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보건복지부장관 효행상 받은 김수홍(산곡2동)씨
30년간 홀어머니 병수발, 이웃 어른도 부모처럼

▲ 지난 7일 보건복지부장관 효행상을 수상한 김수홍(53ㆍ산곡2동)씨.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건 시일이 너무 길어지면 정성이 소홀해질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바로, 어버이날을 맞아 지난 7일 보건복지부장관 효행상을 받은 김수홍(53ㆍ산곡2동)씨 이야기다.

산곡동 1번지에서 태어나 산곡초등학교를 나온 부평토박이 김씨는 두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었다. 당시 누이는 다섯 살. 대학까지 마치고 군부대에서 일하던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악착같이 살며 두 자식을 키웠다.

그런 어머니는 김씨가 대학에 들어간 77년 암수술을 받았다. 이어, 1980년 지병인 관절염이 도저 고관절수술도 받아야했다. 대수술만 세 번, 어머니는 5년 동안 수술과 치료를 반복했다. 그 때부터 휠체어에 의존해야했고, 점차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어머니가 저에게 해주신 만큼 나도 어머니에게 하자. 내가 하는 걸 보고 아이들(두 아들 현재 24․26세)도 따라하겠지, 생각했어요”

김씨는 틈틈이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경로당은 물론 원적산공원을 나갔고, 멀리 연안부두도 갔다. 또한 누워계신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대소변도 직접 처리하는 등 극진히 모셨다.

“하다 보니 손에 익고 요령도 생기더라고요. 오래 누워계시다 보니 대변이 딱딱해져 일을 보기가 힘드셨어요. 그럴 때면 항문 주위를 마사지해 일을 보시게 해드렸죠”

그는 1984년 결혼했다. 어머니가 대수술을 받은 이후다. 줄곧 직장생활을 한 아내 이회란(49)씨 역시 시어머니를 목욕탕에 모시고 다니며 손수 목욕을 시키는 등 효성이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

“불편한 어머니가 계신데 결혼해 줘 고맙죠. 그런데 어머니가 여자라고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맞벌이를 했죠. 저는 95년까지 직장생활을 했고 그 후로 보험 일을 조금 했어요. 아무래도 보험 일이 시간 여유가 있으니 어머님을 보살피기 수월했죠. 제가 집을 비울 땐 집사람과 아이들이 어머니를 보살피지만, 어떻게 보면 집사람과 역할이 바뀌었죠. 어머니가 제 손 닿는 걸 좋아하신 것도 있고요”

김씨는 동네일도 열심히 했다. 지금은 산곡1ㆍ2동 자율방범대장, 산곡2동 방위협의회장도 맡고 있다. 혼자서 어려운 노인들에게 밑반찬을 가져다드리고 점심식사에도 초대했다.

김씨의 이런 효행을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 특히 동네 노인들에 의해 김씨는 두 달 전 보건복지부장관 효행상 후보로 추천됐다. 그리고 지난달 말께 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김씨의 어머니는 지난 4월 29일 여든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잠을 잘 못 주무셨어요.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새벽 1시 반까지 저랑 얘기를 나누시다가 주무시더라고요. 점심때쯤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드렸죠. 잠시 눈을 뜨시더니 또 주무시더라고요. 그날 친목회가 두 곳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취소하고 옆을 지켰죠. 혹시나 해서 병원으로 모시려고 했더니 안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6시께부터 숨을 좀 가쁘게 몰아쉬시더니 7시 45분에 운명하셨어요”
어느새 김씨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그는 이번 어버이날에 제주도 여행을 시켜드리겠다고 했는데, 영영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어디를 가든 어머니 생각을 먼저하고,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는 산나물이며 게장을 꼭 사들고 집으로 온 그에게 제주도 여행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한이자 평생 짐이 됐다.

그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주변에서 모두 효자라고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부모 없이 내가 태어나지 않았고, 100%는 아니어도 99%는 어머님이 요구하는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데….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지만, 돌아가시는 것보다 옆에 누워계신 게 감사하다고 늘 생각했어요. 이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만큼 이웃 어른들에게 더 잘해야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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