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두 나가고 오전 10시부터는 ‘혼자’
광주 고려인마을은 노인복지센터 운영 중

[인천투데이 이보렴 기자] “남은 시간에 할 일이 없어요. 일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인천 연수구 연수1동 문학산 아래 함박마을은 일명 ‘고려인마을’이다. 고려인들은 대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데, 그래서 마을 곳곳에 있는 현수막과 안내판에도 러시아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가게 간판도 러시아어와 한국어가 혼재돼있다.

함박마을엔 고려인 6000여 명이 산다. 대부분 가족 3대가 모여 산다.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광주나 안산과 비교하면 마을 면적에 비해 밀집도가 매우 높다.

3대가 모여살기에 연령층도 다양하다. 보통 30~40대는 낮에 경제활동을 하는지라, 낮에 마을에는 주로 아이들과 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인천시가 고려인통합지원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만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이들은 눈치 보지 않고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지난 7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여파로 일주일 동안 휴관한 고려인문화원을 찾았다. 함박마을에서 지내는 아이들과 종일 마을에만 있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고려인문화원에 표정이 경직된 아이들 뒤로 두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김쟌나와 주조야라고 소개했다.

가족들 출근하거나 학교 가면 ‘혼자’
오전 10시부터 계속 여가시간일 뿐

김쟌나와 주조야 씨의 하루는 비슷했다. 이들은 오전 7시 반 쯤 일어나 자식 부부의 출근과 손자손녀의 등교를 돕는다. 9~10시에는 함께 운동한다. 운동 장소는 주로 장미공원이다.

장미공원은 함박마을 맨 뒤편 서쪽 문학산 자락에 있다. 공원에는 산책로와 생활체육시설이 있다. 이들은 종종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등, 이곳을 여가공간으로도 사용한다.

“겨울은 추워서 공원에만 있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10시부터 바로 문화원에 가 있기도 해요.”

고려인문화원을 제외하고는 이들이 함께 있을 만한 공간은 없다. 고려인문화원도 좁아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다른 공간을 빌려 여가활동을 한다. 점심과 저녁은 각자 집에서 해결한다. 마을에 카페가 있긴 하지만 돈을 내고 커피나 차를 마시기는 것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다.

김쟌나와 주조야 씨는 “하루에 두세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청소나 부업 같은 일을 하고 싶은데, 일감이 없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김쟌나와 주조야 씨가 주로 장미공원에서 운동한다. 사진은 장미공원 산책로.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 전용 노인복지센터 운영 중

광주 고려인마을에는 고려인마을협동조합과 더불어 주민지원센터,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등이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노인복지센터도 생겼다.

노인복지센터를 이용하는 노인은 30여 명이다. 이천영 고려인 마을 대표는 “낮에 집에만 있기 심심한 노인들이 모여 있을 만한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라며 “와서 함께 점심도 먹고 아이들도 서로 돌보고 놀기도 하는 공간이다”라고 설명했다.

광주 고려인마을 노인복지센터는 한국문화 적응 프로그램, 치매 예방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문화 전용 프로그램은 주로 한국어 교육, 한지공예 수업 등이 다.

광주 고려인마을 노인복지센터는 고려인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의 고려인문화원도 민간이 운영하고 있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광주 고려인마을 노인복지센터.(사진제공 광주 고려인마을)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문화 배울 기회도

고려인은 일반 경로당을 이용하기 어렵다. 일단 언어가 통하지 않고, 여가시간을 보내는 문화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쟌나와 주조야 씨는 마음 놓고 춤출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원한다고 했다. “노래도 부르고 싶어요. 노래 선생님이 계셨으면 좋겠어요.”

이들은 아이들과는 달리 한국어가 많이 서툴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를 배우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원했다.

“문화원에서 한복을 갖다놓으면 빌려다 입기도 하고 입고 춤을 추기도 해요.”

함박마을은 대낮에도 사람이 많다. 대개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며 지나다닌다. 이들은 집이 아니면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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