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청년노동자 밀집지역, 중구 운서동 원룸촌
청년들, “큰 섬 안의 작은 섬, 편의시설과 교통 불편”

[인천투데이 조연주 기자](영종도라는) 큰 섬 안에 있는 작은 섬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천 중구 운서동에 해당하는 영종도의 넙디마을에 살고 있는 청년 박 모(36)씨 넙디마을을 이렇게 표현했다. 넙디마을은 20대에서 40대 미만 인천국제공항 노동자 5000여 명이 모여사는 원룸촌 밀집지역이다. <인천투데이>는 넙디마을을 찾았다.

넙디마을은 20대에서 40대 미만 인천국제공항 노동자가 모여사는 원룸촌 밀집지역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실시한 인천공항 청년노동자 노동 실태와 생활만족도 조사결과를 보면, 넙디마을 청년들 78% 가량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부족한 편의시설과 교통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 이곳 청년들은 편의점 도시락이나 배달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제 치킨이 물린다"는 얘기도 나왔다.

넙디마을은 '넓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광동리(廣東理)라고 불렸던 ‘운서토지정리기획사업지구’ 일대의 지명이다. 직접 찾은 넙디마을은 이름과 달리 차로 5분에서 10분이면 한바퀴를 다 돌아볼 수 있을만큼 작았다. 마을은 남북쪽에 근린공원, 동서쪽에 백운산과 영종대로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 속 섬 같았고, 적막감이 감돌았다.

넙디마을 한 편의점에 써있는 안내문. 

80% 인천공항 노동자에 배차간격은 20분 ··· 험난한 출근길

"영종도 내 택시 이용 가장 많은 곳이 넙디마을" 

청년들이 이곳을 ‘섬’이라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불편한 교통 때문이다. 넙디마을 거주자의 대부분은 인천공항에서 일하고 있다. 인천공항과 가까운 거리에 집 값이 싸서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청년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넙디마을 내부를 가로지르는 버스 여섯 대 중 598번, 202번 두 대만이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경유한다. 배차간격은 각 17분, 22분이다. 이 버스마저도 운남동에서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면 못 타고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번 놓치면 꼼짝없이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영종대로로 나가면 223번과 307번을 탈 수 있지만, 배차간격이 각 20분, 36분이다.

영종대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시간도 꽤 걸린다. 넙디마을 가장 안쪽을 기준으로 걸어서 12분 정도 소요된다. 걷는 시간에 배차간격, 버스 이동시간 40분 가량을 고려하면, 넙디마을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데 최대 1시간 10분이 걸리는 것이다. 이는 인천의 다른 지역에서 통근하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다.

영종대로로 나오면 인천국제공항을 경유하는 버스 두 대를 탈수있다. 버스 배차간격은 20분 이상이다.

버스로는 1시간 10분이 넘게 걸리는데, 자동차로는 20분만에 갈 수 있다. 때문에 청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택시를 탄다. 넙디마을 중심상가 갓길에는 항상 택시가 늘어서 있다. 마을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택시비는 1만원 정도 나온다. 3조 2교대, 6조 4교대제로 근무하며 새벽에 출퇴근 하는 청년들도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한다. 

넙디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여기 청년들이 영종신도시나 하늘도시 사람들보다 택시를 더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인천 시내와 달리 교통편의 환승 할인이 안되는 것도 문제이다. 버스로 운서역까지 나간 뒤 지하철을 환승하더라도 할인이 안돼 지하철 요금을 또 내야 한다.

민주노총 조사결과를 보면, 넙디마을 청년들의 지출은 식비 다음으로 교통비와 주거비 순으로 나타났다. 다른 지역보다 거주비가 조금 싼 대신, 비싼 교통비를 내고 출퇴근 하고 있는 것이다.

불편한 교통과 잦은 새벽 출퇴근으로 청년들은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새벽 퇴근길 '등대'같은 편의점 ··· 마트 역할 대신해 

열악한 문화·생활 시설, 가장 필요한 것은 '병원과 약국' 

넙디마을은 아파트 열 채를 제외하고는 방이 하나 또는 두 개인 ‘원룸촌’으로 이뤄져있다. 이곳의 거주자들은 대부분 평균 보증금 300만 원·월세 35만 원, 전세 4000만 원가량을 내고 원룸 또는 투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넙디마을에서 만난 A부동산의 중개인은 인천공항과 가깝다는 이유로 청년들이 많이 찾지만 돈을 좀 벌면 하늘도시나 운서역 부근 오피스텔, 운남동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부동산 중개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도중 한 청년이 집을 내놓는다며 찾아왔다.

그는 넙디마을을 떠날 계획이라며 “인천공항과 가까워 이곳으로 왔는데 인천공항까지 가는 교통비는 교통비대로 들고 놀것도 없이 답답해, 사는데 메리트가 없다”고 말했다.

편의점은 적막한 넙디마을의 '등대'같은 존재다. 새벽이 되면 원룸촌 구석구석 자리잡은 편의점 간판 만이 불을 밝히고 있다. 새벽에 퇴근하는 청년들은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B편의점의 주인은 “여기 편의점에는 거의 모든 도시락 구색이 다 갖춰져 있다”라고 말했다. 편의점이 마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편의점에서는 1인분 세척 대파, 양파, 버섯들도 팔고 있었다. 낮밤없는 넙디마을에서는 유일한 마트 한 곳도 24시간 문을 연다. 

편의점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도시락과 1인용 식재료가 구비돼있었다. 

C식당에 들어가니 청년들이 하나 둘씩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끊임없이 배달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식당 주인은 홀 손님보다 배달 손님이 더 많다며 이 지역 식당 중에 배달이 안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했다.

넙디마을 안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술집 5~6곳, 코인노래방 3~4곳과 당구장, 피씨방 정도가 넙디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오락시설이었다. 영화관이나 서점, 대형마트를 가려면 운서역으로 40분가량 걸어 나가거나 버스를 타야 한다.

넙디마을 거주자라고 밝힌 D씨는 시간이 맞으면 친구들과 놀러 나가지만, 긴 퇴근길과 고된 노동에 지쳐 그냥 집에 머무를 때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마을에 쇼핑이나 문화시설은 고사하고, 철물점이나 과일가게 같은 것도 없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때우는 것도 한계가 있어 답답하다”라고 토로했다. 

곧 건물이 들어선다는 부지에 방치돼 있는 쓰레기도 종종 눈에 띄었다. 쓰레기는 바람이 불면 차도로 날아다니기도 했다. 마을이 관리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찰서나 은행, 병원, 주민센터 같은 생활시설은 없었다. 청년들은 넙디마을 내에 꼭 필요한 시설은 '병원과 약국'이라고 입모아 말했다. 넙디마을에서 병원·약국을 가려면 운서역 부근이나 운남동까지 가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경찰서나 파출소도 없어 불안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공터나 인도에 쓰레기가 방치돼있다. 바람이 불면 쓰레기가 날아다니기도 한다. 

넙디마을에는 2022년까지 더 많은 주택과 상가가 지어질 계획이다. 제대로 된 교통편과 편의시설이 들어서지 않는다면 넙디마을은 더욱 고립된 섬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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