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노아 바움백 감독│2019년 개봉

결혼이야기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꽤 잘 맞는 부부다. 니콜에게 찰리는 빼어난 연출가이자 정리 잘하고 일 잘하는 완벽한 남편에, 밤잠을 깨우며 놀아달라는 아들과도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다. 찰리에게 니콜은 훌륭한 배우이자 사소한 말이라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성품을 가진 아내에, 아들에게 헌신적인 엄마다. 훌륭한 연출가와 배우, 충실한 아내와 남편이자 부모. 일과 가정 모든 면에서 완벽한 파트너였던 니콜과 찰리에게 새로운 국면이 찾아왔다. 바로 이혼.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잘 알고 있고 아주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던지라 이들은 평화롭게 이혼 과정을 밟고자한다. 둘 다 연극하느라 모아놓은 재산도 없어서 위자료 가지고 다툴 여지도 거의 없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LA)에서 새로운 배우 인생을 시작하려는 니콜과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해온 찰리는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의 양육권을 놓고 커다란 의견 차이가 생기고, 결국 각자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돌입한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제목과 달리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결합이 깨어지는 과정인 ‘이혼’에 관한 이야기다. 이혼 조정관의 요청에 따라 각자 적어온 상대방의 장점을 낭독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지만, 니콜과 찰리의 좋았던 시절은 그 낭독이 전부다. 그 후로 2시간 동안은 두 사람이 양육권을 얻기 위해 벌이는 ‘개싸움’으로 채워진다.

이혼법정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손바닥 뒤집듯 증오로 둔갑한다. 서로 끌렸던 매력은 상대방을 비하하기 위한 서사가 되고 서로 전했던 존경 어린 찬사들은 상대편이 더 적합한 양육자라는, 자신에게는 불리한 증거가 된다. 가장 가까운 사이였기에 허물없이 보여줬던 허술함은 자신이 양육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공격의 무기가 된다. 영화 초반에 종이 한가득 빼곡하게 적었던 상대의 장점, 즉 상대를 사랑했던 이유들이 모두 증오의 이유가 돼버리는 아이러니.

이혼을 결심할 때만 해도 사랑과 존중이 남아 있던 니콜과 찰리는 이혼 과정을 거치며 변호사 없이 원만하게 잘 끝내보자던 처음의 약속은 까맣게 잊은 채, 어느새 서로 대놓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저주를 퍼붓는 막장까지 치닫는다.

관객이 볼 때 니콜과 찰리는 꽤나 매력 있고 적절히 훌륭하며 적절히 부족한 보통 사람이다. 지금의 파국이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책임이 있다면 그들이 함께 살면서 상대방에게 가졌던 크고 작은 실망과 원망들을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덮어두고 묻어뒀던 두 사람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이혼이라는 사건은 니콜과 찰리의 밑바닥을 스스로도 당황스러우리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혼이라는 난장판은 역설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 사람의 완벽한 결합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제도 아래 많은 것들을 묵인하고 덮어둠으로써 신뢰가 무너지고 상처가 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영화 제목이 이혼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라는 것이 설득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니콜과 찰리가 우여곡절 끝에 이혼에 합의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곧 파국을 의미하는건 아니라는 점. 꽤 괜찮은 사람들이었던 니콜과 찰리는 ‘개싸움’ 같은 이혼 과정에서 상대의 밑바닥뿐 아니라 자신의 바닥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신의 바닥을 직면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사람을 키운다. 니콜과 찰리는 더 이상 아내와 남편은 아니지만 서로 좋은 사람으로, 아들 헨리에게 좋은 부모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끝이 결혼이 아니듯, 이혼이 삶의 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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