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부영 인천여성회 사무처장

[인천투데이] 인천복지기준선 설정을 위한 연구 최종보고회가 지난달 30일 열렸다. 이날 보고회에 앞서 연구진과 추진위원, 시민평가단은 1년여 동안 학습과 연구, 토론 등을 진행했다. 그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복지기준선이란 공적복지제도로 이룰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수준과 적정수준의 기준선을 말한다. 서울복지기준선이 2012년에 발표된 이후 부산ㆍ세종ㆍ광주ㆍ대구ㆍ경기 등이 복지기준선을 설정했다. 복지기준선 영역은 인간의 특성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인간 생활의 기본 요건에 해당하는 요소들로 구성된다. 인천복지기준선 추진위원회는 소득ㆍ건강ㆍ주거ㆍ교육ㆍ돌봄 분과로 구성됐고, 나는 돌봄 분과 추진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나는 과정 전반에서 계속 공허함을 느꼈다. 인간다운 삶의 기본조건을 이야기할 때, ‘인간’에 여성을 제대로 포함하고 있는가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소득 부문을 보면, 한국 남녀 임금격차는 16년째 OECD 회원국 중 가장 크고,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의 7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소득으로 환산되지 못하는 가사와 돌봄 노동 대부분을 여전히 여성이 부담하고 있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아닌 ‘건강수명’을 고려하면 그 기준치는 달라질 수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종사하는 보건의료계에서 주요 정책 결정권을 갖고 있는 보건복지부 국장급 이상 공무원 27명 중 여성은 4명뿐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도 위원 25명 가운데 여성은 5명뿐이다.(2018년 시민건강연구소 서평 중) 의사결정구조 안에서 이렇게 한 쪽에 치우친 성비는 결국 치우친 보건의료정책을 낳게 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주거 요건은 안전이다. 2017년 강지현 울산대 경찰학과 교수가 발표한 ‘1인 가구 범죄피해 연구’를 보면, 1인 가구 중 33세 이하 여성은 남성보다 주거침입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11.2배나 높다. 보다 안전한 환경을 찾다보니 주거비를 더 많이 지출하게 된다.

대학 진학률에서 여성이 2005년부터 남성을 추월하는 등, 남녀 교육기회 평등은 해소된 것으로 보이나, 문제는 교육 내용이다. 인천복지기준선에서 교육 분야 적정기준으로 제시한 ‘사회적 우애를 실천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을 이루려면, 성차별적 교육내용 등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생애주기별 돌봄의 주체는 시종일관 여성이었다. 출산할 수 있다는 신체적 차이로부터 시작해 모든 돌봄의 책임과 역할이 여성에게만 강요됐다. 이제 노년의 가장 확실한 담보가 ‘비혼인 딸’이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까지 할 정도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돌봄 주체는 너무 치우쳐있다. 인천복지기준선을 설정하기 위한 연구 중 돌봄 제공자에 관한 연구에서 그나마 일부 여성의 삶이 다뤄지는 건가 싶은 건, 결코 기쁘지도 다행스럽지도 않았다.

여성의 삶도 소득ㆍ주거ㆍ건강ㆍ교육ㆍ돌봄 등 모든 것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젠더 불평등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복지기준선을 설정하더라도 그 속에서 여성의 인간다운 삶은 보장되기 어렵다. 모든 기준과 정책에 젠더감수성과 성평등을 적용ㆍ반영할 때, 인구의 절반인 여성시민의 사회적 위험이 해소되는 진정한 복지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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