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찬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

한성찬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

[인천투데이] 얼마 전 A학교를 방문했을 때다. 그 학교에 정년이 1년 반 남은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은 5년 만기가 돼 학교를 옮길 때가 됐지만, 옮긴 학교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고 남은 정년도 얼마 되지 않기에 ‘인천시 교육공무원 인사 관리 기준’에 따라 전보 유예를 요청했다. 그러나 학교장은 교원인사자문위원회도 열지 않은 채 그 선생님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B학교에서 수학과 정원이 감축돼 한 명이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TO감’으로 떠나야했다. 이런 경우에는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 떠난다. 그런데 그 수학과에는 C학교로부터 초빙 요청을 받은 선생님이 계셨고, 그 선생님은 교장에게 본인이 떠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장은 동의서를 써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 교장은 수학과 선생님들 중 그 학교에서 근무를 오래 한 선생님을 TO감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선생님은 평소 교장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교장이 갖는 권한은 막강하다. 교장은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지고 있으며, 학교의 모든 사업과 업무 최종 결재자로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심지어 국가 시책으로 만들어진 육아시간이나 모성보호시간, 자녀돌봄휴가 등도 교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

학교가 민주적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무도 많은 권한을 가진 교장이 자신의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학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교장 임용 제도는 학교를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교장이 되는 방법은 마일리지 포인트 쌓듯이 승진 가산점을 차곡차곡 쌓아 승진하는 것과 장학사 시험을 봐서 전문직이 된 후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장 임용 제도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데, 이 제도에서는 교장이 가져야할 역량보다는 승진하기 위한 자기관리가 더 중요해진다.

교장 중임제 역시 학교를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천ㆍ서울ㆍ경기ㆍ대구ㆍ광주ㆍ강원ㆍ전북교육청의 초ㆍ중등학교의 교장 발령 현황을 보면, 약 30%가 승진, 약 39%가 중임 혜택이다. 중임 통로를 보장하기 위해 승진 통로가 좁혀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승진 적체는 승진 희망자의 승진 맞춤 행동을 끌어낸다. 승진을 위해 근무평정 1등급이 필요한 교무부장ㆍ연구부장 등 중견교사들은 비판적 태도보다는 교장의 의사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수업보다는 연구실적과 가산점을 쌓는 데 집중하거나 점수용 연구대회 참가처럼 본질적 교육활동과는 거리가 먼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통념적으로 사람들은 교장을 학교 관리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장은 학교 관리자가 돼서는 안 된다. 교장은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고 미래역량을 가진 학생을 키워내기 위한 학교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 학교 직책 중 하나를 맡은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교장을 학교가 학교 특성에 맞게 뽑을 수 있어야한다. 어떤 특성과 역량을 가진지도 모른 채 교육청이 교장을 뽑아서 무작위로 학교에 발령하는 제도로는 미래교육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제는 교장 승진 임용 제도를 고민해야한다. 일제강점기 소학교 시절부터 존속돼온 교장 자격제는 이제 유물이 돼야한다. 낡은 유물을 끌어안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