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연말에 일이 잔뜩 몰렸다. 일상 해오던 글쓰기에 추가로 관공서와 계약한 원고를 마감하고, 글쓰기 강의를 마친 후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야한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프다. 간단하게라도 밥을 먹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오기를 며칠. 그 사이 싱크볼에 그릇이 수북이 쌓였다. 그래도 내심 믿는 구석이 있다. 대부분 기름이나 양념이 묻지 않아 세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그릇 개수는 많아도 맘만 먹으면 금세 끝낼 수 있다. 세제가 필요한 그릇들은 싱크대 위에 따로 챙겨뒀다.

큰 건 하나를 마감한 날 아침, 미뤄온 설거지를 해치우려 싱크대 앞에 섰다. 그런데 아니, 이게 뭐야? 그릇들이 온통 기름 범벅이 됐다. 어제 새벽에 집에 온 남편이 라면을 끓여 먹고는 남은 국물을 개수대에 쏟아버린 모양이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이 와르르 무너지기 전에 고무장갑을 꼈다. 세제를 꾹 짜 누르는 손에 화가 실린다.

설거지 거리를 구분해놓는 건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은 습관이다. 간식 먹은 그릇을 부엌에 가지고 가면 엄마는 기름기가 묻은 건 설거지통 바깥에, 물로만 헹궈도 되는 건 설거지통 안에 넣어두라고 했다. 나처럼 설거지를 빨리 끝내려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세제를 아끼려는 마음이었을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 다였지. 세제도 아끼고 설거지도 빨리하고. 세제로 설거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거든.” 아, 그렇지, 엄마가 어렸을 땐 주방세제가 없었겠다.

“옛날 설거지는 지금하고 완전히 달라. 지금은 집 안에 수돗물이 나오잖아. 그때는 물을 길어 와서 썼단 말이야. 부엌이 좀 넓은 집은 부엌 한쪽에 큰 항아리를 묻어. 거기에 물을 길어다 놓고 그때그때 퍼서 쓰는 거지. 물 길어오는 게 아주 힘드니까 물은 무조건 아껴. 옹기로 된 넓적한 그릇에 설거지할 거를 담고 물을 부어서 수세미로 한 번 닦아. 그 물은 밖에 버리거나 음식 찌꺼기가 있으니까 돼지 먹이통에 부어주기도 해. 그러고 나서 그릇에 새 물을 부어서 헹구면 끝이야.”

그럼 기름이 묻은 그릇은 어떻게 닦았을까.

“기름 그릇은 따로 닦아야지. 옛날에 고기를 일 년에 몇 번이나 먹었겠어. 기름이라고 해봐야 들기름이지. 쌀뜨물 받아뒀다가 양은솥에 붓고 불을 때서 데워. 거기에 그릇을 담가서 닦는 거야. 식물 기름이라 뜨거운 물로 다 씻겨. 그릇에 금이 가거나 흠집이 나서 때가 끼면 불 때고 난 재나 연탄재를 물에 섞어서 닦았지. 그러면 그릇이 아주 반짝반짝해져.”

세제는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물었다.

“어렸을 때에도 쌀겨, 보릿겨 잿물로 만든 시커먼 비누가 있었어. 그걸로 그릇도 닦고 빨래도 하고 고무신도 닦고 그랬던 기억이 나. 주방세제를 쓴 건 1980년대 들어서였어. 돈 주고 사야하니까 함부로 못 썼지.”

# 연탄재로 설거지를?

‘여러분 가정에서 가끔 곰국을 끓여 잡수시거나 기름기를 시달린 그릇을 설거지할 때는 누구나 다 같이 어려워하는 것입니다. 물을 펄펄 끓여서 쓰면 대개 기름이 떨어지지만은 그럴 수도 없는 일입니다. (…) 매운 재를 한 줌 미지근한 물에다 풀어놓고 거기다 기름끼 그릇을 한참동안 담가두었다가 수세미로 닦게 되면 묻었던 때까지 다 빠지게 됩니다. 시험해 보십시오.’(1934.10.31. 동아일보)

‘밥상이 부엌에서 나오거든 비린 그릇은 비린 그릇대로 뜨물을 받아두었다가 애머리를 씻고 그 다음에 국이나 찌개 그릇 또는 다른 반찬 그릇을 먼저 더러운 물로 애벌을 씻어 놓고…’ (1937.11.5. 동아일보)

위의 두 기사에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있다. ‘매운 재’는 진한 잿물을 내릴 수 있는 독한 재를, ‘비린 그릇’은 생선처럼 기름기가 있는 그릇을 말한다. 세제로 설거지를 한다는 내용은 1950년대 말에야 신문에 처음 등장했다.

‘먹고 난 다음에 기름기가 묻은 그릇과 안 묻은 것을 구별해서 기름기가 묻지 않은 것만을 먼저 설거지통에 담근다. (…) 기름이 묻은 것은 먼저 종이로 기름기를 닦아낸다. 종이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두고 쓰면 편리하다. 그리고 수세미에 비누를 묻혀서 닦아 씻는다. 아주 심한 기름기라면 중성세제 용액에 담가 두었다 씻는다.’(1959.7.4. 동아일보)

역시 기름이 묻은 여부에 따라 구분해 닦는 건 마찬가지다. 이때 중성세제란 미끈미끈한 비누의 성질인 알칼리성을 다소 약하게 만든 세제로, 1955년 기사를 보면 “털실 세제에는 중성세제로써 가루비누가 가장 좋다. 요즘 시장에 있는 것으로는 ‘아이보리’, ‘럭스’ 등이 좋은 것”이라고 나온다. 당시 세제는 세탁용과 주방용이 구분되지 않았다.

‘신용 있는 애경의 새로운 세제! 식기, 과실, 야채용중성세제 - 기름기로 더러워진 식기라도 말끔히 씻어줍니다. 과실, 야채의 싱싱한 맛을 상하지 않고 농약이나 회충알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인체에 조금도 해가 없습니다.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1966.11.1.)

우리나라 최초의 주방세제는 1966년 애경에서 만든 ‘트리오’다. 과일이나 채소의 농약과 회충알까지 씻어낸다는 광고는 지금으로써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뜩하다. 요즘 과일 전용 세정제가 판매되긴 해도 대다수 사람은 세제를 사용하는 걸 여전히 꺼림칙하다고 여긴다. 환경호르몬 등 독성 성분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1960년대는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몸에 좋고 깨끗하며 옛 방식은 더럽다는 인식이 도시화와 함께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트리오 광고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주방세제에 독성물질이

1970년대 들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는 중성세제는 석유화학물질인 ABS(알칼 벤젠 설폰)계통의 물질로 물에 자연분해가 되지 않아 하천 오염 때문에 외국서는 공해요소로 문제시되고 있는가 하면 요즘에는 인체 유해설이 대두되고 있는 물질이다. 요즘 와서 야채와 그릇을 씻은 후 얼마큼 남아서 그것이 사람 몸에 들어와 장애를 준다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와서 미국과 일본에서는 ABS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1972.3.30.경향신문)

이어진 기사에는 ABS를 먹인 쥐의 내장에서 충혈, 부종, 폐렴이 발생했고 임신 중인 쥐에게 중성세제를 투여했더니 기형 새끼가 태어났다며 채소에 묻은 세제는 흐르는 수돗물에 5분 동안 씻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2년 후 새로운 기사가 나왔다.

‘일반 가정에서 야채나 그릇 등을 씻는 데 사용하고있는 액체 중성세제에서 인체에 해로운 형광물질이 검출됐다. 10일 국립보건연구원이 국내에서 생산되는 10개 회사 제품의 액체 중성세제를 사용하여 씻은 사과, 딸기, 배추, 상추 등 4개 식품을 조사해본 결과 형광물질이 식품에 따라 0.8~42PPM까지 검출됐다는 것이다. 세탁물 등에 광택을 내기 위해 쓰이는 이 형광물질에서는 중금속, 유기염류 등이 나와 적은 양이라도 오랜기간 계속 먹으면 축적 작용이 일어나 소화기 장애, 전신마비 등 신체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1974.4.10.경향신문)

당시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선 중성세제의 형광물질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식품위생법에는 이에 대한 조항이 마련되지 않았다. 기업을 처벌하거나 사용자를 보상할 근거가 없었다. 정부는 기업에 형광물질을 사용하지 않게 ‘주의하라’고 통보했고, 시민들에겐 식품용과 식기용을 구분해 사용하라는 아리송한 당부를 했다. 불과 석 달 뒤 ‘명태 부패 방지를 위해 온몸에 바른 농약을 씻어내기 위해 중성세제 에이퐁이나 트리오를 사용하면 좋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릴 만큼, 식품에 세제를 사용해도 좋다는 인식은 바뀌지 않았고 1980년대까지 트리오 상품 겉면의 과일과 채소 그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주방세제는 각 가정 설거지통 옆에 빠르게 자리 잡았고 나날이 성장해 1990년대에 이르러 연간 생산량은 10만 톤, 금액으론 1000억 원대에 이를 만큼 성장했다. 1995년 정체기를 맞아 각 생산업체들은 저독성, 저자극, 저공해, 식물성 원료 사용 등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다. 수세미즙이나 야자유, 천연 당분, 오이즙을 세제에 첨가하거나 거품 발생을 줄여 설거지 시간과 물을 절약하게 했다. 또, 펌프식 용기와 리필 제품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 남편이 설거지 하면 평등부부?

그런데 설거지는 의외의 분야에서 각광을 받았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1980년대를 지나 ‘맞벌이부부’라는 말과 함께 ‘평등부부’가 사회 현상으로 등장한 1990년대에 이르러 가사노동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요즘 젊은 부부들 중에는 맞벌이가 많다. 그런 탓인지 이들은 집안일에도 가사분담 원칙을 정해 철저하게 일을 나눠서 하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밥은 아내가 짓고 설거지는 남편이 하는 식이다.’(1993.5.5. 경향신문)

‘집안일을 함께 하는 남성이 점점 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아내를 위해 설거지나 해주고 아이나 봐주고 집안일 거들어주는 수준이 대부분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남성들 철들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1993.8.31. 동아일보)

맞벌이하는 남성들이 설거지 등 가사분담을 한다는 내용의 기사들이다.

[“식사준비는 아내가 다 하지만 설거지나 청소는 남편도 할 수 있다고 본다.”(33세. 사업) “맞벌이 부부니까 가사노동은 절반씩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식사 준비는 아내가 하고 설거지는 내가 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설거지하고 TV를 보는데 아내가 방청소를 요구했다. 방청소는 공동책임인데 나보고 하라니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반발심이 일었다.”(27세. 대학 조교)](1994.5.23. 동아일보)

머리론 가사노동을 분담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설거지와 청소에서 멈추고, 여전히 여성의 일을 도와주는 보조자 역할만 하고 있음을 꼬집은 기사다. 당시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분담률은 차이가 아주 많이 났다.

‘취업주부의 약 85%가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의 가사와 직장일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남편들은 가사를 거의 나눠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 가사노동 부담은 결혼 여부에 따라 심한 불균형을 보여 미혼이 경우 남녀가 하루 각 36분, 1시간 49분이던 것이 기혼으로 가면 38분과 5시간 29분으로 크게 차이나 취업 여성의 이중노동 현상이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준다.’(1991.5.25. 매일경제)

30여 년이 지난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47분. 결혼하고 아이 키우느라 분주한 시기인 25~39세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평균보다 겨우 2분 더 많다. 반면 같은 연령대 여성은 4시간 9분으로, 5배나 길다. (…) 맞벌이와 외벌이 부부의 시간활용을 보면, 맞벌이 남편의 가사노동시간은 41분으로 오히려 외벌이 남편(46분)보다도 적었다.’

2015년 10월 17일 한국일보 기사다. 25년 동안 맞벌이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3분 늘었다.

지난 9월 ‘트리오’는 광고 하나로 여성들에게 욕을 잔뜩 먹었다. 광고는 엄마가 아기를 갖고, 키우고, 결혼을 시키고, 손자를 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듯하지만, 사실 광고 속 그 여성은 50년 동안 내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많은 여성은 이제 이런 장면을 ‘성차별’로 인식한다. 그러나 사회의 절반의 시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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