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연 시민기자의 ‘사연이 있는 클래식’
루트비히 판 베토벤 (4편)

[인천투데이 문하연 시민기자] 베토벤은 알려진 바와 같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사랑으로 다가온 여인이 십여 명 있었다. 그 때마다 그는 열정에 타올라 창작열을 불태웠으며 그렇게 탄생한 명곡들을 그들에게 헌정했다. 베토벤의 연애는 특이한 패턴을 보이는데, 다른 남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에게 크게 애착했다.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여성을 추구하는 것은 한 남자로서 무한 고독이, 예술가로서는 창작의 원천이 됐다.

베토벤은 사랑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겼으나 지속적인 연애는 자신의 창작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을 주변 친구들에게 종종 표현했다.

그는 1801년 베겔러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틀림없이 결혼을 못할 것이네. 왜냐하면, 내게는 내 예술혼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니 말이네”라고 했으며, 신들러와 대화할 때 “내가 만약 내 생명력과 삶을 그런 식으로 희생하려했다면 더 고귀하고 더 훌륭한 것을 위해서는 뭐가 남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구애했다가 막상 여자가 다가오면 물러나기 일쑤였고, 대체로 구애하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했다. 베토벤 전기를 쓴 작가들의 공통된 의견을 들어보면, 베토벤이 아주 빈번히 사랑에 빠졌지만 그의 애착은 아주 잠깐 지속됐고, 그 대상이 다른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끝나거나 베토벤이 갑자기 마음을 돌려 일에 몰두하는 식으로 관계가 끝이 났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한 사람에게 꾸준히 애착하는 것을 포기했고, 또 거절당하면 쉽게 물러나 다른 대상에 몰두했다.

이런 베토벤이 죽은 뒤 그의 유품을 정리할 때 그의 서랍에서 편지 세 통이 발견됐다. 그 유명한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다. 이 편지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편지에는 수취인도 연도도 없어서 언제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거니와 편지 속 베토벤은 그동안 그가 보여준 모습과는 다르게 끓어오르는 사랑을 통제할 수 없는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은 이 편지를 토대로 그 연인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베토벤이 남긴 편지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나머지는 명백한 허구다. 영화 속 불멸의 여인은 베토벤의 동생 부인, 즉 제수로 묘사됐는데 베토벤을 연구한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일 뿐.

아직도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고 조각난 증거들을 퍼즐처럼 모아 붙여 추정할 뿐이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를 토대로 유력한 후보 3인방이 있으며, 이들이 아닌 제3의 인물도 거론되고 있다.

이 편지가 쓰인 해와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다. 다만, 7월 6일 월요일 아침부터 7월 7일 화요일에 걸쳐 쓰였다. 7월 7일, 그는 이때 보헤미아 온천휴양지인 테플리츠로 갔고, 이후 테플리츠에서 카를스바트로 갔다. 7월 6일이 월요일인 해와 베토벤의 사생활을 살펴봤을 때 여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한 해로 추정되는 1812년이 유력하다. 즉, 1812년에 베토벤이 만났을 여인을 추론하는 방식으로 베토벤 연구가들의 ‘불멸의 여인’ 찾기가 시작된다.

요세피네 폰 브룬스비크(1779-1821). / 줄리에타 귀차르디(1782-1856). / 안토니 브렌타노(1780-1869).

 

우선, 베토벤이 쓴 편지는 이렇다.

“(생략) 내 마음속에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너무나 많아요…. 기운 내요. 나의 진정한, 나의 유일한 보물이여, 당신은 나의 전부이고 나는 당신의 전부입니다. 아직도 자리에 누워있지만 내 생각은 당신에게 달려갑니다…. 나는 전적으로 당신과 함께 살든지 아니면 완전히 당신 없이 살든지 둘 중 하나만 가능합니다….당신의 사랑은 나를 가장 행복하고도 가장 불행한 남자로 만들어버렸군요. 내 나이에 안정되고 조용한 생활이 필요한데 말입니다…. 나를 사랑해주세요. 오늘, 어제, 당신에 대한 이 갈망은 얼마나 눈물겨운지. 당신, 당신, 나의 삶, 나의 모든 것, 안녕. 계속해서 나를 사랑해 주오. 당신이 사랑하는 자의 가장 충실한 마음을 절대로 오해하지 마오. 언제나 당신의, 언제나 나의, 언제나 우리의 L.”

쓰는 손이 오글거릴 지경인 이 편지가 정녕 베토벤이 쓴 연애편지라니. 이런 베토벤의 편지를 받을 첫 번째 후보자는 ‘요세피네 폰 브룬스비크’이다.

1799년, 요세피네(20세)는 언니 테레제(24세)와 함께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요세피네와 베토벤은 사랑에 빠졌으나, 베토벤의 흔한 연애패턴의 하나처럼 그녀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스물일곱 연상의 백작이 있었다. 요세피네는 결국 다임 백작과 정략결혼을 한다. 그런데 1804년, 돌연 남편이 사망한다.

아이가 넷인 요세피네와 베토벤은 다시 격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는데, 요세피네 집안 반대로 다시 헤어진다. 순탄한 인생이 있겠냐마는, 요세피네의 일생은 특히 더 그랬다. 두 번째 결혼도 파탄, 세 번째는 더욱 비참했다. 그렇게 그녀는 무너졌고 42세에 눈을 감는다.

베토벤은 요세피네에게 피아노곡 ‘안단테 파보리’를 헌정했다. ‘요세피네와 베토벤의 연애는 1812년에 이미 끝났다’는 연구들이 많음에도 불구, 베토벤이 가장 오랫동안 사랑했고 그에게 보낸 다수의 연애편지가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유사성이 많다는 이유로 요세피네는 아직도 유력하다.

두 번째는 ‘줄리에타 귀차르디’다. 요세피네가 다임 백작과 결혼해버리고 마음잡을 곳 없는 베토벤은 줄리에타를 만나 열띤 구애를 했다. 하지만 줄리에타 역시 젊은 작곡가인 벤첼 로베르트 갈렌베르그와 사귀고 있었고, 베토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줄리에타는 베토벤과 갈렌베르그 사이 삼각관계를 은근히 즐기며 자신의 베토벤 장악력을 주변에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이 사랑 역시 줄리에타가 갈렌베르그와 결혼하면서 막을 내린다.

이에 관해 먼 훗날(1823년) 베토벤은 대화수첩에서 신들러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어. 자기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했지. 그러나 그녀의 애인이 된 것은 내가 아니라 그였어. 그런데 그가 가난하다는 소식을 그녀에게서 들었어. 나는 한 부자를 만나 500플로린을 얻어 그가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지. 그는 항상 나의 적이었어. 내가 항상 그에게 최대한 잘해준 것은 그 때문이야.”

적이기에 잘 해줬다는 말은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줄리에타가 ‘불멸의 연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부러운 점은, 베토벤이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곡인 ‘월광 소나타’를 그녀에게 헌정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안토니 브레타노’다. 안토니는 지금까지 증거들로 보아 ‘불멸의 여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이 편지가 쓰인 1812년에 안토니는 베토벤 가까이 살았으며, 베토벤을 자주 만났다. 그해 7월 6일이 포함된 주간에 카를바르트에 있었고, 심지어 7월 31일에 기록된 경찰기록부에 의하면 안토니와 베토벤은 같은 여관에 투숙했다. 바로 비제의 아우크고테스 여관 311호. 곧 만남을 기대하는 베토벤의 편지 내용으로 보아, 그와 동선이 겹치는 유일한 여인이다. 안토니는 18세에 열다섯 연상인 프란츠 브렌타노와 결혼해 자녀가 넷이었다.

30세 안토니와 40세 베토벤은 1810년에 만나 마음을 키워오다가 1812년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베토벤은 안토니뿐 아니라 프란츠 브렌타노와도 깊은 교우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그에게서 그녀를 뺏어오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브렌타노 부부는 프랑크 푸르트로 돌아가 버리고 둘의 관계도 끝난다. 베토벤은 안토니에게 ‘디아벨리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을 헌정했으며, 이후 베토벤 학자들은 베토벤이 만든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의 멀리 있는 연인을 안토니로 해석한다.

1816년 2월, 베토벤은 안토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 경애하는 친구에게. 당신과 당신의 친절한 남편인 프란츠에게 나의 존재를 일깨워주고자 합니다. 동시에 나는 내 얼굴이 찍혀있는 동판화를 보냅니다. (중략) 나는 당신과 프란츠에게 지상에서 가장 깊은 기쁨이 우리 영혼을 밝혀줄 그런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중략) 하지만 당신에게 가장 진심의 인사를 보내며 당신 둘과 함께 지낸 시간을 기쁨으로 회상한다는 말을 덧붙여야겠군요. 내게는 가장 잊을 수 없는 그 시간들 말입니다. 진심어린, 그리고 성실한 인사로써 당신의 찬미자이자 친구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다음 회에 계속)

[참고서적] 베토벤(얀 카이에르스, 홍은정, 도서출판 길) / 루트비히 판 베토벤(메이너드 솔로몬, 김병화, 한길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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