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발족 예정
3대 특별대책 제시

“괴로워서 낮에도 술을 먹을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도 바로 옆에 있어서 이미 피해를 많이 받았는데 또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 <2009.4. 부평구 슈퍼마켓 P사장(51)>

“바로 길 건너 상가건물 5~6개가 팔리고 기업형 슈퍼마켓이 빠르면 몇 달 안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20일 전에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잠이 안 온다.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은 돈을 벌면 다 본사로 들어가고 부평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 아니냐?” <2009.4. 부평구 정육점 K사장(49)>

“통장에 220만원이 입금됐다. 매출액의 11% 정도를 지급받기로 했기 때문에 지난 5월 2000만원의 매출에 따른 것이다. 여기서 아르바이트 인건비 30만원을 빼면 난 190만원의 수입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창고 사용료 4만원, 매장 안에서 사용하는 매대 사용료 2만원, 광고용 팝 1만원, 통신비와 운송료 7만원 등 14만원을 빼고 나면 176만원이다. 여기에 식비와 교통비 30만원, 세금 20만원, 인테리어 감가상각비 40만원(3년 동안)을 더 빼면 내 월수입은 고작 86만원이다” <2007.7.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대형마트 입점업체 Y사장(47)>

이 같은 풍경은 부평만의 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불황으로 경기 침체가 지속됨에 따라 민생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극심한 내수침체와 대형유통자본 중심의 유통구조는 중소기업과 중소상인들을 도산과 폐업으로 내몰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국내 자영업자는 2008년 11월 600만 3000명에서 올해 1월 558만 7000명으로 감소했다. 600만명에 이르던 자영업자는 불과 몇 달 사이에 50만명이 감소하는 등 폐업과 동시에 실업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

장사하고 있지만 이익을 내고 있는 자영업자는 22.9%로 4명 가운데 1명도 채 안 된다. 폐업한 자영업자는 막상 생계대책이 막막하고, 남아있는 자영업자들 역시 계속해서 경기침체의 고통을 감내하며 지내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96년 유통시장 개방이후 공룡으로 등장한 대형마트는 지역의 부를 밖으로 빼내면서 지역 경제의 선순환구조를 파괴하고 있다.

게다가 입점업체와 납품중소기업에게 불공정 거래행위를 강요해 이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면서 자신들은 몇 안 되는 직원만 정규직으로 고용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곳이 바로 대형마트이며, 앞서 김 사장의 한숨처럼 유통업체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동산 임대업체나 다름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생경제의 핵심인 중소유통업체, 전통시장 상인, 상점가 상인 등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조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각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상인들과 함께 3대 특별대책을 제시하며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를 구성키로 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역협의회, 각 지역 경실련과 참여자치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를 구성해 오는 15일 발족키로 하고, 동시에 각 지역 상인회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를테면 중소상인 살리기 인천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한 3대 특별대책을 제시했다.
3대 특별대책은 ▲대형마트와 SSM(대형마트가 규모를 줄여 진출하고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신용카드 가맹점 상점가의 카드수수료율 인하 ▲폐업 중소상인 실업급여 지급 등이다.

전국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신규철 ‘대형마트 규제와 소상공인 살리기 인천대책위’(이하 대형마트 인천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선진국에 비해 과도한 중소상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면이 있으나, 그 경우 생계대책이 막막한 폐업 중소상인들에게 실업급여 지급, 취업교육 연계 등의 실업안전망 대책을 지원해야한다”며 “또한 자영업을 계속 영위하는 자영업자에게는 대형마트ㆍSSM 규제와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등으로 탈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규제와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등은 그동안 상인들이 중심이 돼 숱하게 요구해온 내용들이다. 이미 17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제출됐지만 상정은커녕 논의조차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때문에 이번 전국네트워크 발족으로 18대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통과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며, 이에 거는 상인들의 기대도 크다.

15일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의 발족으로 그동안 일부 상인단체와 협동조합, 일부지역에 국한했던 자영업자 특별대책 마련을 위한 운동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전국상인연합회와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이 역시 최근 들어(3월 19일 상공의날 기자회견) 한 데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의 경우 재래시장상인회와 상점가상인회, 여기에 시민사회단체가 결합해 대형마트인천대책위를 꾸리긴 했지만, 이 역시 인천에만 국한돼있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와 관련 인태연(48) ‘대형마트 규제와 시장활성화를 위한 인천상인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은 “주유소업계, 재래시장, 슈퍼마켓협동조합 등이 개별적으로 정치권을 접촉해 관련 법안 개정을 요구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17대 국회 때 입증됐다”며 “정치인 한 사람이 약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당의 당론으로 정해져야 가능한데 그러려면 전국 상인들의 힘이 필요하다. 이번 전국네트워크 발족은 우리 같은 상인들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는 3대 특별대책의 구체적 방법으로 유통산업발전법과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통해 대형마트를 규제하고 카드수수료율을 인하하는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한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폐업한 자영업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안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노동자에게 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이 있듯이 상인에게 신용카드사와 대형마트, 정부, 지자체 등과 협상할 수 있는 협상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임차료 증액 상한선을 12%로 정해서 하향 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중소상공인에 대한 과감한 정책자금 지원, 도시및 주거환경정비법 등의 개발 관련법 개정을 통해 개발사업 시 상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안도 모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전국네트워크는 공식 발족 후 대대적인 캠페인과 지역 순회 간담회, 대중 집회, 범국민서명운동, 정당과의 공조를 통한 법 개정운동 등을 전개할 예정이다.

신규철 대형마트인천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민생을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발 벗고 이일에 나서야 한다. 향후 중소상인과 함께하는 의원모임을 결성하고 각 정당 지도부도 만날 예정이며, 또한 이에 동의하는 정당과는 기자회견, 토론회 등도 열 것이다”라며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자영업자가 붕괴되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게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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