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엄마가 내 앞에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에펠탑 모형과 감자 닦는 솔, 초콜릿 한 갑이었다. 칠순맞이 자축 선물로 유럽을 다녀오겠다는 엄마에게, 정말 아무것도 사 오지 마시라 신신당부했다. 사실, 흥미로운 볼거리 먹거리로 가득한 여행지에선 함께 오지 못한 누군가가 떠오르기 마련이고, 그를 위해 지갑을 열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여러 번 강조해 말해도 뭔가를 사 오시겠거니 예상은 했다. 다행히 엄마는 여행지에서 ‘호갱님’이 되지는 않은 듯하다. 주는 재미, 받는 기쁨을 공평히 나눌 만큼 과하지 않은 선물을 내게 내밀었으니. ‘요 작은 것들을 고르느라 얼마나 고심하셨을까.’ 상상하며 웃는 내게 엄마가 묘한 표정으로 상자 하나를 더 내밀었다.

ⓒ심혜진.

“하도 여기저기서 팔기에 맛있을 줄 알았는데….” 상자를 열어보니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원뿔 모양 사탕이 스무 개 정도 들어있다. 짙은 보라색 겉면은 군데군데 허연 가루가 붙어 버석버석했다. 전체가 설탕 덩어리인 게 분명했다. 사탕에선 익숙한 향이 났다. 하나를 깨물어보니 캐러멜처럼 물렁했다. 설탕 속에는 찐득한 라즈베리 잼이 들어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버석한 식감과 강한 향이 낯설어 먹기 부담스러웠다.

“와, 이건 정말 달아도 너무 달다.” 찡그린 내 얼굴을 보고는 엄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조카 친구들에게 이 사탕을 선물했는데, “최악의 맛”이라며 하나같이 뱉어버렸다는 거다. 엄마는 차라리 초콜릿을 한 갑 더 살 걸 그랬다며 속상해했다.

실망하기엔 일렀다. 엄마는 분명히 ‘이걸 관광지에서 잔뜩 쌓아놓고 팔더라’고 했다. 그 지역 특산품일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상자에 적힌 ‘cuberdon’을 검색창에 쳐봤다. 그럼 그렇지.

쿠베르동, 큐베르동, 퀴베르동이라 불리는 이 사탕은 벨기에에서만 생산하는 제품이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쿠베르동은 아카시아 나무에서 추출한 당 성분과 라즈베리 잼으로 만든다. 최초의 쿠베르동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있다. 벨기에의 브뤼헤 지역에 사는 성직자가 만들었다는 설, 1873년 겐트 지역에 사는 약사가 우연히 제조법을 발견했다는 설이다. 당시 약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시럽 형태로 만들었는데, 미리 만들어둔 시럽이 겉은 굳은 반면, 속에는 여전히 액체 상태로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기술로 사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BBC에서 만든 영상을 보면, 후자의 설이 조금 더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쿠베르동은 3주가 지나면 잼이 단단해져 오래 보관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수출이 어려워 벨기에 현지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여느 특산품처럼 쿠베르동 역시 한때 생산자들이 서로 자신이 원조라며 다툼을 벌였지만, 지금은 논쟁이 잦아든 상태다. 제조사마다 쿠베르동 만드는 비법은 극비라 한다.

그러고 보니 쿠베르동은 향토음식의 특징을 모두 갖췄다. 향토음식이란 특정 지역에서 독특하고 고유한 조리법으로 만들어지고 전승된 음식으로, 다른 지역에서 함부로 모방하기 어렵고, 해당 지역민들에게 오래 사랑받으며 지금까지도 즐겨 먹는 게 특징이다. 강원도 감자떡, 전라도 전주비빔밥, 경상도 콩잎김치, 제주도 몸국 등, 오랫동안 삶이 이어진 곳엔 반드시 향토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타지 사람이 향토음식을 잘 먹는 것만으로도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곤 하는데, 그 특별한 맛 속엔 풍토에 적응해 살아온 서민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토속의 맛을 나눈다는 건 지역민의 삶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쿠베르동을 절대 뱉지 않기로 했다. 향토음식은 오래 먹을수록 그 참맛을 제대로 알게 된다. 고작 스무 개의 쿠베르동으로 가능할진 모르지만, 먹지 않고는 결코 그 길에 이를 수 없다. 하루에 한 개씩, 천천히 맛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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