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희 비정규대안센터 소장

▲ 이옥희
비정규대안센터 소장
한 노동자가 있었다. 조합원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케이크 사라고 주머니에 있던 돈 5만원을 탈탈 털어주면서 평소 음치라며 투쟁가조차 부르지 않았던 그는 ‘민들레처럼’이라는 가슴 저린 노래 한곡을 불렀다.

머지않아 그가 죽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5월 3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 있는 숲속에서 나무에 목을 맨 그는 화물택배노동자 박종태씨다. 그는 화물연대 광주지회장이었다.

2009년 1월, 운송단가를 놓고 대한통운 광주지사와 화물택배노동자들은 운송 건당 30원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3월초 광주지사는 본사 지침이라며 노동자들과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깼고, 계약에도 없는 분류작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78명에게 달랑 문자메시지 하나로 해고를 통보했다.

30원으로, 그렇게 시작한 대한통운과 화물택배노동자들의 싸움. 아무도 택배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대화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노동자들, 얻어터지고 끌려가는 그들을 보아야했던 박종태 지회장. 대한통운이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야산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특별하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싸워 반드시 이깁시다’라는 글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30원’ 때문에 목숨을 던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누가 믿을 수 있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박종태 지회장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는 우리나라에 100만명이 넘는다. 택배기사·간병인·대리운전기사·퀵서비스 배달원·덤프트럭 기사·영업용화물차 운전자·학습지 교사 등이 특수하게 고용된 노동자들이란다. 계약 형식상 자영업자이지만 누가 봐도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을 이 나라는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는 물론 사회보험 적용도 안 된다. 이런 특수고용직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자며 사회적으로 논의한지 10년이나 흘렀다.

현 정부는 일부 업종에 산업재해보험을 적용하는 것과 표준계약서 마련 등 불공정거래를 시정하는 등의 부분 조치를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특수고용직노동자의 처우는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다.

최근 노동부는 건설·운수·건설기계 노동조합들에 “덤프트럭·레미콘 기사, 화물 지입차주 등은 노조원 자격이 없으니 제명하라”며 “특수고용직 제명 이행 여부를 보고하라”고 통지했다.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노조의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압력도 뒤따랐다.

이런 정부 조치를 내세워 대한통운의 모(母)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정부가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데, 정부의 정책기조를 어길 수는 없다’며 대화를 일체 하지 않았다. 꽉 막힌 세상은 그렇게 박종태 지부장의 목을 조였다.

눈물이 흐른다. 몰랐다고 하고 싶다. 매번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양심을 찾는 나는, 그렇게 고통스러웠는지 몰랐다고 하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죽어가는 이 현실 앞에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어 또 눈물이 온 몸에 전율처럼 흐른다. 그러나 이런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나 보다.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모르쇠 하는 기업과 사람이 죽었는데도 8년 넘게 논의하고도 모자라 국회의원들은 또 특수고용직관련법을 논의만 한다. 정부는 ‘엄단하겠다’ ‘처벌하겠다’고 부르댄다.

이것이 죽음 앞에 놓인 현실이라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 그리고 촛불을 들겠다.
뿌연 세상 사이로 나보다 먼저 촛불을 켜고 횃불을 짚이는 사람들이 또렷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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