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기자] 2020년이라니! 내 연식이 오래돼서 그런가, 숫자에서 미래적 느낌이 확 풍긴다. 그런데 내 일상은 ‘미래’를 상상하던 어릴 때와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다. 외출할 때 타고 다니는 버스와 택시도 그대로이고 심지어 우리 집 앞엔 1980년에 지은 아파트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최첨단 미래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미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내 곁에 와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으로 승부를 겨룰 때만 해도 사람들은 설마 하는 마음이 컸다. 고작 3년이 흐른 지금 인공지능은 바둑 분야에서 인간의 실력을 아주 크게 뛰어넘었다. 바둑에서 인공지능은 영원한 승자가 됐다.

최근 국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한돌’과 은퇴대국을 펼친 이세돌은 또 한 번 1대 2로 패했다. 이러다 인공지능이 소설이나 칼럼까지 쓰는 건 아닐까. 글쓰기가 밥줄인 나는 이 걱정부터 했다. 실제로 작년 11월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기업 ‘오픈AI’는 GPT-2라는 문장 생성 전문 인공지능을 공개했다. GPT-2는 웹페이지 800만 개와 단어 15억 개를 공부해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글을 써낸다. 주제나 단어, 단 한 줄의 문장 정도만 입력하면 이를 파악해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작성한다. 속도도 빨라 책 한 쪽 분량의 글을 10초 만에 완성한다. 기사는 물론 소설도 마찬가지다. 헤밍웨이나 조지 오웰처럼 유명한 작가의 독특한 문체를 흉내 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오픈AI’는 몇 개월 전 이 인공지능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바 있다. 높은 수준의 글쓰기 실력으로 가짜뉴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사회 구성원 간 갈등과 혼란을 유발하는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오픈AI’의 판단은 적절해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 풀버전을 공개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GPT-2의 높아진 완성도, 잘못된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관리가 가능해진 점, ‘인공지능이 쓴 가짜뉴스’를 탐지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한 점 등이다.

인공지능이 기사와 소설을 쓰고 칼럼을 쓰는 세상. 어차피 올 거라면 적절한 기준과 규제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한편, 더듬더듬 인공지능을 공부하다보니 어쩐지 두려움이 옅어졌다. 아무래도 인공지능 로봇을 굳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데 사용할 것 같지가 않다. 소설과 에세이는 어차피 지금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 돈이 안 된다. 작가가 받는 원고료는 시급으로 계산하기 초라할 만큼 형편없다. 그 돈을 줄이기 위해 최첨단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본전도 못 건질 가능성이 크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브런치’ 같은 글쓰기 플랫폼엔 수시로 새 글이 올라온다. 모두 인간이 쓴 글이다. 그들은 돈도 안 되고 때론 독자도 몇 없는 글을 쓰기 위해 애쓴다. 왜일까. 가슴 한가운데에서 뽑아낸 진실한 글을 쓰고 난 뒤 얻을 수 있는 어떤 감정 때문이 아닐까. 만족감일 수도 있고 성취감, 후련함, 즐거움이나 깨달음일 수도 있다. 뜻대로 써지지 않아 절망하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은 날마다 작은 성장을 맛본다. 그러니 제아무리 글 잘 쓰는 로봇이 책을 쓴다 해도, 여전히 골방에 틀어박혀 단어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인간은 끝내 사라지지는 않을 거란 믿음이 내겐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순 있어도 글을 쓰고자하는 욕구까지 가져갈 순 없다.

감동은 오직 진실함에서 나온다. 길어 올려야만 할 진실이, 퍼내야만 할 절실함이 로봇에도 있을까. 그러니 다짐한다. 내 것이 아닌 건 쓰지 말자고. 내 안에서 흘러나온 감정과 생각만이 오직 내 것이라고, 그것만이 글이 될 수 있다고. 새해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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