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미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 며칠 전 책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영화 ‘82년생 김지영’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영화를 못 본 사람이 많았지만 모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직 안 봤는데 방송에서 보니까 여자가 정신질환이라던데, 그런데 잘생긴 공유랑 살면서 왜”라는 농담 섞인 얘기가 오갔다. 영화를 본 나는 “꼭 봤으면 해. 결혼과 육아, 경력단절 등 여성들이 겪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와닿더라”라며 영화를 적극 추천했다. 우리는 잠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놨다. 나이에 상관없이 곳곳에 ‘김지영’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여겨지고 개인의 문제로 취급되던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겨있다.

‘82년생 김지영’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데, 이 책을 봤다고 말하거나 SNS에 인증샷을 올린 여자 연예인들에게 가해진 비난과 ‘악플’로도 입소문이 났다. 게다가 작년부터 ‘김지영’ 역을 맡은 배우 정유미에게도 테러 수준의 악플이 달라붙었다. 그걸 보면서 영화가 나오면 꼭 보겠다고 맘먹었다. 영화는 개봉했고, 역시나 영화를 보고 SNS에 소감을 올린 여자 연예인들은 악플에 시달려 글을 내리기도 했다. 어느 커뮤니티엔 ‘82년생 김지영을 보러가자고 하니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다’는 글도 올라왔다.

영화를 이른 시간에 보러갔는데 젊은 사람들, 중년 부부, 장년도 꽤 있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나 역시 마음이 울컥거려 눈물이 났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문득 문득 ‘김지영’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출근길 버스에서 아기를 안고 타는 여성을 보면 ‘김지영’이 생각났다. 여전히 미디어나 매체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비하하거나 성역할을 고정화하려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성차별로 사람들은 아프거나 모질어지거나 무감해진다.

‘82년생 김지영’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차별 안에서 자기 결대로 살지 못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다. “집에서는 착한 딸로,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살았어요. 결혼해서는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에겐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난 지금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나를 찾고 싶어요.” 한 후배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김지영’이 있다. 삶의 경험과 위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여성이라면 대부분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김지영’이 있기에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일상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차별과 부당함에 맞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나만 출구를 못 찾는 거 같다’고 자책하는 ‘김지영’ 옆에서 영화 속 누군가들처럼 ‘당신이 이상한 거 아니’라고, ‘당신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김지영’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 영화보다 현실이 더 고통스러워 못 보겠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여성을 피해자화해 보기 힘들었다고 하고, 보지도 않고 무작정 욕하는 사람도 있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었던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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