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2년 전 이맘때, 호스피스 병동이란 곳에 처음 가보았다. 후배가 결국 병실을 그리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터였다. 이제 막 마흔이 된 그의 몸에는 암세포가 너무 많이 퍼져 있었다.

항암치료가 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러니까 아직은 완치의 희망이 조금은 남아 있었을 때 나는 막연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싶었다. ‘젊은’ 시기에 큰 질병이나 사고를 겪게 되면 ‘왜 하필 나한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이야길 들었다. 삼십 대 후반 나이에 암이 찾아오리라곤 그 역시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그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한 ‘육체’에 대한 갑작스런 위협, 그로 인한 혼란과 충격, 마음 무너짐, 여전한 희망 등 그 모든 이야기를 꺼내놓다 보면 그가 붙잡고 살아온 ‘삶’의 이유를,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 위기의 의미도 짐작해볼 수 있다면 투병의 시간도 마냥 헛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떻게든 내 방식으로 그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하지 못한 채 망설였다. 자칫 죽음을 앞둔 이의 회고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오해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기록을 위한 거라면 건강이 나아진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나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슬프고 안타깝게도, 그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어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간 뒤에야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나도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그의 남편에게 내 뜻을 전했다. 기록의 이유에는 그의 세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 자신들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 할 것 같았다. 엄마가 구술로 남겨둔 이야기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기록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의 인생 이야기로 범위가 넓어졌다. 이런 내 이야길 전해들은 그는 기뻐했다고 한다.

그의 병실을 찾아간 날, 난 그의 얼굴이 밝아 내심 놀랐다. 침대 한쪽엔 우쿨렐레가 놓여 있었다. 병원에서 다른 환자들과 함께 악기를 배운다고 했다. 그날 그는 구토로 인해 목구멍이 부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 가까운 가족 이외엔 말한 적 없는 어린 시절 아픔도 털어놓았다. 다만 기록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록하러온 내게 기록을 하지 말라니. 지금 생각하면 그는 기록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시간에 걸쳐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야길 쏟아낸 그는 이내 지쳤다. 나는 다음날 오후에 다시 찾아갔다. 얼굴은 밝았지만, 몸 상태는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어제 인터뷰한 것을 정리해 보여주었더니 볼펜으로 하나하나 교정을 봐주었다. 여전히 삶에 애착을 거두지 않은 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는 더 작아진 목소리로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까지 이야길 해주었다. 그가 가장 주도적으로 살아온 시기를 글로 남기려던 그 지점에서 그의 이야긴 멈추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상태가 악화돼 그와 이야길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주일 후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가 세상을 뜨기 이틀 전 늦은 저녁에 그를 찾아갔다. 나를 보더니 그는 몸을 일으켜달라고 했다. “나 말할래. 나 말할 거야.” 하지만 그는 곧 다시 누웠다. 그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이곳이 어디인지도 혼동하는 상태였다. 기억을 떠올려 사건을 논리적으로 구술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했다. 그래도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느낌만은 남아 있는 듯했다. 조금만 더 건강할 때 그를 찾아갔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해도 늦은 일이었다.

나는 그 후배를 통해, 누구나 죽기 전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 또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겠구나, 짐작했다. 스스로 기록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후배처럼 갑작스럽게 병마가 찾아오거나, 회복 불가능함을 너무 늦게 인정해 체력과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 죽음을 전제한 기록물을 작성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결국 남은 이들이 그들의 삶을 기록하거나 기억할 수밖에 없다.

‘나’의 죽음은 생의 가장 마지막에 맞이하게 되는 최후의 이벤트다. 나의 죽음을 미리 경험해볼 수 없기에 다른 이의 죽음으로 내 마지막 이벤트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탄생만큼이나 중요한 나와 우리의 죽음을 위해, 죽음을 미리 공부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최근 부모의 죽음을 다룬 책 세 권을 읽었다. 최현숙의 ‘작별일기’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모가 임종을 맞을 때까지 3년 동안의 간병 기록을 묶은 것이다. 앨리슨 벡델의 ‘펀 홈 : 가족 희비극’은 교통사고인지 자살인지 확실하지 않은 이유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삶을 딸의 입장에서 회고한 그래픽 노블이다. 구정인의 ‘기분이 없는 기분’은 혼자 살던 아버지가 생을 마감한 뒤, 딸에게 찾아온 우울증 경험을 그린 만화다. 세 권 모두 부모의 죽음을 직시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한다. 죽음을 주제로 한 책들임에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묵직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처 다 기록하지 못한 후배의 삶과 12년 전 아무 기록도 없이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진지한 마음으로 읽은 책들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올 일이기에.

# 작별일기 | 최현숙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작별일기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의 ‘작별일기’는 한 사람이 노쇠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이보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일 수 없을 만큼 치밀하게 기록한 책이다. 알츠하이머를 앓으며 몸보다 정신이 먼저 무너져내리는 노모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았다.

죽음의 과정을 함께 겪은 3년 동안 그는 노모에게 오랜 상처를 털어놓으며 “시비걸기를”(204쪽) 하다가 “어긋나는 대화”에 섭섭해 하기도 하고, 치매 걸린 어머니를 아기처럼 어르고 달래다가도 “초고령 노후의 삶”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돈과 서비스, 실버산업과 의료산업의 관계를 짚어내기도 한다. 노모가 속한 ‘부유층 노인’의 삶과 작가 자신이 살게 될 ‘가난한 노인’의 삶이 “그 거리는 너무 까마득해 아예 다른 세상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꼬집으며 “‘효’와 ‘하느님’이 ‘자본’과 만나 빈곤을 죄로 낙인찍고 있는 현장이자,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가족주의 및 종교와 결탁하는 행태”(288쪽)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에게 노모의 죽음 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관찰과 기록이라는 방식으로 엄마의 죽음을 애도했다. 여든여섯 해를 살다 이제 궁극적 휴식에 들어간 그녀를 붙들고 슬퍼하거나 하는 산 자의 오지랖을 떨지 않기 위해 애도에 집중했다. 애도는 내게 먼저 죽은 사람의 생애를 이해하고 남긴 과제를 제대로 풀어내려는 노력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애도의 산물이다.” (370쪽)

그는 “노인 하나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어 가는가는 지극히 사적이면서 또한 정치적인 문제”(370쪽)라고 말한다. 노인 한 사람을 위해 다섯 남매가 돌아가며 수발을 들고, 300만 원이 훌쩍 넘는 실버타운 비용을 내며, 돈으로 산 요양보호사의 노동에 기대 간신히 청결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며, 노년의 삶을 존엄하게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과 ‘노동’은 어느 정도인가, 초고령 노후의 삶과 존엄은 공존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 펀 홈 : 가족 희비극 | 앨리슨 벡델 글ㆍ그림 | 이현 옮김 | 움직씨 펴냄

펀홈

‘펀 홈 : 가족 희비극’은 앨리슨 벡델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아버지 브루스 벡델의 수상한 죽음을 역추적한 그래픽 노블이다. 집안 대대로 장례식장을 운영해온 장의사이자 영문학 교사였던 아버지는 집 근처에서 트럭에 치어 숨을 거둔다. 그런데 벡델은 이 죽음이 자신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다니며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알게 된 벡델은 편지로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자신이 게이임을 딸에게 고백한다. 벡델은 유년시절 아버지의 독특한 취향과 냉담함, 엄마와 불화 등 몇몇 사건을 되짚으며 아버지를 한 층 깊이 이해하게 된다. 동질감을 느끼며 그에게 다가가려던 어느 날, 아버지 사망 소식을 듣는다. 사람들은 사고사라고 하지만 벡델은 이것이 “아버지의 신묘한 솜씨, 완벽한 작전”(33쪽)이라며 자살이라 여긴다.

“한평생 자신의 ‘성적 진실’을 숨기며 살다 보면 체념과 포기가 켜켜이 쌓이는지도 모르겠다. 성적 수치심이란 본질적으로 죽음과 맞닿아 있다.”(234쪽)

아버지가 남긴 일기와 사진, 아버지가 좋아했던 문학작품 등이 방대하게 인용돼있어 벡델과 그의 집안 분위기, 아버지의 성격과 성향 등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독특한 부녀의 삶 자체도 흥미롭다.

# 기분이 없는 기분 | 구정인 지음 | 창비 펴냄

기분이 없는 기분

왕래 없이 지내던 아버지의 고독사. 방치된 시신이 이웃의 신고로 발견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만화책이다. 서울에 사는 삼십대 중반의 혜진은 남편과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혜진은 슬퍼할 생각이 없다. 가출과 외도를 일삼으며 사업과 주식에 몰두하다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였기 때문. 혜진은 아버지의 존재와 기억을 지우고만 싶어 한다.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를 돌보는 일도, 끼니를 챙기고 다른 이를 만나는 일도 어렵다. 오래되다 못해 젓갈 냄새가 나는 유품과 빚만을 남긴 아버지의 고독사 앞에서 방황하던 혜진은 급기야 극단적인 상상을 하기도 한다.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기분이 없는 기분’ 속에 허우적대며 완전히 나락에 빠졌다고 느낀 혜진은 드디어 용기를 내어 남편과 병원, 상담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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