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지난 7월 1일,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 이후 한국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벌인 ‘NO아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100일을 넘어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융단폭격에 가까운 언론보도가 쏟아질 동안에도 불매운동의 물결은 조용하지만 멈추지 않은 채 요동쳤다.

지난 9월,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교역량은 작년 대비 수출이 15.9% 줄었고, 무역수지흑자도 25.9% 감소했다. 8월보다 감소폭이 더 커지면서 불매운동이 일본의 예상대로 반짝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장기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밖에도 닛산ㆍ도요타ㆍ렉서스 등 일본차 판매량도 절반 이상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재고차라도 팔아보자는 심산으로 1000만 원가량의 프로모션 행사를 시작했다. 고가의 일본제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불매도 무시 못 할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국내 수입맥주 시장의 선두권을 장악하던 일본맥주는 지난해 9월 대비 수입액이 99.9% 감소,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다. 일본 화장품의 대표브랜드 DHC는 혐한 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켜 불매운동의 집중 대상이 돼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 퇴출되는 수순을 밟았다.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도 지난 7월 매출이 70% 감소했다. 최근에 회복하는 기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일본군 성노예 사건을 ‘기억조차 하기 어려운 80년 전 일’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광고를 내보내면서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이렇게 뉴스에서 정량적 수치를 보지 않아도 내 일상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 일상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내 일상에서 일본제품 불매는 사실상 불매운동이라고 하기 어렵다. 일상에서 내 소비패턴을 봤을 때, 의식적으로 일본제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일본제품군은 내 선택지에 포함 되지 않는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맥주ㆍ화장품ㆍ옷ㆍ볼펜 등을 살 때 이전에는 일본산을 먼저 찾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또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1주일에 한 번씩은 올라왔던 지인들의 일본여행 사진도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그 사진들은 제주도, 동남아시아로 대체됐다.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 일상에 알게 모르게 함께했던 것들인데, 이제는 마치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도에서 지워진 것처럼 바뀌어버렸다. 이렇게까지 확산되고 유지될 줄 몰랐다. 일본 입장에서 더 무서운 것은, 한국인에게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일본여행과 일본제품 소비가 사라졌음에도 한국인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언젠가 다시 일본여행을 가기 시작하고 일본맥주를 사먹거나 일본의류를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전의 무의식적 소비와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100일을 넘어선 이 불매운동은 청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 아베정부와 극우세력은 지난 역사를 잊고 미래를 살아가자고 하지만, 80년 전 일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이 먼 옛날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 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80년 전 과거에서 단 1초도 움직이지 않고 함께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행동하는 우리를 확인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싸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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