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56> 티레와 시돈

비블로스 해안의 유적지 전경.

[인천투데이] 레바논은 면적이 한국의 10분의 1로, 작은 나라다. 그런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네 곳이나 있다.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까? 그것은 이곳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중해 연안의 평원을 흐르는 마르지 않는 강물과 사막의 열기를 막아주는 산맥들이 과일과 채소 재배를 가능하게 해주고, 내륙 평야지대를 흐르는 강은 많은 곡물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풍요로움과 함께 동서양의 가운데에 위치해 여러 민족과 국가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각기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까닭에 레바논은 기원전 4000년대부터 도시국가가 생겨났다. 지중해 연안에서 탄생하기 시작한 도시국가는 풍요로운 환경 덕분에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지까지 무역을 할 수 있었다. 이때 왕성한 활동을 한 도시국가가 비블로스ㆍ티레ㆍ시돈 등인데, 이 국가들을 일컬어 ‘페니키아’라고 한다.

레바논은 중동과 유럽, 이집트를 잇는 중계무역이 활발했던 페니키아의 후예다.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가깝게는 이라크와 페르시아, 멀게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 들어오는 중계물자들을 배로 실어 나르는, 사실상 실크로드의 서쪽 종착지이기도 하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레바논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지금까지도 자체적인 경제구조를 갖추기보다는 다른 나라들을 잇는 중계무역이 발달해있다.

‘페니키아’는 ‘자줏빛의 상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들만이 조개껍질을 재료로 값비싼 자줏빛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니키아는 이집트의 통치를 받았으나, 이집트의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기원전 1200년경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뛰어난 항해술과 해상무역으로 지중해와 에게해를 장악하고 약 400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무역과 상술(商術)에 뛰어났던 페니키아인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를 그들만의 표음문자인 알파벳으로 변형시켜 유럽에 전달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알파벳의 원형이 됐다.

비블로스의 오벨리스크 신전.

비블로스는 페니키아 최대의 항구도시로, 백향목(柏香木)과 자색 염료 수출항으로 유명했다. 오늘날 레바논 국기에도 백향목이 그려져 있다. 이 나무는 높이가 40~50미터에 이르는데, 재질이 아주 단단하다. 이런 까닭에 건축자재나 선박 재료로 최고였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도 사용했고,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자신의 묘실을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할 정도로 귀중한 목재였다.

비블로스의 탄생은 최초의 집단 주거지가 발견된 기원전 7000년경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베이루트 북쪽 40㎞에 있는 비블로스 유적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13세기에 축조한 십자군 성채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터가 펼쳐진다.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엘(L)자형 신전과 오벨리스크 신전 터도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로마제국시대의 반원형 극장과 성벽, 석관 등도 널려있어 그야말로 비블로스가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임을 알려준다.

시돈항의 십자군 성채.
시돈항 전경.

기원전 4세기. 그리스가 강성해지자 페니키아는 시돈과 티레 등의 세력이 약해지며 그리스의 속주가 됐다. 이는 기원전 64년, 페니키아 전 지역이 로마의 시리아 속주로 편입되기 전까지 지속됐다.

티레는 베이루트 남쪽 80㎞ 지점에 있다. 고대 지중해를 주름잡은 페니키아의 유적지를 본다는 설렘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당시 유적은 보이지 않는다. 4세기 초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파괴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가 파괴한 티레는 그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온통 로마시대 유적뿐이다.

‘황제의 도시’라는 해안가의 유적은 대리석으로 포장된 넓은 길 양쪽으로 둥근 기둥들이 바다를 향해 도열해있다. 목욕탕ㆍ극장ㆍ신전ㆍ주거지 터 등이 이곳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죽은 자의 도시’가 있다. 로마제국 최대의 전차경기장ㆍ개선문ㆍ수로 등이 있는 곳인데, 그 옆으로 수없이 많은 석관이 늘어서 있다. 석관 외벽은 직위와 계층에 따라 다양한 글씨나 인물 조각들로 장식돼있다.

티레에 있는 로마제국 마차경주장.
티레에 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

티레는 이스라엘과는 고작 20㎞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항상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곳이다. 과거에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로마시대 지하 묘지 일부가 파괴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바로 이곳에 한국 동명부대가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레바논의 지중해 연안에 있었던 페니키아는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우수한 조선술(造船術)과 항해술(航海術)을 바탕으로 지중해 전 지역을 장악했다. 이들은 레바논의 백향목과 자줏빛 염료ㆍ옷감, 시돈에서 생산한 자수품과 포도주, 채색 유기 등을 수출했다. 아프리카ㆍ아시아를 잇는 중개무역으로 귀금속ㆍ상아ㆍ공예품 등을 교역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축적한 경제력은 말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 제작으로 이어졌다. 페니키아인들이 만든 문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로마자 알파벳의 원형이 됐다.

페니키아 알파벳.

※ 허우범은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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