비집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곳곳을 돌아보면 또 다른 모습의 교동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