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천유일 테일러샵 ‘김주현 바이각’ 김주현 대표
“모든 일은 사람이 중심 ··· 인천의 양복 기술력 으뜸”
“테일러 아카데미 개설 준비 ··· 청년 후학 양성해야”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영화 ‘킹스맨’에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인간관계에서 태도와 자세, 말투와 행동 등에 따라 상대방을 평가하는데, ‘매너’는 예의나 존중과 배려의 의미로 수용된다.

인천 유일의 테일러 숍 ‘김주현 바이각’의 김주현 대표는 한마디로 ‘매너가 있는 사람’이다. 매너뿐만 아니라, 대화를 하다보면 기품마저 느낄 수 있다. 그의 정중한 태도와 말의 억양은 상대방을 편하게 한다.

김 대표는 인천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잘 알고 있다. 또, 사라져가는 것들을 아쉬워하는 정서, 미래가치를 볼 수 있는 안목, 사업 감각이 뛰어나다. 이제 30대에 들어선 그는 양복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련 분야 후학 양성에도 눈길을 돌리는 등, 지혜도 가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김 대표는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잘 하는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고향인 인천에서 양복을 만들며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 그를 ‘김주현 바이각’ 제물포 본점에서 만났다.

김주현 ‘김주현 바이각’ 대표.

대학 중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인천에서 나고 자란 김주현 대표는 2014년 10월, 수제 양복점을 제물포역 근처에 열었다. 상호 ‘바이각’은 영어 ‘by’와 한자 ‘覺’을 합쳐 발음한 것을 옮긴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레트로(retro: 복고풍) 감성의 양복점을 생각했다. 영어, 이탈리아어 등 어떤 것으로 이름을 지을까 생각하다가 평소 좋아하는 한자이기도 한 ‘깨달을 각(覺)’을 상호로 정했다. 감각이라는 뜻도 있고, 중의적 의미로 이른바 ‘각을 잡다, 격이 있다’라는 의미도 있다.”

김 대표는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가 바로 중퇴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며 방황을 좀 하다가 동대문 의류쇼핑몰에 가서 일을 시작했다.

“학교 그만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평소 옷에 관심이 많았던 점도 있어서 동대문 의류쇼핑몰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일했다. 이 길을 가야겠다는 깨달음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일하면서도 거주지를 바꾸지 않았다. 매일 새벽 5시 무렵 일과를 시작했고, 원단 시장에서 일하면서 배움을 이어갔다. 그런데 양복을 만드는 교육과정은 없었다.

“일하면서 명동 서울패션전문학교를 다녔다. 교육과정은 사실 여성복 위주였고, 양복을 가르쳐주는 곳도 아니었다. 막연하게 의류와 관련한 공부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찮게 양복이 눈에 들어왔다. 양복을 맞출 기회가 있어 한남동에 있는 ‘테일러 블’이라는 곳을 갔다. 거기서 또 다른 깨달음이 일어났다.”

맞춤 양복을 경험하고 번뜩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주현 대표는 인천의 양복 장인들과 일하기 위해 3개월간 ‘삼고초려’한 끝에 함께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배움의 어려움과 책임감, 그리고 가족의 신뢰

“양복을 처음 맞추고 매우 마음에 들었다. 스승인 이상두 선생님께 배움을 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배우지 말라’였다. 이유는 ‘나이도 젊고 배울 수 있는 다른 기술이 많은 데다 양복 기술 배우는 것은 힘들고 오래 걸린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양복 기술을 배우는 데는 ‘도제(徒弟)’ 방식이 유일했다. 양복점에서 일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는데, 경력과 기술력에 따라 수준 차가 많이 나는 분야다. 김 대표는 3년 넘게 무보수로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

“양복 만드는 기술은 최하 5년 이상이 걸린다. 내 스승은 평생 기술을 연마했는데, 양복은 사실 사양 산업이었다. 기성복이 밀려들어왔고 싸고 다양한 디자인의 옷이 생활 속 깊이 들어왔다. 맞춤 양복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기술자들은 보통 한 벌을 만들면 받는 ‘갯공’으로 보수를 받았다. 나는 작업실에서 침낭생활을 하며 어렵게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갑자기 맞춤양복을 만들겠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을 만도 한데, 가족들은 그 길을 반대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서울로 출퇴근을 반복했다. 양복기술을 배운다고 했을 때 반대는 없었다. 오히려 믿음을 주셨다.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일 아닌가.”

3년간 인천과 서울을 오간 김 대표는 자신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큰 자산처럼 느꼈다. 그런데 거처를 왜 서울로 옮기지 않았을까.

“사실 서울에서는 못 살 것 같다. 복잡하고 차도 많고. 인천에서 자랐고 여기서 멀리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배우고 나서는 인천에서 매장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김주현 바이각’에서 그동안 유재석ㆍ장혁ㆍ조진웅 등 연예인들이 옷을 맞춰 입었다.
매장 지하는 사진 촬영을 하는 스튜디오다. 웨딩 촬영은 물론 콘셉트 의상 사진 촬영으로도 인기가 높다.

인천에서 맞춤양복 만들기, 그리고 ‘삼고초려’

김 대표는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에 양복점을 차리기로 했다. 그리고 2014년 10월 25일, 제물포역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본점이고, 송도에 매장이 하나 더 있다.

“창업할 때 부족한 것이 많았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친구들 불러서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 동대문에서 일할 때 모아둔 돈을 투입했고, 초기에는 단골이 없고 수요도 없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인천은 근대 개항기에 신문물이 들어온 창구였다. 김 대표는 당시 제물포 개항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레트로 감성이 유행하고, 기성복은 싸고 많지만 ‘나만 입는 옷’은 없기에, 오히려 맞춤을 하면 고부가 가치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천에 양복점이 많이 있었다. 특히 동인천과 신포동 쪽은 국내 신사복 등이 번성할 수 있는 창구였고 관련 산업이 번성했다. 근래에 거의 모든 매장이 문을 닫았다.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인천에 남아 있는 양복 ‘선생님’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3개월에 걸쳐 ‘삼고초려’를 했고, ‘선생님’들이 김 대표의 진심을 알아줬다.

“지금 매장에 기술자 7명이 있다. 동인천에서 40년 이상 양복을 만든 분들이다. 젊은 사람이 와서 맞춤양복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믿지 않으셨다. 사업 계획을 밝히고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설명했다. 어렵게 모시고 사업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자신만의 디자인 감각으로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몸 치수를 재는 것부터 시작해 원단을 고르고 재단ㆍ바느질ㆍ가봉에 이은 마무리 작업까지 모두 협업에 의해 완성한다.

“어떤 작업은 바느질 작업만 1만 번을 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벌을 만들기 위해 4주 정도 소요된다. 우리 매장은 국내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을 한다. 이러한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주현 바이각’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맞춤 양복점이다. 김주현 대표는 수만 번의 바느질 작업으로 정성스럽게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테일러 아카데미 개설로 후학 양성”

‘김주현 바이각’이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김 대표가 사업 수완을 발휘한 것은 드라마 의상 협찬을 하고부터다.

2017년에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의 주연배우 최민수 씨 의상 협찬을 했다. 드라마 엔딩크레딧에 매장 이름이 나오면서 입소문이 났다. 스타일리스트들이 매장을 찾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유재석ㆍ장혁ㆍ추성훈ㆍ정지훈ㆍ조진웅 씨 등이 옷을 맞췄다.

“최근에는 매장에서 뮤직비디오 촬영도 했다. ‘포장마차’라는 노래로 유명한 가수 황인욱이 매장을 찾아왔다. 최근 발표한 곡 ‘이별주’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왠지 기분이 좋아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을 많이 먹었다. 사업 시작하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함께 해준 사람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김주현 대표는 후학 양성을 위한 ‘테일러 아카데미’ 개설을 계획하고 있다.

김 대표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천만의 가치는 무엇이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해야 할 일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양복을 만드는 기술 전수 방식을 기존 ‘도제’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테일러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 개인이 하기에는 힘든 점이 있어 지방자치단체에 제안하고 지원도 요청했다. 사회적경제 개념으로 기술을 배우고자하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선배들의 기술을 교육체계 안에서 이어받고 취업과 창업까지 연결해준다면 이 분야에 서 새로운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김 대표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라져가는 기술 또한 사람이 갖고 있고 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복은 경쟁력이 있다. 유사 이래 의복을 입지 않은 적은 없다. 시대에 따라 의복도 변화했지만, 양복이 유럽의 중세 이후로 오랜 시간 역사를 이어온 것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다. 오래돼 낡은 것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우아함과 신뢰감이 있기에 새로 창조해야한다. 후대에도 물려줘야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인천은 고향이고 익숙한 공간이지만, 변화와 도전 가능성이 충분한 도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을 할수록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생겼다.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천의 양복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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