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이보렴 기자] “북한과 남한에서 지워진 김원봉을 기억하자”

지난 26일 이원규 작가가 쓴 ‘민족혁명가 김원봉’ 북콘서트가 인천아트플랫에서 열렸다. ‘민족혁명가 김원봉’는 이 작가 2005년 출간한 ‘약산 김원봉 평전’의 전면 개정판이다.

이날 행사에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태동철 옹진문화원 원장, 최용규 인천대학교 이사장 등 약 80명이 참석했다.

'민족혁명가 김원봉'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원규 작가

이원규 작가는 약산 김원봉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김원봉은 공산주의자며 임시정부 내에서 백범 김구와 대립관계였고, 1948년 월북 이후 6ㆍ25 전쟁의 원흉이 됐다는 비판을 화두로 던졌다.

이 작가는 임정 내에서 약산과 백범의 갈등 관계를 두고 보수진영이 ‘약산이 임정을 파괴했다’고 비판하는 데에 대해, “임정파괴가 아니라 개인적인 유대는 유지하면서 정치적으로 주도권 다툼을 벌인 관계”였다고 운을 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양윤모 인하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또한 임정 내에서 발생한 약산과 백범의 갈등에 대해 “항일 노선에 대한 정치적 차이보다는 임정 자금을 두고 다툰 갈등”이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중국 국민당 장제스(장개석) 정부는 임정 내 정치 계열에게 자금지원을 따로 하며 관리하고 있었고, 이 자금문제로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또 같은 백범 계열 내에서도 자금 배분 문제로 상당히 잡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또 “약산과 백범은 항일전선에서 민족주의 노선을 나란히 견지했다”고 했으며, 이원규 작가 또한 “김구와 김원봉의 노선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립 자금문제가 컸을 것”이라고 동의했다.

약산이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해 이 작가는 “김원봉은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공산주의는 필요해서 이용한 것이다. 레닌의 지원 자금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의열단이고 김원봉이다. 이는 오히려 공산주의로 포섭하기 위한, 그만한 대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약산은 항일 독립투쟁을 위해 공산주의를 민족주의 운동의 한 방식으로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 충칭에 있던 조선의용대 다수가 화베이(화북)으로 올라가 팔로군과 결합할 때 같이 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조선의용대와 김원봉의 활동을 지도로 설명하는 이원규 작가

약산이 충칭에서 만든 조선의용대 중 약 70%는 화베이로 올라가 조선의용군이 되고, 2차 국공합작당시 중국 공산당 간부 저우언라이가 지도하던 팔로군에 소속된다. 이때 약산 본인은 화베이로 가지 않고, 당시 2인자였던 윤세규를 보냈다. 이후 약산은 남은 조선의용대를 이끌고 임시정부 대한광복군에 합류한다.

이 작가는 김원봉 체포 또한 초판과 개정판의 사실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 작가는 우선 “초판에서는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이 노덕술을 시켜 김원봉을 잡아오라고 명령했고, 그 이유를 의열단이 장택상 아버지를 죽인 일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라고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작가는 추가로 공개된 사료를 보고 나니 “그런데 새로 공개된 미군정 문서를 보면 당시 미군정 내무부장 안재홍이 ‘미군정의 명령이었다’고 진술한 증언이 나온다”며 “김원봉의 체포는 좌익을 잡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약산은 몽양 여운형의 암살까지 보고난 후 월북했다. 약산의 월북에 대해 이 작가는 “약산은 남한에서 정치적으로 설 자리를 잃어서 북한으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또 약산이 6ㆍ25 전쟁의 원흉으로 지목 받는 데 대해서도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약산이 원흉으로 지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약산이 키운 후배들이 조선의용군이 됐고, 이들이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북한에서 나라를 세웠을 당시 군 장교 30명 중 20명이 약산의 후배들이어서 군사력을 가장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 김원봉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김일성은 그 때문에 약산에게 군권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 약산 국가검열상(감사원장)으로 반김일성파를 처단할 수는 있었지만 군권은 없었다”며 “기록을 찾지는 못했지만 도리어 전쟁을 말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쟁의 원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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