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80의 사회' | 리처드 리브스 지음. | 김승진 번역 |민음사 | 2019.8.23.

[인천투데이] 전 세계가 불평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예상한 바다.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득세할 적에 결과적으로 심각한 불평등 현상이 나타나리라 전망했다. 자본이 전세계 차원에서 자기증식을 해나가면 가진 자의 부는 더 늘어나게 돼있다. 그런데 시장의 실패를 국가권력이 개입해 교정하려할 적에 이를 가로막는다면, 가난한 이의 고통은 해소될 수 없다. 지난 한 세대를 우리는 사회적 통합을 폐기한 어처구니없는 서사에 사로잡혔고, 오늘 그 파국을 목격하는 셈이다.

그동안 불평등 문제를 제기할 적에는 ‘1대 99’라는 표현을 널리 써왔다. 상위 1%에 부가 집중하면서 불평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0대 80’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이 개념은 실제로는 ‘1대 19대 80’이다. 1%는 최상위 소득계층이라는 걸 금세 알 터이고, 그렇다면 19%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리처드 브리스는 ‘20 VS 80의 사회’에서 “기자, 학자, 기술자, 경영자, 관료들, 이름에 PhD, Dr, MD 같은 알파벳이 붙는 사람들, 그러니까 당신이나 나 같은 먹물들”이라고 명토 박는다.

지은이의 경력이 특이하다. 본디 영국 사람이나 신분제적 속성이 강한 모국에 넌더리를 느껴 미국으로 귀화했다. 아메리카 드림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기회가 공평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실제로는 계급상승 기회가 막혀 있다는 점을 알게 됐고, 이를 여론화하기 위해 ‘20 VS 80의 사회’를 썼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1대 99’에 가려졌던 19의 특징이다. 1979년부터 2013년 사이에 상위 1%의 소득 총합은 1조4000억 달러 늘어났는데, 19%의 소득 총합은 2조7000억 달러 늘었다. 이는 “최상류층의 총소득 증가분 1달러 당 중상류층의 총소득 2달러씩 증가”했다는 뜻이다. 현재 19%는 미국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당연히 20과 80의 소득격차는 더욱 커졌다. 19가 99에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1%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상위 1%는 세금을 더 많이(훨씬 더 많이)내야 한다.” 지은이가 폭로하는 바는, 80에 숨는 19의 실상이다. 비유하자면 유대인에게 예수를 넘긴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자신은 죄 없다 하는 것처럼, 마치 상위 19%가 만연한 불평등에 책임이 없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우리와 미국의 차이인데, 상위 1%와 19%는 서로 들락날락한다. 벤처를 운영하던 19에 속하던 사람이 시쳇말로 대박 나 1% 그룹으로 상승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미국 사람은 대체로 1%를 비난하지 않는다. 실력으로 부를 쌓은 집단은 선망의 대상이지 비난의 상징은 아니다. 우리는 불법으로 얼룩진 재산 형성 과정과 부의 세습이 일반화한 1%라 늘 도덕성을 의심받지만 말이다.

19%가 전문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오늘날 노동시장은 지식자본이 있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친다. ‘기술, 두뇌, 학위, 자격증’ 같은 시험점수 본위적 능력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한마디로 고등교육을 받았느냐 여부가 20에 들지 80에 들지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교육열이 치솟아 오르고, 교육을 통한 계급유지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 자체는 윤리적으로 문제없다. 하지만 “부유한 아이들의 발밑에 유리바닥을 깔아 하향 이동을 막으”려고 불공정한 짓을 저지르는 건 큰 문제다. 지은이는 이를 ‘기회 사재기 전략’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배타적인 토지용도 규제, 동문자녀 우대제도, 인턴제도 분배가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제 능력이 세습되는 시대가 된 셈이다.

지은이는 미국이 본디 능력 본위적인 사회이지만 불공정한 사회이기도 하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불공정한 지점은 “경쟁 자체가 아니라 경쟁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하는 단계”라 지적했다.

줄곧 읽다가 보면 우리나라랑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아는 착각에서 벗어나 능력을 획득할 기회가 더 공정하게 나누어지게 애써야한다. 지은이는 공공 투자 확대, 증세, 고등교육 규제를 구체적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왜 ‘강남좌파’니 ‘입진보’니 하며 비아냥거리겠는가. 99에 숨지 말고 19에든 이들이 자성해서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맨 앞자리에 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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