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

[인천투데이] 벨기에 브뤼셀의 명물이자 관광 명소인 오줌싸개 꼬마 동상을 찾아가본 사람이라면 실망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에튀브와 쉔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이 동상은 1619년에 세워졌는데, 동상 높이는 고작 61cm로 뭔가 대단한 구경거리를 기대했다면 제대로 찾기도 힘든 왜소한 동상에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꼬마가 뿜어내는 물줄기가 사실은 벨기에 맥주의 한 종류인 람빅 맥주라는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온다.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꼬마 동상.

지금의 벨기에가 위치한 지역은 중세 유럽에서 복잡한 정치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였지만, 실제로는 많은 백작과 공작이 자신의 영지를 통치하고 있었다. 12세기경에 신성 로마 제국에서 가장 큰 영지는 지금의 벨기에 중부에서 네덜란드 남부까지 걸쳐있던 브라반트 공국이다. 당시 브라반트 공국의 행정 중심 도시는 브뤼셀이었는데, 북부에 위치한 상업 도시들이 세금 등의 문제로 자주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브라반트 공국의 왕위 계승자인 고드프리 3세(Godfrey III)는 1141년에 태어났다. 고드프리 3세가 태어난 이듬해인 1142년에 아버지인 고드프리 2세가 갑작스럽게 죽었고, 갓난쟁이 고드프리 3세가 1142년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북부의 귀족 가문들이 대놓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이 브뤼셀을 향해 진군하자, 고드프리의 어머니 루트가르드 공작부인은 이웃 플랑드르에 지원을 요청했고, 플랑드르에서 브뤼셀로 지원군을 파견했다. 그런데 지원군의 지휘관 가스벡이 공작부인에게 군사들의 요청이라며 어린 고드프리를 전장에 내보낼 것을 청했다. 이제 걸음마를 겨우 시작한 갓난애였지만, 엄연히 왕위를 계승한 사령관 자격이었으므로 군사들에게는 정당한 요청이었다. 사령관이 전장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 거절할 명분이 없었던 공작부인은 어린 아들을 전장에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왕은 유모와 함께 전장에 나갔다.

린데만스 람빅.(출처 beerforum.co.kr)

당시 유럽에서는 맥주를 마시면 젖의 양이 늘어난다고 믿었다. 20세기 초까지도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젖을 먹이는 엄마에게 맥주를 권하는 전통이 남아있었다. 맥주에 포함돼있는 성분 베타글루칸이 젖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 과학적 근거가 있는 전통이기는 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맥주에 포함돼있는 알코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므로 돌이 갓 지난 고드프리가 젖 대신 다른 것을 찾을 때 람빅 정도는 어렵지 않게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고드프리의 유모도 맥주를 마시고 고드프리에게 젖을 물렸다.

고드프리의 군대가 전장에서 반란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마침 젖을 먹고 배가 불렀던 고드프리는 오줌이 마려웠고, 몸을 살짝 뒤로 젖히고 반란군을 향해 오줌을 시원하게 내갈겼다. 사령관의 이런 영웅적 행동에 브라반트 군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사기가 충천한 군사들은 반란군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소문이 나서 브뤼셀의 람빅 맥주는 천하무적이라는 노래가 곳곳에서 불릴 정도였다. 후일에 고드프리의 영웅적 행동을 기리기 위해 오줌을 뿜는 석상을 세웠는데, 이 석상은 1619년에 동상으로 교체됐다. 곧,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이 뿜고 있는 것은 바로 고드프리의 람빅 맥주였던 것이다. 물론 하나의 전설이고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고드프리 3세 재위 기간에 반란군을 제압한 란스빅 전투는 역사적 사실이고, 벨기에 사람들의 맥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공기 중의 야생 효모를 이용해 발효하는 람빅 맥주는 브뤼셀 지역과 브뤼셀의 서남부 센강 계곡에서만 생산되는 맥주다. 현재 람빅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은 불과 십여 곳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미국의 크래프트 양조장 중에서도 야생 효모를 사용해 양조하는 곳이 있지만, 람빅 맥주는 브뤼셀 지역 양조장에서 생산된 맥주만을 지칭한다. 람빅 맥주인 칸티용 괴즈의 라벨에는 오줌싸개 꼬마의 동상이 새겨져 있는데, 마치 오줌싸개 꼬마가 뿜는 것이 람빅 맥주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 전영우는 오랜 동안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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