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 문학평론가 ‘제70회 인천마당’서 강연
‘두 섬,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 주제로

[인천투데이 조연주 기자]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가 주최한 제70회 인천마당 ‘두 섬,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가 11월 25일 저녁 부평생활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이명원(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문학평론가가 강사로, 노래패 ‘우리나라’ 멤버인 한선희 씨가 노래손님으로 초대됐다. 강연에 앞서 한선희 씨는 ‘실비’ ‘꽃이 되고 싶었어’ ‘새로운 길’을 불렀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책 ‘두 섬 -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로 한국과 오키나와의 역사적 상동성(相同性)에 주목했다. 그는 “일본 본토 관점에서 본 오키나와 연구는 많지만, 한국에서 본 오키나와 연구는 드물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아래는 그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이명원 문학평론가.

한국 사람들은 오키나와를 프로야구 선수단 전지 훈련지나 여행지로 인식하고 있다. 오키나와가 상당히 오랜 기간 한반도와 교류했고 서로 소통했음에도, 일본이 오키나와를 점령한 뒤 그 관계가 잊혔기 때문이다. 한국과 오키나와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아시아에서 남과 북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양극이었다. 한국은 독립했지만, 오키나와는 100년 넘게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다. 오키나와의 옛 왕국 이름은 ‘류큐’였다. 류큐 왕국은 1879년에 일본 식민지가 되면서 오키나와현으로 병합됐다.

오키나와에는 조선인 이야기도 많다. 일제강점기에 오키나와로 연행돼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조선인들이 있다. 내가 오키나와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그곳에서 본 ‘조선인 위령탑’ 때문이었다. 위령탑은 1975년 8월 광복 30주년을 맞아 세워졌다. 위령탑을 쌓은 돌은 우리나라 각지에서 수집돼 옮겨진 것이다. 당시 조선인 1만여 명이 오키나와전투에 투입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확인된 사람은 3400명가량이다. 역설적으로 위령탑은 일본의 극우파가 건립했다. ‘조선인도 일본을 위해 싸웠으니 위령탑을 세워야한다’라는 군국주의적 관점에서 세웠다.

조선인 군노무자의 실상은 참담했다. 조선인 군부에는 무기가 지급되지 않는 등, 이른바 ‘총알받이’ 취급을 받았다. 조선인 군부는 오키나와 사람들과 더불어 학살되고 집단자결을 강요받기도 했다. 김원영 선생이 출간한 수기 ‘조선인 군부와 오키나와’와 박수남 감독의 ‘아리랑의 노래’을 보면 조선인들이 어떻게 강제 연행됐는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

오키나와에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도 있었다. 1975년에 배봉기 할머니는 일본 언론에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계기가 된 김학순 활동가(=할머니)의 첫 증언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오키나와 본도에만 ‘위안소’가 대략 130여 곳이 있었고, 그중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다고 확인된 ‘위안소’는 41개다.

노래손님으로 함께한 한선희 씨.

오키나와 사람들의 정체성은 복합적이다. 국적은 일본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오키나와 사람들의 정체성은 류큐 사람, 오키나와 사람, 일본 사람으로 나뉜다. 즉, 오키나와에는 삼중 정체성이 삼투돼있다.

‘류큐 사람’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오키나와 전체 인구의 25%로,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독립까지 주장하진 않지만, 오키나와현이 일본에 속해있더라도 자치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자신을 ‘일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과 조금씩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오키나와에서 가르치는 오키나와사(史)는 전체 교육과정 중 한 시간밖에 안 된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자주역사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본토 사람들과는 달리 한국인에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둘은 같은 일본제국주의의 피식민 경험이 있고, 가해ㆍ피해를 나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오키나와의 관계가 검토된 적은 없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 등, 오키나와 관련 문헌으로 한국의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번역된 자료가 많이 없어 아쉽다. 이런 자료들은 상업성이 없어 출판사가 번역작업을 쉽게 하지 않는다. 공공기관이 나서 오키나와 문헌에 관심을 갖고 번역작업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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