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2019 겨울호, ‘특집’으로 다뤄
한일갈등의 구조와 역사적 맥락 분석해

[인천투데이 이보렴 기자]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발간한 ‘황해문화’ 2019년 겨울호(통권 105호)가 특집으로 한일 갈등의 구조와 역사를 분석했다.

최근 한일관계는 갈등 상황에 놓여있다. 2018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대법원 판결에서부터 한일 간 갈등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표출됐고,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으로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미봉돼 있던 갈등이 경제, 정치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시민들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 ‘노아베’ 운동 등을 전개하며 일본의 압박에 대응했다.

그러나 지난 11월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즉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연기하면서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 이번 황해문화 특집호는 한일 갈등을 분석해 ‘숨은 질서’를 드러내고자 한다.

미봉된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로부터

김창록 경북대학교 교수는 한일갈등의 원인이 된 강제동원 판결의 역사적 의미와 쟁점을 살폈다. 일본 수출규제의 원인이 된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낸 사건이다.

김 교수는 “1965년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던 ‘식민지 지배 책임’은 ‘기본조약’ 제2조가 핵심이다”고 말한다.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과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한다. 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합의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는 ‘이미 무효’란 말을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은 ‘당초부터 무효’라는 의미로 해석했고, 일본 정부는 1910년 조약은 당시는 유효했으나 한국이 독립된 이후부터는 효력을 상실했으므로 ‘1965년 시점에서 무효’라고 해석했다”며 “이 해석 차이가 너무 커서 한국 정부에 의하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법강점’이 되고, 일본 정부의 해석에 따르면 ‘합법지배’가 된다”고 설명한다.

또 김교수는 “이처럼 해석상 차이가 분명한데도 덮어두기로 합의한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고 말한다.

한일 갈등의 관리자는 미국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자 한국사학회 회장은 한일 관계에서 두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한일 갈등은 그동안 침묵한 문제가 불거진 것이며, 두 번째는 이 갈등을 관리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선생은 “해방 이후 1965년 서로 해석상 차이를 합의하지 않고 덮어둔 건 전후 냉전질서를 주도하기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으로 진행된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하부체제로 강제된 것이다”고 지적한다.

또 “65년 체제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불완전한 합의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며 “미국이 국가 이익만을 염두에 둔 채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수행하려 든다면 당장 오늘은 아닐지라도 ‘게임메이커’가 변경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우익, 한국 친일파의 등장

조경희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일본 우익의 등장과정을 조명한다. 탈냉전기 일본을 둘러싼 내외부에서는 피해자들의 기억투쟁과 소수자들의 인정 투쟁이 활성화됐다.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1997년 탈냉전기 우파운동의 첫 번째 전환점인 역사수정주의가 분출됐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조 교수는 “일본의 우파는 대동아전쟁긍정론과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야스쿠니 신사로 대표되는 ‘신도’와 결합한 일본 우파 세력인 ‘일본회의’는 과거 제국주의 일본 국가종교였던 ‘신도’를 구심점 삼아 종교의 정치화, 정치의 종교화를 추진한다”고 분석한다.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친일파를 자칭하는 세력의 등장에 대해 분석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7월에 출간된 ‘반일종족주의’는 잘못된 역사인식과 학문적 고증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강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기술로 가능해진 파급력과 한일 우파간 역사수정주의 네트워킹 현상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그들만의 작은 리그로 시작됐으나 광화문 일대를 장악한 수구보수세력은 물론 젊은 뉴라이트들과 결합하면서 ‘반문’ 정서를 연결고리로 맹목적인 혐오와 증오를 발산하고 있다”며 “이는 전세계 백래시 현상의 일환이다”라고 지적한다.

한국이 나아갈 길

한승동 선생은 “지금 복잡하게 꼬인 한일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경로를 되감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상황이 발생한 깊은 속내에서 미국과 서구 열강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적 편견을 찾아낸다.

한 선생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 국가들은 한국의 참여를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이 참여하게 되면 구미의 식민지 통치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이 속출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따라서 미국 냉전전략 때문에 무시되고 은폐된 일본의 전쟁범죄와 불법적인 아시아 침략 역사를 사실대로 드러내고 재정립하는 일이 필수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어디로’ 가야 할까

황해문화 105에 실린 좌담과 다수 비평도 눈길을 끈다.

웡익모 홍콩민간인권전선 부소집인과 백원담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홍콩 시위 현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지금 홍콩 상황으로 중국의 일국양제와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비판하면서도, 트럼프 시대를 맞이한 미국은 이와 얼마나 다를지 고민하게 된다.

장정아 인천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는 홍콩시위가 일상적 투쟁으로 확대되면서 이들이 새롭게 각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홍콩의 심각한 주거 문제도 단순히 비싼 집값 문제가 아니라 식민역사와 관련이 깊은 정치적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중국의 일국양제가 지는 허점 뿐 아니라 홍콩 자본주의의 경제와 독점 구조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상훈 (사)사람과문화 사무국장은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 참사를 조명한다. 홍콩시위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고민했다면, 인현동 화재참사는 인천의 기억방식을 묻는다. 피해자들은 과거 ‘날라리’로 폄하됐고,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었던 공무원들은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과거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잘못이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김명인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조국사태로 분열됐던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묻는다. 김 교수는 “더 이상 온건보수정치세력에게 자기의 미래를 맡길 수도 없고, 새롭고 강력한 진보적 정치주체를 스스로 창출해낼 수도 없는 한국 사회의 90% 타자들이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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