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여성 해방은 남성 해방으로 이어진다
[세상읽기] 여성 해방은 남성 해방으로 이어진다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11.1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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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김지영의 삶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의 삶, 어머니의 삶과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물인 김지영이 경험하는 문제들은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여성들의 일상에 만연한 ‘먼지’차별을 보여줌으로써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다. 일각에서 다큐멘터리와 같은 내용을 보고도 여성우월주의로 매도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사회적 특권과 사회구조의 문제를 외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수많은 사회 문제를 개인화하며 구조의 문제를 숨겨온 권력자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여성과 남성의 해방은 연결돼있다

여성 인권이 진일보하는 것은 결코 남성 인권이 후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여성이 해방될수록 남성 또한 해방될 수 있다. 남성으로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여성을 향해 ‘남자가 더 힘들다’며 역차별을 운운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데이트 비용, 군대, 집 장만, 무거운 것 들기 등 역차별의 사례로 언급되는 것들은 여성에 의한 차별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위에 세워진 사회가 만들어낸 ‘남성성 수행’이라는 과제와 그로 인한 착취의 사회구조적 억압이다. 싸워야할 대상은 여성이 아니라 성역할 고정관념과 이를 방조, 유지, 강화하는 사회구조다. 성평등을 외치는 여성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남성 역시 ‘맨박스’에서 벗어나 여성과 함께 해방되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성역할 고정관념 고착화와 구조

성역할 고정관념은 오랜 사회화의 결과물이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몸속에서 구체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여성으로 사는 것도, 남성으로 사는 것도 쉽지가 않다. 모두 억압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남자다운 삶’을, 여성이 ‘여자다운 삶’을 살기를 강요하는 젠더박스는 이 구조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은 여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을 하는 ‘엄마’가, 집안의 경제적 부분을 책임지는 ‘아빠’가 되기를 강요하며 이러한 관념의 고착화는 사회 제도와 구조로 연결된다. 여성은 ‘결혼하면 퇴사할 사람’이라는 굴레로 인해 채용에서부터 불이익을 당하고, 남성은 가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부여받음으로써 회사에서 해고당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회사가 싫어할만한 일은 하지 않게 된다. 극 중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 사실상 해고당했다는 소식을 나누는 장면은 매우 씁쓸하다. 성역할 고정관념의 해체와 동시에 필요한 일은 구조 변화다.

가족 돌볼 시간 없는 장시간 임금노동

한국은 ‘정상가족’ 중심의 복지제도를 운용하면서도 실상 한국의 노동시간은 가족이 서로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 중심 복지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사회구조와 가족의 경제적 부분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착취를 지속하는 자본가의 변화를 강제하지 않고는 김지영의 삶은 바뀌기 어렵다.

장시간노동으로 악명 높은 한국은 가족이 서로 돌볼 수 있는 기회와 건강할 권리를 박탈한다. 2017년 기준 한국은 OECD 평균보다 1.7개월을 더 일한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과 비교하면 연간 1000시간(4개월) 더 일한다. 장시간 노동 문화가 없어진다면 성별과 관계없이 여성과 남성 모두 임금노동, 가사노동, 육아노동을 함께 할 수 있으며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 이는 이상적인 일이 아니며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독일에서는 지난해 법정노동시간을 주28시간으로 단축했다.

수많은 김지영과 모든 사람의 삶이 건강, 평등, 안전해지기 위해, 이제는 변화를 만들어야할 차례다. 우리 모두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과 타인을 억압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변화부터, 노동 착취를 없애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정책을 갖춘 사회를 만드는 것까지, 자신의 몫을 다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