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엄마는 언니를 임신했을 때 신 과일이 먹고 싶었다고 한다. 다행히 주위에 석류가 많았다. 내 남동생 때는 매운 게 그렇게 당겨서 주인집 밭에 있는 빨간 고추를 매운 줄도 모르고 따 먹었다고 한다. 문제는 나였다.

“너를 임신했을 땐 고기가 먹고 싶더라고. 늬 외삼촌이 딱 한 번 고기를 한 근인가 사 왔는데, 식구들이 많아서 먹고 싶은 만큼 먹질 못했어. 그때 못 먹어서 지금도 고기를 좋아하나 봐.”

그냥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될 것을, 엄마는 굳이 내 임신에서 원인을 찾는다. 사실 엄마는 나를 임신하기 전에도 고기를 좋아했다고 고백했다. 하긴, 여자들의 식욕과 식탐은 그때나 지금이나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본능 중 하나다. 특히 고기처럼 맛있고 귀한 먹거리에 대한 선호를 솔직하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을 거다.

나는 어릴 때부터 먹는 걸 좋아하고 소화력도 왕성했는데, 이상하게도 돼지고기만 먹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배탈이 났다. 엄마는 언제나 고기의 신선도를 의심했지만 유독 나만 탈이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피곤한 상황에서 삼겹살이나 족발을 먹으면 어김없이 속이 좋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돼지고기의 어떤 성분이 내 몸에 맞지 않아 거부반응을 일으킨 듯하다. 하지만 “너는 뱃속에서부터 고기를 좋아했다, 너 때문에 내가 고기가 먹고 싶었던 거”라던 엄마의 말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었나 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건 타고난 식성이라 여기며 줄기차게 돼지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종종 탈이 나서 고생을 했다.

20대 중반 채식에 관한 책을 읽은 뒤 2년 동안 고기를 끊었다. 30대엔 이따금 돈가스나 갈비를 먹을 뿐 돼지고기를 집안에 두고 요리해 먹진 않았다. 그런데 결혼한 뒤론 냉동실에 삼겹살이나 양념고기, 돈가스 등 고기를 늘 쟁여두게 됐다. 한 번 채식을 한 터라 돼지고기나 치킨을 먹을 때면 늘 죄책감이 들었지만 고기에 길든 입맛, 조리의 간편함, 냉동실에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편리함 등, 고기의 이점을 놓지 못했다. ‘나 정도면 많이 먹는 건 아니니까’ ‘채소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라고 합리화하며 죄책감을 애써 털어냈다.

지난여름 글쓰기 수업에서 한 수강생이 소와 돼지들이 도살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참혹한 모습을 글로 써왔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더군다나 최근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또 다시 죄 없는 돼지들이 땅속에 파묻혔다. 채식이 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고, 내 정신건강에도 좋을 걸 알지만 선뜻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엔 집 안에 있는 온갖 육식 재료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버리는 것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그래야 당장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처럼, 집에 있는 거 다 먹고 난 뒤 채식을 하겠다는 건 사실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습관과 고집은 세어지고, 합리화 기술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 뭔가 센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책의 힘을 빌어보기로 했다. 육식을 할 때마다 더욱 강력한 죄책감과 고통을 유발할 책, 돼지고기를 차마 입에 넣기 어려워지는 책, 그런 ‘센’ 책들을 골라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육식을 하는 이라면 사육되는 동물의 현실을 알 필요가 있다고, 그럴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악행이 너무나 잔인하기 때문에. 그리고 동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질수록 고기를 앞에 두고 이전처럼 신나게 ‘셀카’를 찍기는 어려워질 것이므로. 너무 오랫동안 외면하고 살았으니 이제라도 고통 받는 뭇 생명의 수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금의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 효과가 오래오래 지속되길, ‘책 요법’이 잘 통하기를,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수리수리 마하수리!

# 사랑할까, 먹을까 | 황윤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만든 황윤 감독이 펴낸 책이다. 그는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구제역 살처분 뉴스를 보고 이름 모를 고기들의 삶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들에게 ‘진짜 돼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한 손엔 카메라, 다른 손엔 아이 손을 잡고 돼지를 찾아 길을 떠났다. 그가 찾아간 곳은 동물복지 돼지 농장. 유기농 채소를 기르기 위해 좋은 거름이 필요했고, 거름이 필요한 만큼 돼지를 키우는 곳이다. 이곳 돼지들은 유기농 채소와 유기농 곡물로 만든 사료를 먹고 널찍한 공간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자란다.

한편으로 그는 구제역 살처분으로 문을 닫은 축산 농가를 찾아 어떤 환경에서 돼지들이 사는지 알아보기 위해 각지를 돌아다녔다. 폐축사로 알고 간 어느 한 곳에서 돼지 사육을 하고 있었고 그 장면이 우연히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는 “지옥의 문을 연 느낌이었다”고 썼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진짜 돼지인가, 아니면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유령 돼지들인가? 시각보다 더 현실적이었던 건 후각이었다. 살면서 경험해본 적 없는 극심한 악취였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바닥은 분뇨로 질퍽거렸다. 그 속에서 어린 돼지들이 오물 범벅이 된 채로 눈을 끔벅이며 서 있었다. 맙소사, 가엾어라.”(81쪽)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돼지는 대략 1000만 마리. 그 중 대부분은 공장식 축산으로 키워진다. 극과 극의 환경에서 자라는 돼지들을 목도한 결과, 저자는 어느 쪽도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돼지뿐만이 아니다. 그는 달걀을 생산하는 닭 농장에 찾아가선 “이런 닭을 먹고 결코 인간이 건강할 수 없다는 것, 이런 시스템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다른 생명들을 이렇게 살도록 하면 안 된다는 것”(167쪽)을 깨닫는다.

사실 그도 이전엔 육식주의자였다. “삼겹살이 빠진 회식자리를 상상할 수 없었고 치킨은 어느새 국민 간식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 돼지, 닭의 안녕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치맥’을 먹으며, 나는 북극곰, 코끼리, 호랑이의 현실에 눈물 흘렸다. 소, 돼지, 닭에게는 미안하지만, 좀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하는 수밖에. 급한 일들이 많으니 ‘나중’에 너희에 대한 고민을 해볼게.”(7쪽)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한 육류를 먹는 것, 동물복지 농장의 육류를 먹는 것, 채식. 저자는 이중 채식을 택했다. 그는 “내가 겪고 싶지 않은 폭력을 다른 동물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썼다. 육식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접할 수 있고, 동물들의 현실이 그다지 자세히 드러나지 않아, 동물들의 삶에 관심은 있으나 아직 직면하기 두려운 이들이 처음 보기에 적합한 책이다.

# 고기로 태어나서 |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펴냄

‘고기로 태어나서’는 저자인 한승태 씨가 한국 식용동물 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겪은 일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닭이 어떻게 사는 지 보기 위해 산란계 농장(알을 얻기 위해 닭을 사육하는 곳), 부화장(기계로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곳), 육계 농장(잡아 먹을 닭을 기르는 곳)을, 돼지가 어떻게 사는지 보기 위해 종돈장(새끼를 낳는 어미 돼지를 기르는 곳), 자돈 농장(생후 3개월 이하의 어린 돼지를 키우는 곳), 비육 농장(어린 돼지를 3개월 더 기른 후 도축장으로 보내는 곳)을, 그리고 식용으로 기르는 개가 어떻게 사는지 보기 위해 농장 두 곳을 찾아가 일했다. 책은 닭, 돼지, 개 농장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사실 나는 개가 나오는 부분은 펴보지도 못했다. 내가 읽기 힘들었던 부분은 대략 이렇다.

“가장 약한 놈을 밟고 선 닭들은 대단히 뾰족한 발톱으로 아래에 있는 닭의 맨살을 움켜쥔다. 밑에 깔린 닭은 불편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닭들의 발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 (중략) 맨 밑의 닭은 이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동대고 다른 닭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발에 더욱 힘을 준다. (중략) 어느 순간부터 닭들은 서로가 서로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쪼일 때마다 몸서리를 치면서도 맞받아 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온몸의 털이 빠진 것도 피부가 시뻘겋게 부어 있는 것도 납득이 됐다. 싸움은 맷집이 가장 센 놈 하나만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될 것 같았다.”(18-19쪽)

그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으로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도, 자신 역시 채식주의자가 아님을 밝혔다. 그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맛있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 고기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11쪽)이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그래서 회식 자리에서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 할 점을 집어 들었을 때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환상 없이 고기를 먹을 때, 우린 어떤 마음으로 고기를 마주하게 될까. 공장식 축산의 현실과 함께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삭제된 인간성까지 짚어내게 하는 책이다.

# 고기가 되고 싶어 태어난 동물은 없습니다 | 박김수진 지음 | 씽크스마트 펴냄

여전히 많은 이에게 낯선 권리 개념인 동물권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동물권 입문서. 저자는 인간을 ‘인간동물’로, 동물을 ‘비인간동물’로 표현하며 인간도 동물임을, 우리가 먹는 동물도 인간과 똑같은 생명체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 시각, 육식이 윤리적이고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육식의 바탕에 짙게 깔린 종 차별주의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가장 불편함을 덜 주는 책이고, 책 후반부에 나오는 채식하는 이들의 인터뷰도 의미 있지만, 이론보다는 동물이 처한 현실을 먼저 알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가장 나중에 소개한다.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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