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고 심장이 두근대는 탓에 커피를 거의 먹지 않는다.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하거나, 아침부터 비가 내려 기분이 축 처지는 날엔 간혹 점심 무렵에 커피를 마시곤 한다. 커피의 카페인은 사람 몸 안에서 평균 서너 시간 머물다 밖으로 빠져나간다지만 유독 내 몸에선 오래 머무는 것 같다. 오후 늦은 시간에 커피를 마셨다간 새벽 서너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몸을 뒤척이기 일쑤다. 사실 카페인은 사람마다 영향을 미치는 정도인 민감도가 달라서 카페인의 효과는 여전히 연구 중이다. 일단은 각자 자신의 카페인 민감도를 알고 적당한 선을지키는 게 좋다.

그런데 최근 지인과 저녁을 먹고 난 뒤 오후 일곱 시에 커피를 마신 일이 있었다. 그러고도 밤 열두 시에 잠을 아주 잘 잤다. 내 몸이 갑자기 카페인에 적응해버린 걸까. 그날 내가 마신 건 카페인이 없는 디카페인 커피였다. 디카페인 원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카페에서 음료로 판매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커피 메뉴에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그날따라 메뉴판을 자세히 들여다본 덕에 난생 처음 카페인 없는 커피를 마셨다. 맛과 향도 꽤 좋았고, 무엇보다 못 마시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만족감이 가장 컸다.

디카페인 커피를 만드는 과정엔 과학원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1820년대 커피에서 카페인을 최초로 분리해내는 데에는 ‘파우스트’로 잘 알려진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도움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괴테는 커피를 하루에 스무 잔도 넘게 내려 마시는 커피광이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면 왜 정신이 번쩍 드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페르디난트 룽게라는 분석화학자에게 이유를 물었고, 룽게는 커피 열매에서 쓴 맛이 나는 하얀 분말을 분리해냈다. 그는 이 가루에 카페인이란 이름을 붙였다.

1900년 무렵엔 우연히 커피 원두에서 카페인을 빼내는 방법을 발견했다. 로셀리우스라는 독일 상인이 커피를 운송하던 중 그만 원두가 바닷물에 젖고 말았다. 그 원두로 커피를 내렸더니 정신이 맑아지는 증상이 사라졌다. 로셀리우스는 실험 끝에 소금물에 원두를 삶은 후 벤젠을 이용해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탄소가 포함된 액체 상태의 화합물(=유기용매)에 카페인을 녹여 빼내는 것이다. 벤젠이나 아세톤과 같은 유기용매는 카페인만을 쏙 빼낼 수 있지만 독성이 문제가 됐다. 물은 독성이 없는 반면 카페인과 함께 커피의 다른 성분까지 함께 녹이는 게 단점이다. 그래서 물을 이용한 디카페인 커피엔 성분을 추가로 넣어주는 과정이 필요해 비용이 많이 든다.

유기용매를 이용해 카페인을 추출하려면 네 과정을 거친다. 우선 커피 생두를 물에 불린 뒤 용매로 카페인을 추출해내고, 증기를 이용해 유기용매를 제거한 뒤 건조하면 디카페인 생두가 만들어진다. 이 방법은 돈이 많이 들지 않고 커피 품질을 크게 해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 방법으로 만든 디카페인 커피는 들어올 수 없다. 유기용매의 안전성 염려 때문에 정부는 ‘커피 원두의 추출용제는 물과 이산화탄소를 사용해야한다’라고 기준을 정해놓았다.

이산화탄소 추출법은 가장 주목받는 방법이다. 물과 이산화탄소는 초임계점에서 다양한 물질을 녹이는 특징이 있다. 임계점이란 액체가 기체로 변하기 시작해 둘의 구분이 어려운 상태의 온도와 증기압을 말한다. 1기압에서 물의 임계온도는 100℃가 되고, 100℃에서 물이 끓을 때 임계압력은 1기압이 된다. 임계점 이상의 온도와 압력 상태를 초임계라고 부르는데, 물은 초임계 상태에서 금도 녹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는 73기압, 31℃에서 임계점에 도달하고, 압력을 더 높인 초임계 상태에서 카페인이 이산화탄소에 녹아 들어간다. 게다가 이산화탄소는 독성이 거의 없고 화학 물질과도 반응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카페인은 최대 97%까지만 제거할 수 있다. 내가 마신 커피에도 3%의 카페인이 들어있었던 셈이다. 내 몸은 3%의 카페인은 견딜 수 있다. 앞으로 카페인 함량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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