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인천투데이] 동구 만석동 신일철공소 철거는 이 나라가 아직도 관료들만의 국가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공동체의 참여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기초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협력을 거부하는 관료들의 정체성에 여전히 굳건한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재확인해줬다.

신일철공소는 빠르게 철거됐다. 철거 현장을 경험한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새벽녘에 철공소 외곽에 가림막이 설치됐고, 문도 열지 않은 어린이집 마당에는 포크레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날은 주민들 안보교육이 예정돼있었다. 휴일인 토요일임에도 다수 공무원이 동원돼 철거 현장을 둘러쌌고, 항의하는 주민들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됐다. 그리고 순식간에 건물이 사라졌다. 행동은 신속했고, 방어는 철저했다. 관료들의 능력이다.

신일철공소는 목선 건조와 수리에 필요한 배 못을 만들던 작업장이었다. 철공소 주인인 박상규 장인은 2007년 사망했다. 단순한 배 못이 아니라 전통방식을 이어온 인물로 알려져있다. 주민들은 이 공간이 우리나라 조선업의 전통과 만석동 마을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곳이니 근대산업유산으로 평가받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엄밀히 말해 유산으로서 가치는 논의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일부와 시민사회는 철공소 보존을 원했다. 다수 시민의 의견이 있을 때에는 설사 의견이 다르더라도 설득의 시간은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의견을 무시한 채 그토록 급하게 철거해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신일철공소 철거는 산업유산의 문제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면을 추적할 필요도 남아 있다.

흔히 관료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앞세우는 것 중 하나가 민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민원이 요구대로 실행될 필요도 없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이번 문제는 주민들의 주장에 근거할 때, ‘도시유적위원회’의 의견도 무시하고 관이 오히려 앞장 서서 철거 촉구 서명까지 받았다는 데 있다. 신일철공소 철거를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그렇게 치밀하게 진행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누가 이 ‘작전’을 책임지고 밀어붙였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관료사회는 이 건물을 없애는 데 동의했고, 건물이 사라지는 것에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부 세력만을 계속 강화하고 싶은 관료사회의 전형적인 규범이 그대로 작동됐다. 반전은 없었다.

관료는 공공 가치를 위해 복무하는 그룹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직업군보다 신분을 최대한 보장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태를 목도하게 되니, 어쩔 수없이 위계와 엘리트 의식에 철저히 무장된 식민지 관료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식민지 관료 출신자들은 광복 후에도 살아남았다. 식민지 내에서 차별화된 집단이라는 이들의 의식은 이후에도 계속 승계됐다. 자신들의 능력이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동력이 됐다는 이들의 믿음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시민과 협력을 거부하는 관료사회는 어떤 방식이로든 재편될 필요가 있다. 신일철공소 철거 문제는 행정절차상 갈등 문제만은 아니다. 아주 오랜 기간 이어져온 시민과 국가와의 문제를 되새겨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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