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천 마을공동체 만들기 활성화 방안 6
일본 세타가야구, 미노시 기타시바, 교토시

<편집자 주>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 갈등, 각종 지역 문제로 인해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함께하는 삶의 시작점인 ‘마을’을 나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마을공동체 운동과 사업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마을공동체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인천에선 2013년 5월에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조례’가 제정됐으며, 같은 해 12월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기본계획’이 수립됐고 중간지원기관인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센터’도 설립됐다. 인천시뿐 아니라 10개 구ㆍ군 대다수도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마을공동체 운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4곳은 중간지원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은 인구 300만 명의 대도시인 인천의 주민들이 오랫동안 마을에 정주할 수 있게 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주거환경과 역사ㆍ문화 등 마을의 고유성을 살려 공동체를 지속하게 하고 사람 중심의 마을이 되게 돕는다.

마을이 살아야 도시도 활기를 뛴다. <인천투데이>는 마을공동체에 시민 관심도를 높이고 참여를 넓히기 위해 올해 1월부터 연중기획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로 인천의 다양한 마을공동체를 소개하고 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천의 마을공동체 만들기 현황과 국내 다른 지역과 외국 사례를 살펴보고 인천의 마을공동체 운동과 사업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세타가야구, ‘모험놀이터’에서 ‘지역공생의 집’까지
 

일본 도쿄도 중심부를 둘러싼 구(區) 23개 중 남서쪽에 위치한 세타가야구는 신주쿠에서 열차를 타고 4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면적 58㎢, 구 23개 중에서 가장 넓다. 녹지율이 22.89%로 자연환경이 잘 보전돼있는데, 녹지는 대부분 사유지다.

인구는 약 91만 명으로, 일본 인구가 감소하는 경향이지만, 2042년 108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중심부와 가까울 뿐 아니라 녹지가 많고 주거지가 90%나 돼 살기 좋기 때문이다.

세타가야구는 일본에서 마을만들기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고도성장을 한 1970년대, 이 지역 주민들은 스스로 주민들이 주체가 돼 마을만들기를 추진하자고 이야기했다. 마을만들기를 행정이 주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주민들이 가장 먼저 지방자치단체에 제안해서 만든 게 ‘모험놀이터’다. 지자체 소유 공원에 주민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놀이터를 1972년에 만들었다.

‘모험놀이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아이들은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다양한 기구를 이용해 논다. 심지어 불을 피울 수 있는 곳도 있다. 칼이나 망치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다치는 것도 배움이라고 본다. 공구를 자유롭게 사용해 놀고 집에 갈 때 창고에 반납하면 된다.

도코도 세타가야구 한 공원에 만들어진 모험놀이터의 모습. 아이들이 물미끄럼틀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청소년 미식회’를 열어 아이들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처럼 ‘모험놀이터’는 아이들이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고 무엇이든 충분하게 경험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그 과정에서 자율과 협동을 배운다.

놀이터 관리ㆍ운영은 주민들이 만든 비영리단체(NPO)에서 한다. 세타가야구가 위탁해 무료로 운영한다. 현재 ‘모험놀이터’는 세타가야구에만 5곳이 있으며, 일본 전역에 점점 생기고 있다.

세타가야구 주민들은 1975년에 환경협정을 스스로 제정했다. 사찰이 많은 지역 경관을 스스로 보호하자는 목적이다. 구청장을 구민들이 직접 선출하지 않았던 시절에 제정한 것이라,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도시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세타가야구에 이주자가 많아졌다. 토박이와 이주자 간 이질성 등이 문제가 되자, 원주민들이 이주자들의 육아ㆍ복지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테마별로 정하고 마을만들기 활동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는 구가 독자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고, 구가 주민 참여를 독려하기 마을만들기 조례를 제정했다. 그 때가 1981년이다. 조례에는 마을만들기 계획을 주민이 세우면 구가 전문가를 파견해 주민들이 활동할 수 있게 돕는 것으로 돼있다. 1988년에 쓰레기소각장 굴뚝을 디자인하고 공중화장실에 주민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등, 공공시설에 주민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행정 계획에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외곽단체를 설립했다. 1989년에 주민들에게 현 마을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세타가야 트러스트 협회를 만들었고, 1994년에는 마을만들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타야가야구 도시정비공사 안에 마을만들기센터를 설치했다.

두 외곽단체 설립으로 마을만들기 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게 가능해졌다. 2006년엔 두 외곽단체를 합쳐 재단법인 ‘세타가야 트러스트’를 만들었다. 이 법인은 ‘사람ㆍ마을ㆍ자연이 공존하는 세타가야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인은 구가 지원한 기금 3000만 엔으로 ‘마을만들기 펀드’를 조성해 출발했다. 3000만 엔을 신탁은행에 맡겨 나오는 이익금을 마을만들기 활동에 지원했다.

구는 4~5년 정도 3000만 엔을 지원한 뒤 기금을 줄이다가 10년 전부터는 기금을 주지 않고 있다. 대신 지역 기업이나 개인 기부로 기금을 채우고 있다. 기금은 계속 적립하고 수익금만으로 마을만들기 활동을 지원하려 했으나, 현재는 수익이 많이 떨어져 기금도 조금씩 사용하고 있다.

구가 마을만들기 활동에 예산을 직접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구의 행정에 반하는 활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단은 기금에서 주민 모임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1992년부터 올해까지 772건을 지원했다. 주민 3명 이상의 모임에 지원했는데, 모임 성격은 녹지 보호 22%, 육아 15%, 노인ㆍ장애인 관련 10% 순이다.

도코도 세타가야구에서 주민들이 운영중인 지역공생의 집 중 하나. 육아활동으로 개방하고 있는 곳이다. (사진제공·세타가야 트러스트)

재단은 주민들이 소유한 빈집을 영리 목적이 아닌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는 지역거점으로 조성하는 ‘지역공생의 집’ 사업도 2004년부터 하고 있다. 2000년 전까지는 구가 주민회관 같은 거점 공간을 조성해 제공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민간 소유 토지와 건물을 활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역공생의 집’은 작년 기준 22곳에서 운영됐다. 빈 건물을 내주거나 살고 있는 집 일부 공간을 내주기도 한다. 육아 활동, 노인ㆍ장애인 댄스ㆍ요리교실에 활용한다.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리모델링을 하기도 하는데 따로 지원하는 예산은 없다.

‘지역공생의 집’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3단계를 거쳐야한다. 먼저 소유주가 제안하면, 재단이 해당 건물이 위치한 지역 NPO에 연결해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함께 고민한다. 이후 6개월 간 실험하는 검토 기간을 거쳐 소유주가 최종 결정해 공간을 개방한다. 재단은 ‘지역공생의 집’에 현판과 훈장을 제공하고 개소식 행사 정도만 지원한다.

고바야시 히로시 재단 활동지원 담당 계장은 “주민들이 세타가야에 애착을 가지게 하고 싶다”며 “세타가야가 정말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사히로 나카노 마을만들기 사업 담당 계장은 “주민들이 주체가 돼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지역이라 늘 어떻게 지원할까를 고민한다”며 “주민들이 마을에 자긍심을 가지고 생활활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이상적인 마을만들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타시바, 주민들이 마을을 경영하다
 

구라시즈쿠니 네트워크 기타시바가 운영 중인 점포들.

오사카부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시 미나시(인구 13만 명) 안에 있는 기타시바는 250가구 50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에도시대(1603~1867년)부터 시작한 ‘부락(=마을)’ 차별의 영향을 받았던 곳이다. 천민계층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다. 1969년 ‘부락 차별 방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수도와 가스 등 인프라에서 차별을 받았다. 행정 차별도 존재했다.

‘부락 차별 방지법’ 시행 후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20년이 지난 후 평가해보니 아이들의 학력이나 자존감은 높아지지 않았다. 또한 다른 지역 주민들의 차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포털사이트 등에 대놓고 기타시바를 차별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락 차별 방지법’ 시행을 이끈 피차별 지역 주민연대체인 ‘부락해방동맹’ 기타시바지부는 1992년부터 정부보조금을 스스로 끊는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학력이나 자존감이 높지 않은 게 보조금에 의존하려는 부모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교육보조금을 반납했다. 4년 뒤엔 노인연금도 반납했다.

그 이후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지자체에서 위탁받아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고, 2001년 ‘마을만들기 협의회’를 발족했다. 이 협의회가 현재 기타시바에서 마을만들기 등 다양한 지역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는 비영리법인 ‘미노시 구라시즈쿠니 네트워크 기타시바’의 전신이다.

기타시바의 주식회사 이치에서 운영 중인 게스트하우스. 누구든지 사전에 이야기만 하면 숙박까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비영리법인은 시가 운영하던 복지기관 ‘미노시 임보관(사회복지관)’을 2007년부터 수탁해 운영하고 있다. 인권문화센터 ‘라이토피아(인권+유토피아) 21’도 수탁 운영 중이다. 비영리법인의 활동가들은 영리 회사 ‘이치’를 만들어 수익사업도 하고 있다. 시 공영주택과 공공기관에 인력을 파견하거나 마을 부동산 관리, 청소용역 등으로 수익을 낸다. 식당과 가게, 커피숍 등 다양한 점포도 운영한다.

비영리법인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독거노인 안부 확인 사업, 어린이 교육을 위한 지역화폐 사업 등도 한다. ‘마부’라는 단위로 쓰이는 지역화폐는 금융청에 신고돼 미노시 전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다. 어른과 단체는 돈을 내고 구입하지만, 어린이는 봉사활동을 하면 받을 수 있다. 마을축제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지역화폐를 받는 식이다. 마을을 위해 일을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어렸을 때부터 마을에 관심이 많아지고 경제교육에도 도움이 된다.

2012년부터는 연간 1회 비영리법인과 ‘이치’, 인권문화센터 등이 모여 총회를 연다. 안심하고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데 노력하자는 게 목적이다. 마치 주민들이 모여 마을 전체를 경영하는 모습이다.

이케가야 케이스케 비영리법인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언제나 들어가기 쉬운 현관문 같은 곳, 서로 상대방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고 도움을 주는, 모든 주민을 평등하게 대하는, 계획에 맞추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 모습의 마을을 꿈꾸고 있다”며 “마을의 모든 주민이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함께 마을을 운영하고 차별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교토시 마을만들기의 씨앗 ‘100인 위원회’
 

인터뷰 중인 교토시청 직원들과 100인 위원회 참여자 시노하라 사치코 씨.(왼쪽 첫 번째)

794년부터 1868년까지 1000년 이상 황궁이 있던,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시는 지금은 제2공업지대이자 국제적인 문화ㆍ관광도시다. 1978년 ‘세계문화자유도시’를 선언한 후 이에 기초해 1999년 12월, 21세기 마을만들기 비전이 담긴 ‘교토시 기본 구상’을 세웠다.

그 이후 시는 2001년 제1기 시민참가 기본계획을 세웠고, 2003년 시민참가 추진 조례를 시행했다. 기본계획과 함께 만든 기본방침에는 ▲대화로 미래상과 과제를 공유한다 ▲시민은 시정 참가와 심의회 참여로 의견을 밝히고 제안할 수 있다 ▲시민이 자주적으로 마을만들기 활동을 하면 시가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08년부터는 시민 100명이 참여하는 ‘100인 위원회’를 만들었다. 마을만들기 테마를 설정하고 토론으로 결정한 정책과 활동을 실천하는 역할을 한다. 임기는 2년인데, 현재 5기까지 운영됐다.

1기는 시민이 결정한 정책을 시에 제안하거나 스스로 할 활동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고, 2~3기는 팀을 13개 구성해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나섰다. 4기는 무작위로 시민 7000명을 골라 엽서를 보내 답이 오는 시민 108명을 참여시켰다. 5기는 지역에 도움이 되는 효과 높은 프로젝트를 내는 역할을 했다.

이 ‘100인 위원회’는 시 산하 각 구로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종료했다. 이후 각 구에도 구민 제안 마을만들기 지원 사업 예산이 생겼고, 시민들이 상시 마을만들기 사업를 제안할 수 있는 카페를 개설했다.

교토시 만들만들기 사이트. 시민들이 제안한 마을만들기 사업이 담겨 있는 보물뱅크 내용이 보인다.

‘후시미구 홈즈비’라는 이름의 카페는 ‘마을과 일 종합연구소(이하 연구소)’라는 단체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은 마을만들기 관련 제안 사업을 ‘보물뱅크’라는 곳에 등록할 수도 있다. 올해까지 사업 344건이 제안됐다. 연구소는 제안된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해 관련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인도식 교육을 하는 국제학교를 운영하고 싶다는 제안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마련하라고 조언하고 홍보를 도와줬다. 제안자는 운영자금 200만 엔을 마련해 지난해 4월 학교를 열었다.

교토시 ‘100인 위원회’ 1~3기에 참여한 시노하라 사치코 씨는 “활동 종료 후에도 육아 지원 모임을 만들어 계속 활동하고 있다”며 “100인 위원회가 전국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살기 좋은 마을이 많이 생길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히가시 노부후미 연구소 대표는 “한 단체의 활동만으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단체뿐 아니라 기업이나 대학 등 지역의 많은 기관이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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