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찬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

[인천투데이] 지금부터 20년 전이다. 그 당시 나는 20대 새내기 교사로 인천의 한 여고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은 학교축제가 열려 뭔가 특별한 날이었지만, 학교의 시작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교문에는 학생부장 선생님과 학생부 선생님들이 사찰 문 앞을 지키는 사천왕상 같은 험상궂은 얼굴로 학생들의 치마 길이, 머리 길이, 신발 색깔, 명찰 착용 여부, 손톱 검사 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축제인지라 오전 전시는 흥성스러웠고, 그 분위기는 오후 공연으로 이어져 아침 교문 풍경은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 공연이 끝났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없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학교도 거의 정리됐을 무렵 학생부장 선생님으로부터 긴급하게 연락이 왔다. 인현동에서 화재가 났는데, 학생들이 여럿 죽었다며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축제가 워낙 늦게 끝났고, 학교와 동인천까지는 거리가 꽤 되는지라 우리 학교 아이들이 거기에 갈 확률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담임선생님들은 다급하게 전화를 돌려 확인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학교 학생은 거기에 아무도 없었다.

20년 전 학생 52명을 화마가 집어삼켰던 그 자리에는 지금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 학생들이 인현동 호프집에 놀러 갔다가 참사를 당한 걸 보면서 학생들이 건전하게 놀고 쉬고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조성된 결과다. 그러나 그 시설에는 과거가 없다. 작은 추모비만 있을 뿐, 그 곳, 그 시간, 그 고통, 그 슬픔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인현동 호프집 화재는 20년 전에 끝났지만, 그것은 폐기된 시간이어서는 안 된다. 현재와 만나야한다. 현재와 만남은 낡은 것을 중단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현동 화재 20주기를 맞아 인현동 화재 참사를 인천의 공적 기억으로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잊힌 과거를 끄집어내어 현재에 올려놓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과거를 현재에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과거가 현재에 구원돼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의 것을 바꿔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아이들은 분명 과거의 아이들보다 더 많은 문화공간에서 더 많은 문화시간을 누릴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아이들에게도 ‘문화’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소비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아이들은 문화로 성장하거나 배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소비패턴을 반복할 뿐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인천은, 여전히 문화적 체험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

그런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문화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아파트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문화를 창작하고 공연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도시 곳곳에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나아가 학교는 아이들이 그런 문화공간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20년이 지났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지만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자본주의 소비공간일 뿐이다. 20년 전 기억이 현재와 만나야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변하지 않은 아이들의 문화, 여전히 거리를 다녀야하는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문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20년 전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책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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