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전쟁
맥주와 전쟁
  • 인천투데이
  • 승인 2020.01.2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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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

[인천투데이] 브뤼셀의 고드프리와 오줌싸개 꼬마 동상이 벨기에 람빅 맥주의 영웅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맥주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물자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중세 유럽 도시에서는 깨끗한 물이 귀했다. 지금과 같은 위생 개념이나 기술이 없던 시절에 수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있을 리 없었고 식수는 마을 공동 우물에 의존했다. 공동으로 마시는 우물물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수질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따라서 물을 위생적으로 관리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수질 관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위생시설 없이 사람과 가축이 몰려 사는 환경에서 수질 관리는 어려운 일이었고 오염된 물을 마시고 위장병을 앓는 것은 일상적이었다.

지하 천연 암반수를 끌어올려 맥주를 빚었다는 광고에 힘입어 하이트 맥주가 한국 맥주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맥주 맛을 결정짓는 데 수질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맥주 맛에 수질이 중요하다는 것은 양조업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맥주를 빚는 양조업자들은 깨끗한 물을 사용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더구나 홉과 알코올이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하기 때문에 중세에는 맥주가 물보다 훨씬 더 안전한 음료였다.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그냥 물을 마시는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장에 나서는 군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들에게 전투지역에 맥주 양조장이나 저장고가 있는지를 미리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부대가 진군하다 멈추면 병사들은 말에게 물을 먹이고 술집이나 양조장을 찾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찾지 못할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물을 마셨다. 중세 유럽 전쟁에서 맥주는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보급품이었다.

중세 유럽이 신교와 구교로 갈라져 치열하게 싸웠던 ‘30년 전쟁’ 초기, 독일 작센의 요한 게오르크 1세는 구교 편이었다. 작센은 초기에는 전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지만, 스웨덴이 신교 동맹군에 합세해 전쟁에 뛰어들자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됐다. 1631년 가톨릭 군대는 신교 군대에 밀려 퇴각하면서 가는 곳마다 식량을 징발했다. 작센의 크로스티츠에서 가톨릭 군대가 퇴각하자 스웨덴 신교 군대가 진군해왔다.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시진출처 pixabay)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시진출처 pixabay)

약탈을 일삼았던 가톨릭 군대에 비해 스웨덴 신교 군대는 약탈하지 않았고 필요한 것을 구할 때는 돈을 치렀기에 주민들의 호감을 샀다. 1631년 9월 17일, 크로스티츠의 한 농부가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꾼들을 자신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농부의 앞에 말을 탄 기사가 나타났다. 기사는 농부에게 혹시 만들어놓은 맥주가 있는지 공손하게 물었다. 아껴놓은 맥주가 조금 남아있다고 답하자, 기사는 스웨덴 국왕이 이곳을 곧 지나게 될 터인데 마실 것이 없어서 목이 마른 상태이니 왕에게 맥주를 주라고 부탁했다. 곧 스웨덴 왕이 농부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됐고 농부는 기사의 부탁대로 왕에게 맥주를 권했다. 목이 말랐던 왕은 농부가 건넨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고, 맥주 맛이 진하고 좋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커다란 루비가 박힌 금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 빈 잔에 넣고 농부에게 돌려줬다. 갈증을 달랜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는 이어진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승전을 이끌어낸 맥주를 빚는 데 사용된 우물은 ‘스웨덴 우물’이라고 불리게 됐고, 크로스티츠 주민들은 지금도 당시 신교 군대가 승리한 것은 1631년 9월 17일 구스타프 아돌프가 훌륭한 맥주로 갈증을 해소했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전설에 불과한 일이고 그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크로스티츠 맥주는 훌륭한 맥주로 명성을 얻었고 왕의 반지를 복제한 반지는 지금까지도 양조장의 보물로 꼽히고 있다. 크로스티츠 양조장은 지금도 스웨덴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으며 공장 안에 구스타브 아돌프 박물관도 있다.

비록 전설일 뿐이지만 크로스티츠 맥주에 얽힌 이야기는 중세 유럽 전쟁에서 맥주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는 전투에서 사망하는 병사보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장 감염에 의해 사망하는 병사가 더 많았을 정도였으니 맥주 보급은 전투 승패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물 대신 위생적인 수분을 보충해주는 존재였고, 더불어 맥주가 가진 풍부한 영양소는 영양을 보충해줬으니, 중세 유럽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 전영우는 오랜 동안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