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중학교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날마다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다녔다. 지금 내가 사는 곳도 처음 인천에 와 살던 동네에서 고작 네 정거장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요즘도 외출할 때면 종종 그 버스를 탄다. 그때나 지금이나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은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거리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늘 지켜봐왔기 때문이리라.

며칠 전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을볕이 좋아 버스 타기가 싫었다. 집까진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거리. 버스 안에서 수도 없이 바라보던 길을 걷는 건 처음이었다. 길가엔 이제 막 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플라타너스가 쭉 늘어서 있었다. ‘파란 하늘에 잠긴 나무가 참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짐작했다. 강산도 세 번이나 변했을 30년 사이, 이 길만 변화를 피했을 리 없건만 내가 언제나 익숙하게 느낀 이유는 바로 이 플라타너스 가로수 때문일 거라고.

중3 어느 가을날, 친구들과 가사 시간에 쓸 옷감을 사러 배다리 중앙시장을 돌다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탔다. 하교하는 학생들에 퇴근하는 직장인까지 더해 버스 안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배는 고프고 가방은 무겁고 사람들은 자꾸 밀치고 길은 유난히 막혔다. 애써 짜증을 누르며 창밖을 내다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었다. 바람이 불었는지, 플라타너스에서 내 얼굴보다 큰 잎들이 뚝뚝 떨어졌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재미없는 나날을 보내느라 나뭇잎이 갈색으로 물드는 줄도 몰랐구나. ‘나무는 물들고 싶었을까. 잎을 저리 떨어뜨리고 싶을까.’ 제 의지와 상관없이 바람을 맞고 서서 또 다른 혹독한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나무가 처량해 보였다. 그 순간 짜증이 슬픔으로 변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웬만해선 울지 않던 난, 그 감정이 무척 낯설었다. 그날 이후 플라타너스는 꽤 오랫동안 내 감정을 비춰보는 대상이 됐다. 속으로나마 플라타너스에 빗대어 내 감정을 쏟아놓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곤 했다.

가로수는 도시 경관을 좋게 하고, 오염물질을 줄여 공기를 정화하고, 태양열을 차단하는 등 여러 기능을 한다. 특히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벚나무, 느티나무는 도시의 도로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로수 종이다. 이들은 모두 낙엽활엽수로 초겨울 도로를 지저분하게 하기도 한다. 소나무 같은 상록수를 심으면 사계절 경관도 좋고 낙엽도 적을 테지만 굳이 심지 않는다. 낙엽활엽수는 무성한 잎들로 여름엔 그늘을 드리워 거리 온도를 낮추고, 겨울엔 잎을 없애 빙판길이 되지 않게 하지만, 상록수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으니 그늘이 져 곳곳에 빙판을 만든다.

도심 가로수는 상가 간판을 가리지 않아야하므로 가지가 나지 않은 줄기 부분 높이가 1.8미터 이상 돼야하고, 전체 나무 높이는 4미터가량이어야 한다. 또 공해와 병충해에도 강해야 하고, 열매가 너무 많이 열리거나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켜서도 안 된다. 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로수 삼총사인 플라타너스, 느티나무, 은행나무는 위 조건에 적절히 맞을 뿐만 아니라, 산소 방출량과 이산화탄소 흡수량, 수분 방출량이 모두 우수하다.

가로수 한 그루의 산소 방출량은 성인 서너 명이 하루 동안 숨 쉴 수 있는 양이고, 가로수가 있는 곳은 없는 곳보다 여름철 온도가 3~7도 가량 낮다. 가로수는 공기청정기이자 가습기이며 에어컨이기도 하다.

은행 열매의 고약한 냄새와 플라타너스의 커다란 잎이 잠시 괴로움을 줄 수 있지만, 그래도 공해와 온갖 조명으로 가득한 열악한 도심 환경을 버텨낼 수 있는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가로수가 없다면, 거리의 무엇에 잠시나마 마음을 내어줄 수 있을까. 나무가 사라지면 새도 사람도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므로. 거리를 물들이다 끝내 잎을 떨어뜨리고 말 나무들에게 안쓰러운 맘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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