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무지개책방 28. 식물의 감각
심혜진의 무지개책방 28. 식물의 감각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20.02.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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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베란다에 걸어둔 통마늘에서 푸른 싹이 올라왔다. 어떤 마늘에선 벌써 엄지손가락 길이의 줄기가 쑥 뻗어 나왔다. 작년 여름부터 겨울이 지나는 동안 내내 잘 버티고 있던 마늘이 이제 곧 봄인 걸 어찌 알고 싹을 틔웠을까.

싹이 더 자라 마늘의 영양분이 빠져나가기 전에 마늘을 다듬어 냉동실에 넣어두기로 했다. 통마늘이 담긴 망을 주방으로 가져와 하나하나 살폈다. 망 속 통마늘은 이리저리 뒤섞여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난 푸른 싹은 모두 한 방향, 즉 빛이 들어오는 창문 쪽을 향해 있었다.

마늘들은 날이 따뜻해지고 있다는 것과 빛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오는지, 그리고 뿌리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 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집 베란다에 서면 작은 공원이 내려다보인다. 그곳엔 나무가 몇 그루 있다. 이사 온 뒤 처음 맞이한 봄날, 그중 벚나무가 꽃을 환하게 피웠다.

그런데 나무의 왼쪽 가지 부분에서만 꽃이 피었고, 오른쪽으로 자란 가지에는 푸른 잎사귀가 돋아났다. 나무가 반으로 나뉘어 절반은 꽃이 피고 절반은 잎이 자라다니, 무척 신기했다. 며칠 후 벚꽃이 지고 나무의 둥치가 보이고서야 알았다. 나무가 한 그루가 아닌 두 그루였다는 걸. 벚나무와 느티나무를 1미터 간격으로 가까이 심은 탓에 나뭇가지가 각각 한쪽 방향으로만 자란 거였다.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만 가지를 뻗다니.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상대방의 존재와 위치를 알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식물에서 이렇게 신비로운 현상을 종종 발견한다. 식물은 난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고, 움직임도 눈에 띄지 않는다. 줄기에서 새잎이 나오는 모습이나 꽃이 피는 순간을 목격하긴 어렵다. 그래서인지 식물은 고정적이고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견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 깊게 식물을 바라보면 그들도 주위 환경을 예민하게 느끼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늘이 겨우내 닫힌 베란다 창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을 향해 싹을 틔우고 공중에서도 땅이 있는 방향으로 정확히 뿌리를 뻗는 것을 보면 그렇다. 심지어 공존을 위해 서로 다른 종의 식물과 소통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우리 집 앞 벚나무와 느티나무처럼 말이다. 다만 식물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잘 모를 뿐이다.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뇌는 커녕 눈, 코, 잎, 피부도 없는 식물들이 대체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 것과 자신의 위치와 옆 나무의 존재를 아는 걸까.

최근 서점에서 이와 관련한 책들을 찾아 읽고는 내가 그동안 식물에 대해 너무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인간을 기준으로 식물의 감각을 가늠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위의 두 사례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식물도 감각이 있고 ‘계획’이란 게 있었다. 나무가 입이 없어도 잘 먹고 사람 키보다 훨씬 크고 단단하게 자라는 것처럼, 눈이 없어도 볼 수 있고 코가 없어도 냄새를 맡는다. 이건 ‘물에도 감정이 있다’는 식의 거짓말도, 식물의 식생을 위대하게 표현하기 위한 비유도 아니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논증한 과학적 사실들이다.

봄을 맞아 한껏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식물들이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아는 만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니까. 내게 새로운 시각을 틔워준 식물의 감각에 대한 책 세 권을 소개한다.

# 매혹하는 식물의 뇌
스테파노 만쿠소, 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 | 양병찬 옮김 | (주)행성비 펴냄

책을 읽기 전 목차 일곱 개가 흥미를 끌었다. ‘식물은 빛을 본다, 식물은 냄새를 맡는다, 식물은 맛을 본다, 식물은 촉감을 느낀다…’ 식물이 소리도 듣고 자기 위치를 알며 심지어 과거를 기억한다고 적혀 있다. 미심쩍은 생각에 저자 소개를 읽어보았다. 대니얼 샤모비츠는 이스라엘의 한 식물생명과학연구소 소장이며, 대학 생명과학부 학과장이다. 이 정도면 믿을만할까? 어쨌든 ‘은밀하고 위대한 식물의 감각법’을 펼쳐 들었다. 서문의 내용부터 무척 새로웠다. 저자는 “식물이 빛을 이용해 스스로 생장을 조절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연구하다가 “주변 밝기를 인지하는 특정 유전자 집단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유전자 집단은 인간 DNA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여러 해에 걸쳐 연구한 결과, 이 유전자 집단이 동물과 식물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와 보존된 것임을 확인했다. (…) 이로 인해 식물과 동물의 유전적 차이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식물의 기능 방식을 인간의 행동에 대응시킬 수는 없지만 (…) 독자들은 시각과 후각, 식물,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8-10쪽)

저자가 말하는 “식물이 빛을 본다”는 표현의 근거는 이런 것이다.

“과학자들은 밤에 불을 켰을 때 식물이 어떤 색의 빛을 보는지도 궁금해 했다. 놀랍게도 식물들은 하나같이 빨간빛에만 반응했다. 파란빛이나 초록빛은 꽃이 피는 시기에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빨간빛은 단 몇 초만 쬐여도 반응을 보였다. 식물은 파란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몸을 구부리고, 빨간빛을 보고 밤의 길이를 재는 등, 빛의 색깔을 구분하고 있었다.” (29쪽)

이 책에는 식물이 마지막에 본 빛을 기억한다며 붓꽃의 예가 나온다. 과학자들은 빨간빛을 비추면 한밤중에도 붓꽃이 핀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짓궂은 실험을 한다. 한밤중에 빨간빛을 비춘 뒤 곧바로 근적외선을 쐬게 한 것이다. 근적외선은 해가 질 무렵에 잠시 희미하게 보이는 빛으로 꽃이 피지 않게 한다. 이때 붓꽃은 꽃을 피울까, 피우지 않을까. 결과는 꽃이 피지 않았다.

“해가 저물 무렵 모든 식물이 자연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보는 빛이 바로 근적외선이다. 근적외선이 식물에게 ‘스위치를 내려라’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아침이 오면 식물은 빨간빛을 보고 깨어난다. 이런 식으로 식물은 빨간빛을 마지막으로 본 지 몇 시간이나 되었는지를 계산하고, 그에 따라 생장을 조절한다.” (31쪽)

이러한 광주기성을 담당하는 건 식물의 이파리 속 피토크롬이라는 단백질이다. 피토크롬이 빛신호를 받아들여 식물 구석구석으로 꽃을 피우라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 밝혀졌다.

덜 익은 과일이 잘 익은 과일에서 방출되는 에틸렌 기체에 의해 먹기 좋게 변하는 것, 나무의 손상된 잎들이 자신의 건강한 다른 잎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출하는 냄새를 주변 식물들이 몰래 맡아 앞으로 닥칠 위험에 대비하는 것 등, 후각의 증거도 충분하다. 물이 부족한 흙에 닿은 뿌리가 화학신호를 분비해 같은 나무의 다른 뿌리에 가뭄이 들 것을 경고하고, 이것을 다른 나무뿌리가 감지해 힘겨운 환경조건에 일찌감치 대비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뿌리가 사람의 혀처럼 화학물질을 맛본다는 증거이자 식물들끼리 소통한다는 근거가 된다.

이 책의 장점은 식물의 감각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다양한 실험 과정을 쉽고도 자세하게 정리해 내용을 따라가기 수월했다. 특히 다윈 부자가 식물의 어느 부위가 중력을 감지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변인을 조절해 “뿌리 끝이 중력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장면은 논증 과정이 얼마나 치밀한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과학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다.

# 은밀하고 위대한 식물의 감각법
대니얼 샤모비츠 지음 | 권예리 옮김 | 도서출판 다른 펴냄

‘은밀하고 위대한 식물의 감각법’이 과학적 근거를 조곤조곤 들어 식물의 감각을 차분하게 설명했다면, ‘싸우는 식물’은 식물을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느끼게 만드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와 식생이 비슷한 일본에서 쓴 책이어서인지 나팔꽃, 메꽃, 질경이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이 나와 더욱 흥미를 끈다.

저자는 “평화롭게 보이는 식물의 세계는 사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라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햇빛과 수분, 토양 등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다. 식물들 저마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특히 잡초 이야기가 재미있다.

흔히 잡초를 질기고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잡초가 식물학적으로 ‘약한 식물’이라고 말한다. 이때 약하다는 것은 다른 식물과 경쟁에서 약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뽑아도 뽑아도 다시 살아나는 잡초의 질긴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잡초는 강한 식물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곳에 나서 자란다. (…) 일반적으로 식물의 씨앗은 땅속에 있으므로 햇빛이 있으면 싹을 틔우지 못한다. 반대로 잡초 씨는 햇볕을 쬐면 싹이 트는 성질이 있는 것이 많다. 이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잡초 씨는 땅속에서 발아할 기회를 기다린다. 잡초를 뽑으면 땅이 뒤집혀 종자가 햇빛을 받게 된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인간이 잡초를 뽑아 주위 식물이 없어졌음을 나타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잡초 씨는 이때를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앞 다퉈 싹을 틔운다. 즉 잡초를 뽑는 인간의 행동이 잡초의 발아를 유도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잡초를 뽑으면 잡초가 오히려 늘어나는 일까지 생기는 것이다.” (61쪽)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잎채소를 자주 먹어야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잎에는 병원균 침입을 막기 위해 두꺼운 왁스층 아래 비밀무기를 마련해두는데, 이것이 우리 몸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물질과 항균물질이다. 유럽 가정집의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많은 것도 벌레들이 제라늄 향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라 한다. 집 안에 벌레가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밖에도 적을 속이고 이용하고 배신하고 끝내 동맹을 통해 공생하는 등, 식물들의 다양한 생존전략을 쉽고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 싸우는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 김선숙 옮김 | 도서출판 더숲 펴냄

인간의 신체를 기준으로 바라보면 식물은 무척 단순해 보인다. 뇌도 없고 복잡한 내장기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는 고대에서부터 인간이 식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왔는지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그동안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식물의 ‘능력’을 하나하나 밝혀낸다.

“‘지능’을 ‘위험을 계산하고 이익을 평가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경우, 그늘탈출(식물들이 경쟁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라려고 몸부림치는 현상)은 식물의 지능이 행위로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식물이 지능을 가졌을 리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지난 수 세기 동안 진실을 외면해왔다.”(84쪽)

이 책은 식물의 능력을 방대한 지식과 과학적인 사실들로 촘촘하게 증명한다. 지적인 유희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이다. 한편, 식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감성도 담겨 있다.

“일 년 중에는 식물의 지상부도 어둠을 좋아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가을이다. 가을에는 많은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데, 이런 나무들을 낙엽수라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광수용체가 잎에 집중되어있다면 낙엽이 진 식물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건 간단하다. 동물이 눈을 감을 때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즉 식물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87쪽)

식물들이 서서히 눈을 뜨고 감각을 활짝 여는 시기가 왔다. 이 책 세 권 덕분에 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주위에 신호를 보내며 소통하는 식물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집 앞 벚나무와 느티나무 사이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싶다.

※ 심혜진은 3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