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이 사진 멋지지 않아?” 엄마가 보여준 핸드폰 화면에는 독일 쾰른 대성당 앞에서 분홍색 바지를 입고 선 엄마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엄마는 지난달 칠순 기념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이때껏 해외라고 가본 곳은 일본뿐이라 엄마는 여행에 기대가 컸다. “유럽은 잘 사는 나라라서 그런가, 건물들을 다 돌로 만들었더라고. 몇 백년 된 건물인데도 그렇더라.” 거리에도 보도블록 대신 네모난 돌을 잘라서 깔아놓았더라면서, 그런 게 참 좋아 보이더라고 했다. 누구든 낯선 장소에 가면 살던 곳과 다른 점이 먼저 눈에 띄게 마련이다. “잘 살아서라기보다는 그 나라에 돌이 많아서 그런 거죠.” 나는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여행 중 피곤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하신다. “하나도 안 힘들었는데 나중엔 피부가 막 거칠어지더라고. 기분이 좋으니까 피곤한 줄도 몰랐나 봐.” 나는 웃음이 났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유럽에 돌로 만든 게 많은 거랑 엄마 얼굴이 거칠어진 거랑 원인이 같아요.”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엄마 사진 속 퀼른 대성당처럼 유럽엔 대리석 건축물이 많은데 우리나라엔 그렇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땅을 구성하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마그마가 땅속에서 굳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 넓게 분포해있다. 마그마가 굳은 암석을 화성암이라 하는데 화강암은 깊은 지하에서 마그마가 천천히 식으면서 만들어진 단단한 암석이다. 제주 일대에서 볼 수 있는 검은 암석인 현무암도 화성암이지만, 현무암은 지표 근처에서 급격히 식은 탓에 공기가 빠져나간 자리가 숭숭 뚫려 있어 쉽게 부서진다. 화강암은 아주 단단해서 손질하기가 어려워 쉽게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빗물에 쉽게 부서지는 단점도 있어, 현대에 와서도 부엌 싱크대 상판이나 계단, 난간 등 내장재로 주로 쓰인다. 화강암 건축물을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유럽은 석회암 지대가 많다. 석회암은 조개껍질이나 산호, 동물의 골격 등 한때 생명체였던 것의 일부가 쌓인 퇴적암이다. 이는 아주 오래전 유럽 일대가 얕은 바다였다는 증거이다. 석회암이 땅속 깊은 곳에서 높은 열과 압력을 받으면 새로운 암석으로 바뀌는데 그것이 바로 대리석이다. 11세기, 유럽이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도시마다 근처 채석장이나 땅 밑에서 캐낸 하얀 돌로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땅에서 막 꺼낸 석회암이나 대리석은 비교적 연해서 톱으로 썰고 다듬을 수 있을 정도라 한다. 유럽에서 돌로 만든 건축물과 예술품을 두루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석회암과 대리암의 주요 성분인 탄산칼슘(CaCO3)은 염기성을 띠는 물질이어서 약산성을 띠는 물에 녹는 단점이 있다. 특히 유럽은 지반이 석회암으로 구성돼있다 보니 지하수에도 석회 물질이 다량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물로 세수를 하면 피부에 석회질이 남아 푸석푸석한 느낌이 든다. 물을 그냥 마시면 건강에 해로운 건 당연하다. 이 때문에 유럽에선 석회질을 걸러내는 정수기가 대단히 발달했다. 유럽만이 아니라 중국에도 석회암 지대가 많다. 유럽이나 중국에선 수돗물을 절대 그냥 마시지 말고 정수기를 사용하든, 생수를 사 먹든 해야 한다.

요즘 유럽이나 중국으로 여행을 갈 때 석회질을 걸러내는 필터가 달린 샤워 꼭지를 챙겨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나도 엄마 여행 가방에 이 샤워 꼭지 하나 챙겨 넣어드렸다면 좋았을 걸 그랬다. 여행 내내 불편함 없이 보송한 얼굴로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아차 싶다. 석회암이니 석회질이니 알면 뭐하나. 현실에 적용이 안 되는걸. 언젠가 엄마랑 유럽을 가게 되면 샤워기 가져가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그때까지 엄마의 무릎이 튼튼히 기다려주기를!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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