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

[인천투데이] 맥주가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일개 맥주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극단적으로 맥주가 없었다면 현재 인류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맥주는 그만큼 인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앞서 맥주의 역사에서 설명했듯이,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 인류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정착해 농경생활을 시작했으니, 인류 문명의 역사는 곧 맥주로 인해 시작됐다. 맥주는 인류가 번성해 만물의 영장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 면에 기여했다. 맥주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인류는 맥주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소소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짚어본다.

맥주 안경 효과

인간 본성 중에서 가장 강력한 본성이 번식 욕구다. 그런데 인간의 짝짓기는 다른 동물보다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번식이라는 면에서 보면 다른 종에 비해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가장 번성하는 종인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맥주를 꼽을 수 있다. 바로 ‘맥주 안경(beer glass)’ 가설로 대표되는, 맥주의 역할이다.

맥주 안경 가설은 맥주를 마신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이성에 더 끌리고 매력을 느낀다는 가설이다. 이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곧 후손이 번성하게 될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영국 글래스고대학교의 심리학자들은 맥주 안경 효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려했다. 술에 취한 학생에게 이성의 얼굴 사진 몇 장을 보여주고 사진 속 얼굴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다. 술을 6잔 이상 마신 집단이 후한 점수를 줬다. 남녀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이 실험은 맥주가 이성 관계를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곧 맥주가 사회성을 높인다는 것을 의미하고, 맥주는 인간관계 특히 이성 관계를 증진하는 촉진제 역할을 함을 밝혀준다.

맥주는 상대방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상승시킨다. 프랑스와 미국 네덜란드 학자들은 맥주가 자신감을 상승시키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고,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을수록 자신을 더 매력적이고 긍정적이며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맥주가 주는 이런 효과는 산업화가 진행되며 여러 사람이 도시에 몰려 살기 시작하면서 야기됐을 인간관계 문제를 해소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인구가 몰려 살면서 인류는 개인에게 본능적으로 필요한 충분한 공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산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고 사람들 간 갈등을 유발하기에, 대도시는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 도시가 안고 있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게 바로 맥주다.

맥주는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상승시켜 긍정적인 대인관계를 맺는 데 윤활제 역할을 하고 있다. 맥주가 없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황폐하고 삭막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본능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개인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인간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고, 도시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개인들로 인해 끔찍한 공간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맥주가 있으면 그런 어려움과 문제점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있어도 큰 스트레스 없이 견딜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 탄 낯선 두 사람은 극도로 불편함을 느끼지만, 비좁은 술집에선 낯선 사람들이 붙어있어도 훨씬 더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물론 맥주 안경 효과가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과음했을 때 신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한 연구는 차고 넘친다. 과도한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사건 사고에 관한 기사도 항상 보도되고 있다. 맥주는 적당히 마셨을 때 인류 번영에 도움을 주는 것이지, 과도하게 마셨을 때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알코올 섭취에 따른 부작용을 경계해야한다. 이런 면에서 맥주는 다른 알코올음료보다 더 낫다. 곡주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영양소와 더불어 맥주의 알코올 농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와인이 14% 안팎의 알코올 함량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맥주는 보통 5%가량의 알코올 도수를 가지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기에 그만큼 심각하게 취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물론 개인의 성향과 자제력 차이가 크지만, 맥주는 적당하게 취해 인간관계의 윤활유가 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높은 발효 음료다. 더불어 효모가 살아있는 생맥주의 경우 건강에 도움 되는 여러 영양소를 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 전영우는 오랜 동안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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