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론]역사라는 거울에 비친 철학 이야기
[도서평론]역사라는 거울에 비친 철학 이야기
  • 이권우 도서평론가
  • 승인 2020.02.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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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춘추의 설계자, 관중|공원국|위즈덤하우스

[인천투데이] 책을 읽다보면,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지금 보고 있는 대목과 분명히 다른 내용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뒤적여보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옛날에는 그 구절을 다시 찾아내기가 영 쉽지 않았는데, 요즘은 검색하면 금세 알 수 있어 편리하다. 얼마 전 ‘맹자’를 완독하면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

맹자 공손추 장을 보면 증자의 아들인 증서의 말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그대와 관중 가운데 누가 더 현명한가요? 하고 묻자 증서는 불끈 화를 내며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관중 따위와 비교하시는가? 관중이 임금 마음 얻기를 그토록 오롯이 하였고, 국정을 전단하기를 저토록 오래 하였으나 공적이 저리도 낮은데,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그따위와 비교하시는가?” 맹자가 이 말을 인용한 것은 관중이 제환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패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을 뿐 평화로운 세상을 여는 데 실패했다고 힐난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어렴풋이 떠오른 ‘논어’의 한 구절이 있었다. 공자는 “관중이 환공이 제후들을 제패하여 온 천하를 바로잡도록 보필해주어 백성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은택을 입고 있다. 관중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머리를 풀어서 늘어뜨리고 옷자락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의 통치하에 살고 있을 거야!”라며 그의 공을 높이 추켜세웠다. 물론 공자도 관중이 부와 권력을 마음껏 누린 데는 비판하였지만, 그를 어진이라 평하며 공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맹자와 공자의 평가가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일단 공자 관점에서 보면 오랑캐의 나라라 여긴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략했을 적에 송나라와 함께 이를 물리친 사실에 방점을 찍고 있는 듯싶다. 관중은 하민족을 규합해 초나라나 이적과 맞서는 국제질서를 창안했다.

맹자와 공자가 관중을 평가하는 데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든 책이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 제1권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이다. 동양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중국 역사를 알고 싶게 되는데, 읽어야할 책은 많은 데다 한 사건을 놓고도 여러 책이 달리 기술한지라, 전문가가 모아서 정리하고 평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하게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독자의 소망을 충족시켜주는데, 더 나아가 최근의 유물과 유적발굴 결과를 반영하고 있어 더 값지다.

관중 이야기는 기본으로 ‘관포지교’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조력자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기억해야할 점은 관중이 제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안휘성 영상에서 태어났는데, 채나라와 오나라가 지배한 지역이다. 관중, 포숙, 소홀은 말하자면 남방 출신 3인방이었다. 가난했던 관중은 상업 활동을 했다. 젊은 날 관중은 늘 실패한다. 하지만 이 실패가 관중을 “사람들의 어려움을 아는 정치인”으로 성장시켰다. 훗날 그가 선보인 경제학은 단순하지만 심오했다. 한정된 생산물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보통사람의 욕구를 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관중은 보통사람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생산물을 늘리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관중의 인재관은 상당히 혁신적이었다. 농부의 고된 노동을 상찬하고, 이들 가운데 능력 있는 이를 뽑아 군인이나 선비로 삼으려했다.

관중이 맹자에게 맹렬하게 비판받게 된 것은 군사제도를 개편하면서 국인뿐만 아니라 야인들로 부대를 편성해서다. 본디 농민은 징집 대상이 아니었다. 전국시대 들어 징병 대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데, 관중의 정책에서 비롯했다. 패도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관중은 전쟁이 일상이 되는 전국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관중은 경제문제가 치국의 근본이며 규구의 회맹에서 보듯 국제조약을 만들어 제나라 중심의 국제질서를 공고히 했다. 왕도정치를 설파한 맹자 입장에서 보자면 패권질서의 유지라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다.

관중이 대단하다는 점은 유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을 뒤이을 사람으로 포숙 이야기가 나오자 단박에 부정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군자라 “천승의 나라라도 도로써 주는 것이 아니면 받지 않을” 터니, 정치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관중을 알면 공자와 맹자가 보인다. 역사의 거울에 비춘 철학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