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205. 진화생물학
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205. 진화생물학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20.02.0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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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최근 유명 남성 연예인의 핸드폰이 해킹돼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공개됐다. 나는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기사 링크로 이 사건을 접했다. 누군가와 주고받은 그 문자메시지에는 여성을 흥밋거리나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사적인 대화라 해도, 대중들 특히 여성의 인기와 신뢰에 기대어 활동해온 남성 연예인을 통해 여혐과 강간문화를 새삼 마주하게 되니 아주 불쾌했다. 지인의 페이스북에도 난리가 났다. 대부분 ‘화나요’를 눌렀고 ‘역겹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그 사이에서 눈에 띈 문장 하나. “남자들 본성이 원래 그래요.”

‘남자들 본성’이란 뭘까. 몸매 좋고 나이 어린 여성과 성관계를 하고 싶어 한다는 뜻일까. 굳이 ‘남자들’이라고 한 건,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일 거다. 하긴, 나도 이와 비슷한 이야길 들은 적 있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후대에 남기고 싶어 한다고.

여성은 본인이 낳은 아기가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아 ‘본능적으로’ 의심과 질투심이 많다고. 남성은 여성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동시에 가급적 많은 여성에게 자신의 ‘씨’를 뿌리길 원하며, 여성은 남성의 좋은 유전자와 출산 후 안정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까다롭게 남성을 선택한다고.

따라서 여성은 남성보다 성적으로 소극적이며 남성은 일부다처를, 여성은 일부일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공중파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이다. 이에 의하면, 남성 연예인의 행동은 본능에 의한 것이니 죄랄 순 없고 단지 현재 문화 규범에 맞지 않을 뿐이다. 정말 그럴까.

남성이 여성보다 성관계에 적극적이라는 통설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을 억압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이런 주장에 과학적 근거를 댄 이들이 등장했다. 바로 진화생물학자들이다. 이들의 주장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건 1972년 미국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가 쓴 ‘부모투자와 성 선택’이라는 논문 때문이다.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 “암컷은 난자 한 쌍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수컷은 많은 정자를, 그것도 하루 만에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나쁜 선택’을 했을 때 암컷이 수컷보다 치러야할 대가가 훨씬 크기 때문에 짝짓기 상대를 선택할 때 더 까다롭고 덜 문란할 수밖에 없다.”(‘열등한 성’ 앤절라 사이니 지음, 현암사 펴냄) 여기서 말하는 암컷과 수컷이란, 실험에 쓰인 초파리의 성별이다.

논문의 저자는 그 이후 아주 유명해졌고, 그의 주장은 여성과 남성이 관계 맺는 습관을 설명하는 도구가 됐다. 2000년대 한 진화심리학자는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여성이 노래를 잘하거나 말재주가 뛰어난, 창조적이고 지능적인 남성을 더 선호하도록 발달했다. (…) 남성이 더 많은 책을 집필하고, 더 많은 강연을 하고, 강의가 끝나고 더 많은 질문을 하는 이유이다”라 주장하는 논문까지 펴냈다.

진화론적으로, 또 유전적으로 남성은 정말 바람둥이가 맞을까. 진실에는 언제나 반전이 숨겨져 있다. 1990년대 같은 실험을 재현한 결과, 수컷 초파리가 암컷에게 접근하는 만큼 암컷도 수컷에게 접근한다는 사실을 새로 발견했다. 이전 실험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고정된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사실 초파리 따위가 아니라 암컷이 다수의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종(귀뚜라미, 작은입 도롱뇽, 프레리도그 등)은 셀 수 없이 많고, 지구 어딘가에는 여성의 ‘바람’을 남편이 허용해야만 하는 부족이 살고 있다. 이 부족을 연구한 학자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행동은 생물학적 특성보다 사회적 환경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아내의 ‘바람’에도 남편들이 잠자코 있는 것은 질투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질투심에 눈이 멀어 아내를 구타하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 규범이 확립돼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용인하는 건 무엇이고 용인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준은 양성 모두에게 동등한지, 따져보면 좋겠다. 적어도 진화생물학 영역에선 과학도 믿을 게 못 되는 것 같다. 의지할 데라곤 이를 투명하게 바라볼 줄 아는 올곧은 시선과 양심뿐이다.

※ 심혜진은 3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