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그레타 거윅 감독│2020년 개봉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법한, 세계명작동화 전집에 꼭 들어가는 고전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이 21세기, 그것도 2019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역시 명작은 시대를 초월해 대중과 만날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영화는 ‘작은 아씨들’을 스크린에 옮긴 여덟 번째 영화였으니까.

감독이 그레타 거윅이고 ‘레이디 버드’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시얼샤 로넌이 ‘조’ 역할이라니 기대감은 한층 더 높아졌다. 더구나 첫째 ‘메그’는 엠마 왓슨, 셋째 ‘베쓰’는 엘리자 스캔런, 막내 ‘에이미’는 플로렌스 퓨, 네 자매의 어머니 ‘마미’는 로라 던이라니! 히어로영화는 아니지만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작정하고 뭉쳐 만든 영화이니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역시! 사랑해마지 않는 여배우들이 스크린 한가득 나오는 걸로도 충분히 좋았다. 어릴 적 읽었던 명작동화와 위노나 라이더가 조로 분했던 1994년 영화 ‘작은 아씨들’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어린 조의 자매들이 스무 살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읽던 어린 내가 이제는 자매들의 엄마뻘이 돼 다시 그 이야기를 만났는데도 마치 내 이야기인 양 흠뻑 빠져들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말 대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이 “유년시절을 벗어나야할 무언가로 그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제각기 개성이 뚜렷한 네 자매의 이야기 ‘작은 아씨들’을 어린 시절의 풋풋한 추억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영화는 조가 잡지사 편집장과 원고료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작에 없는 이 장면은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메그는 연기를 잘하고 조는 글을 잘 쓴다. 베쓰는 피아노를 잘 치고 에이미는 그림을 잘 그린다. 예술적 재능이 남다른 네 자매가 여자는 “창녀와 배우가 아니면” 돈을 벌수도, 독립을 할 수도 없었던 시대에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섬세히 그린다.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풀었던 원작과 달리 성인이 된 자매들의 현재와 어린 시절을 오가며 풀어내는 네 자매의 이야기는,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에 불과했던 시대에 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유달리 주체성이 강한 주인공 조 중심이었던 원작과 달리 네 자매 모두에게, 어머니와 대고모(메릴 스트립)에게도 고르게 무게중심을 나눠준 그레타 거윅의 영화는, 그래서 여자들의 다양한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한다. 배우가 될 줄 알았던 메그가 가난한 가정교사와 결혼하는 것은 그저 가부장적인 결혼제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메그의 또 다른 꿈을 위한 선택으로 그려지고, 원작에서 사사건건 조와 부딪히며 밉상 캐릭터로만 보였던 에이미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돌진하는 야심차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물론 내가 영화를 보며 가장 좋았던 장면은 조가 자신의 자매들 이야기로 소설을 출판하는 마지막 씬이다. 판권을 넘기라는 편집장의 강짜에 당당히 응대하며 인세를 협상하고 끝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품에 안는 조의 모습은 “여주인공은 결혼하거나 죽어야한다”는 편집장의 그 시절 궤변을 한방에 걷어차 버린다.

자전적인 이야기로 ‘작은 아씨들’을 썼지만 끝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소설을 쓰며 살았던 루이자 메이 올컷이 소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조를 결혼시켜야했던 150년 전 씁쓸한 결말을 뒤집어놓는 통쾌함! 영리한 결말이다.

지금까지 소녀의 야망과 성취는 소년만큼 중요하지 않아서 소설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에이미의 말대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게 된 것”임을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명쾌하게 증명한다. 소녀들의 다양한 재능과 야망, 그것을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이토록 뭉클하게 그려내다니!

아, 영화 속 네 자매에게도 이 영화에도 든든한 대고모님이 되어준 메릴 스트립에게도 고맙다. 이런 어른, 선배여성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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