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써야할 글이 많던 날, 배는 고픈데 싱크대엔 전날부터 쌓아놓은 설거지거리가 가득하고, 밥솥은 텅 비어있고, 냉장고엔 김치통만 가득했다. 그래도 낙담하거나 한숨을 쉴 필요는 없다. 내겐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처럼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는 핸드폰이 있으니까. 물론 주머니 사정에 따라 소원의 규모가 달라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지만.

나는 배달 앱에서 ‘중국집’을 누르고 볶음밥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1만 원어치 이상 주문해야 배달이 가능하다는 안내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탕수육도 제일 작은 것으로 선택했다. 배달료는 1900원. 2000원을 미리 현관 근처에 갖다 놓고는 ‘거스름돈 100원은 받지말아야지’ 하는 여유도 부렸다. 30분 쯤 지나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드디어 ‘지니’가 내 소원을 손에 들고 집 앞에 왔구나. 잽싸게 문을 열고 지니의 두 손에 들린 음식을 받았다. 2000을 건넨 후 “100원은 주지 마세요”라고 말한 뒤 문을 닫았다. 지니는 그대로 사라졌다.

ⓒ심혜진.

불맛이 확 나게 볶은 볶음밥은 이 중국집의 특기다. 단무지 비닐을 벗기고 먹기 싫은 생양파는 저리 밀어놓고 식사에 돌입했다. 지니가 빨리 가져다준 덕분에 볶음밥과 짬뽕 국물에선 아직 김이 올라왔다. 따뜻한 볶음밥을 급하게 삼키며 물끄러미 비닐봉지에 붙은 영수증을 보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거기엔 분명히 ‘배달료 1900원’이 포함돼있었다. 그러니까 지니는 배달료를 두 번 받아간 셈이다. 내가 호의로 내어준 거스름돈 100원까지.

분한 생각이 일었다. 혹여 그 배달원이 어디 멀리라도 갈까 싶어 곧바로 중국집에 전화했다. 그런데 그 배달원은 중국집에서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배달 앱에서 보내준 ‘라이더스’라 했다. 중국집 사장이 라이더스 민원실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나는 상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상담원은 몇 가지 조회를 해보더니 내게 말했다. 그 배달원은 최근 자신들이 모집한 임시 비정규직 직원으로, 아마 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상황을 잘 몰랐을 거라며 내게 돈을 돌려주라고 말하겠단다.

모르고 돈을 받아갔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 돈을 되받기가 미안해졌다. 사실 돈을 이중으로 낸 건 내 실수였다. 배달원이 2000원을 돌려주기 위해 우리 집에 다시 돌아온다면, 그 사이 그는 배달 한두 개를 놓치게 될 것이다. 내 실수로 그가 돈을 덜 벌게되고 기름값까지 더 들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담원에게 “돈을 돌려받지 않을 테니 배달원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상담원은 아주 여유롭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고객님. 계좌이체로 돌려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아, 그 방법도 있었구나!

전화를 끊고 몇 분 후, 내 계좌로 2000원이 송금됐다는 알림이 배달원의 이름과 함께 떴다. 그의 이름 세 글자와 함께 그가 ‘지니’가 아닌 이름 있는 노동자였다는 감각이 따라왔다.

그날 이후 인터넷에 올라오는 배달종사자 관련 글에 관심이 갔다. 한 기사를 보니, 18~24세 청년의 산업재해 사망 원인 1위 ‘배달’이고, 2016~2018년에 청년 27명이 배달 중 목숨을 잃었는데, 이중 3명은 첫 출근 날에, 3명은 이튿날에, 6명은 보름 안에 사망했다.(한겨레2019.10.14.) 배달시장이 이들에게 턱없이 낮은 수수료를 주게 형성돼있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배달 건수를 올려야하고, 시간싸움을 하느라 차도와 인도를 가리지 않은 질주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폭염이나 폭설에도 위험수당 한 푼 없이 똑같은 금액을 받는다.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헬멧도 없이 굉음을 내며 달리거나 인도에서 경적을 울리는 그들에게 나는 걱정과 비난의 눈총을 동시에 보냈던 게 사실이다. 이들의 ‘이유 있는 질주’에 이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2000원에 누구는 목숨을 걸고, 누구는 편함을 기대하는 이 아찔한 극단이 안전과 적절한 보상으로 좁혀지기 전까지, 배달앱을 누르는 내 손가락엔 오랜 망설임이 담겨 있을 듯하다.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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